대구 동구 동화사(桐華寺)    

위치; 대구시 동구 도학동

소개;

   동화사는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극달 화상이 창건 하였으며 창건 당시 유가사로 불리었으나 

   흥덕왕 7년(832년) 심지왕사가 중창 할 때 겨울인데도 오동나무 꽃이 상스럽게 리어서 동화사로 바꾸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의 본사이며 통일신라시대의 절로 금산사,법주사 와 함께 법상종 3대 사찰의 하나다.

   고려 문종 때에는 이 절에서 원천 법천사의 지선국사가 배출되었고 그 문하에서 속리산 승통 석규를  비롯

   1,000여 명의 승려들이 나왔다.

   임진왜란으로 동화사 전체가 불타버린 후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오늘에 이르렀으며

  경내에는 조선 영조 때 중건된 대웅전과 극락전을 비롯하여 20여 채의 건물이 남아있다.

   이밖에도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보물 제254호),금당암 3층석탑(보물 제248호)·비로암 3층석탑(보물 제247호),

   비로암 석조비로 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동화사 입구 마애불좌상(보물 제243호),석조 부도군 등이 있다.

방일시; 2015.11.12.목요일.맑음

탐방코스; 동화사 집단 지구 주차장-동화문-동화사 경내-통일대전-통일대불

탐방시간; 2시간

가는 길;

   대구 성서 홈플러스- 신천대로 침산교 U턴-서변동-연경동-파군재-백안 삼거리-동화사

  (네비;대구시 동구 도학동 산124-1번지-35km,5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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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화사 탐방은 동화문에서 시작한다.

       동화 집단 시설 지구에서 동화사로 넘어가는 길목에 전에 없던 현판도 붙지 않은 거창한 건물이 있다.

      '동화문'으로 불려지는 이 건물은 마치 일주문이나 금강문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실상은 입장료를 받는 매표소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저 동화문은 동화사와 같은 유서 깊은 절집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다.

 

 ▽ 동화사 동화문에서 입장료를 받는다.

    어른은 2.500원이며 주차비가 소형 2.000원이다.

 

 

 '한국의 풍수지리' 동화사편에는 이 동화문을 통하여 동화사로 진입하는 길을 열어 둔 것에 대하여 크게 우려하고 있다.

본래 동화사로 진입하는 주된 동선은 동화천 물길을 고불고불 따라 오르다 일주문인 봉황문을 지나고 해탈교를 건너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천왕문인 옹호문과 봉서루를 지나 대웅전으로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동화문을 이용하는 새로운 통로가 생겨 대부분의 차량과 사람들이 후문으로 통행함으로써 동화사를 감싸고 있는

외백호와 내백호의 줄기가 손상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반면 본래의 통로는 마치 폐로 처럼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다.

부처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정면에서 한 걸음씩 법당을 향하여 안으로 들어서야 한다.

하지만, 동화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백호의 오른쪽 어깨죽지를 넘나드는

실례를 범하고 마는 셈이다.

따라서 동화문 방향으로 통행하는 차량만이라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동화문을 지나 동화지를 지나면 좌우로 주차장이 있는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삼거리에서 좌측은 부도암,양진암,내원암과 염불암과 염불봉,동봉으로 가는  등산로다.

삼거리에서 우측은 동화사로 가는 탐방로다.

우측의 주차장

 

▽ 좌측의 주차장

 

▽ 삼거리 갈림길에서 동화문에서 동화지로 들어 오는 길을 되돌아 본다.

   

 

 

▽ 팔공산 동화사 설명판

 

 

▽ 동화사로 가면서 뒤돌아 본 삼거리

▽ 우측의 주차장

 

▽ 삼거리 주차장에서 동화사 방향으로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비로전과 율원으로 가는 길이다.

 

▽ 옛날 매표소 인듯 곳에소 좌측으로 가면

 

▽ 대웅전과 약사여래 대불이라는 입석 표시판을 따라 경사진 시멘트길을 내려간다.

 

▽  맨 먼저 우측 건물인 옹호문을 옆을 지나

 

▽ 안내 표시목이 가르키는 대웅전 방향으로 가면

 

▽ 좌측의 문화 해설 관광 안내소를 지나 맨먼저 만나는 봉서루다.

 

▽  봉서루와 봉화알 그리고 복전함

    대웅전이 있는 경내에 들어 설때 맨 먼저 만나는

   봉서루는 오동나무에만 둥지를 튼다는 봉황을 상징하는 누각으로 오동꽃이라는 동화사의 절 이름과 짝을

   이루고 있다.봉서루는 네모난 돌기둥을 세워 누문을 만들고,그 위에 정면 5칸의 목조 누각을 세운 독특한

   건축 양식이다.누각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 널찍한 자연석이 하나 놓여 있다.

   이 곳이 봉황의 꼬리 부분이며 둥근 돌은 봉황의 알을 상징한다.

