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조의 죽음 2017.10.15.일요일.맑음
우리나라 조선의 역사상 폭군과 성군의 두 이미지를 모두 다 갖고 있는 임금이 광해군이다.
선조의 아들인 15대 광해군은 ‘폐모살제’를 행하고 독선적인 정치를 행하였기 때문에 폭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던 국제 질서 속에서 합리적인 판단으로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적절한 등거리 중립 외교를 하는 등 군사 외교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마련했던 현명한 군주라는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
광해군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두사람이 있는데 인목대비와 상궁 김개시다.
특히 광해군은 인목대비와 대립 관계를 형성하면서,성군의 이미지에서 폭군의 이미지로 변화해 갔다.
광해군이 세자 시절부터 선조의 왕비 이자 계모인 인목대비와 왕위 계승 문제로 대립 관계였다.
광해군은 선조의 후궁인 공빈 김씨의 소생으로 왕의 서자라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는데,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가 자식을 낳지 못하고,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후사를 이어야 하는 중대한 필요성
때문에 서자 인데도 왕세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선조의 정비 의인왕후가 죽고 선조가 새로 맞이한 왕비인 인목왕후(인목대비)가 아들인영창대군을 낳았다서자 출신인 광해군이 이미 왕세자로 책봉되었는데,
그 후에 선조의 정비인 인목대비가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광해군과 인목대비는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 인목왕후(인목대비)는 영창대군을 낳고 난 후에 선조에게 요청해서 자신의 처소에
궁녀를 400명이나 충원했다고 한다.인목왕후(인목대비)의 처소에 배치시킨 400명의 궁녀들 중 100명의
궁녀들은 광해군 처소에 있는 궁녀들이었다.
인목왕후(인목대비)는 영창대군을 낳자마자 미래의 왕위 경쟁자인 광해군의 기세를 꺾기 위해서 그의 궁녀들을 축소시키는 공작을 벌인 것이다.
서자로인 광해군에게는 왕의 정비인 인목대비와 정실의 자식인 영창대군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으며,
자신의 왕세자 자리를 빼앗아 갈지 모르는 정적 같은 존재감이었다.
더욱이 광해군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선조는 인목대비를 총애한 나머지 인목대비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왕세자로 세우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는데,자기 선조가 병(뇌경색)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광해군은 왕세자를 유지할 수 있었고 1608년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선조는 선조는 자신의 지병인 뇌경색에 걸려서 한동안 병석에 누워있다가 1608년 아직 젊은 57세의
나이에 의문의 죽음이었다.
선조는 인목왕후(인목대비)의 정성스러운 병간호를 받고 난 후 다시 병세가 호전되어서 다시 일어나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쾌차한 선조는 궁녀가 올린 약밥을 먹었다가 급체하여 쓰러져 곧바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한다. 숨을 거둔 선조의 얼굴빛이 검푸른빛이었다고 하는데 독을 먹고 죽었을 때에 검푸른빛을 띤다고 한다. 그 당시 장안에는 선조가 누군가에게 독살을 당해서 죽었다는 독살설이 퍼져 나갔다고 한다.
만일 선조가 정말로 독살 당했다면 선조를 독살할 사람은 광해군 밖에 없는 것이다.
선조는 정비의 아들이 아닌 광해군을 세자로 세운 것을 후회하였고,
자신이 총애하는 인목왕후(인목대비)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내심적으로 왕세자로 세울 의도를 갖고 있었다.
결국 선조가 57세의 나이로 갑자기 죽음으로써 인목왕후(인목대비)는 겨우 25살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으며, 3살베기 영창대군과 함께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보호막이 완전 사라져버린 것이다.
1608년 34살의 나이로 조선의 15대 왕으로 등극한 광해군은 정적에 대한 대대적인 피의 숙청을 단행했다. 광해군은 자신의 왕권 유지에 방해가 될까 우려하여 자신의 친형인 임해군도 역모의 누명을 씌어서 죽였다.
왕의계승의 경쟁 관계였던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재남과 처가식구 3명을 역모 혐의로 사사했다.
인목대비의 아들이자 자신의 이복 동생인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유배보냈다가 끔찍하게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 1618년 광해군은 자신의 의붓 어머니나 다름없는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고 서궁에 유폐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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