 

 

▽ 봉서루 뒷편에는 대웅전을 향해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牙門)'의 현판이 걸려 있다.

    치영이란 '조선시대에 승려들로 조직된 군영'을 말하며,

    아문(牙門)은 '급이 높은 관청'을 뜻하므로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영남 도총섭(고려시대,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승려에게  내렸던 최고의 승직)으로

    동화사에 머물며 승병을 지휘 했음을 말해준다.

 

 

▽ 봉서루 우측으로 기도 접수처가 있다.

 

▽  봉서루 계단에서 본 옹호문

 

 

    대구광역시를 휘감아 도는 금호강은 성서 산업 단지 좌측에서 낙동강에 합류된다.

    '경북지명유래총람'에 의하면 금호강은 '바람이 불면 강변의 갈대밭에서 비파(琴)소리가 나고 물은 호수처럼 맑고

     잔잔하여 금호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옛날 이야기일 뿐 ,금호강은 '강물 오염의 대명사"로 인식될 정도로 더럽혀 고 말았다.

     10개도 더 되는 금호강의 지천 중에서 동화사로 이어지는 물길은  산격대교 에서 북동쪽으로 벋어 오른 동화천이다.

     동화사는 팔공산 남쪽 사면의 해발고도 약 500m 정도의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팔공산은 신라시대엔 신라5악 중의 중악(中岳)으로 국가의 중대한 제사를 지내던 명산이다.

    풍수사들은 '팔공산 주능선의 험하고 거친 산세가 남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그 기운이 점차 정제되더니 동화사 대웅전

    뒷편에 이르러서는 부드럽게 멈추어 살며시 고개를 들이 밀고 있으며 그 주맥에서 뻗어나간 좌우의 산들이 동화사를

     단정하고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고 표현한다.

     한마디로 동화사는 팔공산의 정기를 고스란히 받은 명당에 터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 동화사 대웅전

1,5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불교의 대표 총림으로서,

세계 최대의 석불인 약사여래대불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동화사는

동아시아 10대 관광 명소로 지정되어연중 내내 수백만 명의 내.외국인들이 참배하는 동양의 대표 성지이다.

 

대웅전 앞 보물제254호인 당간지주.

통일 신라 시대 말기에 만든 높이 3.1m의 당간지주는 64cm의 간격을 두고 두 지주가 마주 서 있다.

당간은 본래 사찰의 입구에 꽂는 기당의 일종으로

사찰에서 기도와 법회등의 의식이 있을 때 당간 꼭대기에 깃발을 단다.

동화사 당간지주의 안쪽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으며 밖의 3면에도 꺽이는 곳에 모를 살짝 죽였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 대웅전 옆 심검당

 

▽ 대웅전 뒷 쪽에 다리 잡은 산신각(山神閣)

대웅전과 심검당(尋劍堂) 사이의 높은 계단을 오르면 산신각이 있고 뒷쪽 서편으로는 조사당과 칠성각으로 연결된다.

 

 

▽ 칠성각(七星閣)

서별당(西別堂) 뒤쪽 동화사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은 당우가 칠성각이다.

칠성각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전각으로 내부에는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인 칠성(七星)을 봉안하고 있다.

칠성은 본래 중국에서 도교신앙(道敎信仰)과 깊은 관련을 맺고 형성된 뒤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불교화하였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사찰에 차츰 칠성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칠성은 가람 수호신(伽藍 守護神)의 기능도 지니고 있다 한다.

 

▽ 심검당

 

 

 

 

 

▽ 조사전(祖師殿)

동화사를 거쳐 간 역대 고승의 영정을 모셔둔 곳이다.

초창주로 알려진 극달화상과 보조국사,사명대사,세장,두여,의첨,지화,총륜,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석우(石友)스님 등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 화엄당과 법화당

 

▽ 화엄당

 

▽ 화엄당과 동화강원

 

▽ 법화당

 

▽ 법화당 옆 육화당은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다.

 

 

▽ 대웅전 우측으로 무위문과 영산정으로 가는 길이다.

▽ 무위문과 영산정

 

 

▽ 종정애경실

 

 

▽ 동화강원

 

▽ 옹호루 옆 설법당

 

 

▽ 통일 범종루

봉서루 왼쪽에 나란히 통일 범종각이 나란히 섰다.

범종각은 의식이나 법회 등 여러 가지 행사에 사용하는 사물(四物). 

즉, 범종,법고(法鼓),운판(雲版),목어(木魚)를 보관하는 전각이다.

범종은 지옥 중생을 비롯하여 일체 중생의 해탈을 위해 법고는 축생의 고통을 쉬게 하기 위해 사용한다.

또,목어는 수중 중생을 위해 구름 모양을 새긴 운판은 허공 세계에 사는 중생인 날짐승의 해탈을 염원하며 치는 법구이다.

 

 원음각(圓音閣)

   '원음'이란 부처님의 음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종각을 '원음각'이라 부르며,

    지옥고(地獄苦)를 받는 중생들이 종소리를 들으면 고통에서 벗어 난다고 한다.

 

 

927년 팔공산의 동수대전(桐數大戰)에서 고려 왕건군이 견훤에게 참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 중에 불교 종파와

관련된 사실이 있다.

중창 당시 동화사는 모악산 금산사,속리산 법주사와 더불어 백제 진표계의 법상종 3대사 가운데 하나로서 견훤의 세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즉,동화사가 비록 신라 땅에 있었으나 실제로는 백제계의 법상종 사찰로서 후백제를 지원하던 견훤의 근거 세력

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동화사의 힘이 왕건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을 것이며,

반대로 견훤에게는 전세를 유리하게 이끄는데 결정적인 전력으로 작용 하였을 것이다.

 

▽ 통일 대전으로 가는 길은 통일범종각과 원음각 사이를 지나 계류를 건너 극락교 옆을 지나 시멘트길을 따라

    통일대전,봉황문 가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 극락교를 지나 이정표가 있는 지점을 지나면

 

▽ 좌측 언덕으로 가는 길은 당간지주,안악대사비와 동화사 템플스테이로 가는 길이며,

우측의 넒은길은 통일대전과 통일대불로 가는 길이며 봉황문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사적비(寺跡碑)

해탈교 앞 길 모퉁이에 있는 이 사적비는 

커다란 자연석 화강암을 쪼갠 다음 그 가운데를 파고 다듬어서 글씨를 새긴 벽비(壁碑)이다.

비개(碑蓋)는 두 마리의 용으로 장식하였다.

당초의 사적비가 마멸되어 1931년에 주지 황보응(黃普應)스님이 다시 조성한 것이라고 하는데,

비문은 우당거사 김정래가 지었으며 글씨는 긍석 김진만의 것이다.

‘朝鮮佛敎禪敎兩宗 第一首刹 大本山…桐華寺跡碑銘)’이란 제목으로 시작하였다.

 

 

 

▽ 좌측 언덕 위에 보이는 당간지주,인악 대사비.

 

 

 

▽ 통일약사 대불 이정표에서 직진하면 봉황문으로 가는 길이며,

 

    우측 다리를 건너 가면 통일 대전과 통일 약사 대불로  가는길이다.

 

 

 

▽ 다리를 건너는 입구 이정표

 

 

 

 

▽ 다리를 건너 통일 대전,통일 대불로 가는 길이다.

 

 

▽ 통일기원 대전

 

▽ 석조 불상인 통일약사여래대불

남북통일을 기원하여 조성된 1992년11월27일에 완공된 석조 불상인 통일약사여래대불은

높이 33m,둘레16.5m로 석불의 몸체안에는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2과를 모셨고,

대불 앞에는 국내 최대 규모인 17m의 석탑 2기와 7.6m의 석등2기를 세웠으며,

대불 앞에는 통일 대전을 건립하여 남북으로 분단된 통일을 염원하는 불자들의 간절한 발원을 모았다.

 

▽ 동화사 대웅전 영역 남쪽 산자락에 1만여 평에 자리잡은 통일 약사통일대불은 불상과 좌대를 조성한 돌은

전체 무게가 5천톤에 달하는데 모두 전북 익산의 황등석을 옮겨와 사용하였다고 한다.

각계 전문가들의 고증과 조언을 바탕으로 108명의 석공들이 약 7개월 동안 조성하여 예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하며 1992년11월27일 대불의 점안식을 가졌다.

 

 

▽ 통일기원 대전

 

 

 

 

▽ 동화사 전경

 

▽ 해탈교(解脫橋)

사천왕문인 옹호문을 나와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동화천 위에 걸린 홍예교(虹霓교)를 건너게 된다.

다리 이름 '해탈교(解脫橋)'에는 '망상과 번뇌를 벗어 던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심교(洗心橋), 반야교(般若橋), 극락교(極樂橋)…….

 

사찰 경내의 다리는 물을 건네 준다는 다리 본래의 물리적인 기능성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직면하고 있는 현실 세계와 내세를 연결짓는 그 과정에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표현 하고자 하는 것 같다.

 

알고 보면 이 해탈교는 전체가 세 영역으로 나누어지는 동화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대웅전 영역에서 내려서면 해탈교를 건너게 되는데,

 

여기서 동편은 금당선원 영역이며 서쪽으로 나아가면 통일대불전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 인악 대사 나무

 

▽ 옹호문을 통과하면 대웅전으로 가는 길이다.

 

▽ 돌계단을 올라서기 전 뒤돌아 본 인악 대사 나무

 

▽ 옹호문 가기 전 좌측을 돌계단을 올라가면

 

▽ 돌계단을 올라 뒤돌아 본 안악대사 나무로 오르는 계단.

 

▽ 주차장이 나온다.

 

▽ 삼거리 길로 가는 탐방로

 

▽ 주차장과 동화지를 지나 동화문으로.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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