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은 아버지가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전라도 담양으로 이주하자 그곳에서 임억령에게 시를 배우고 이이,성혼,송익필 같은 유생들과 친교를 맺었다.
26세에 진사시에 1등으로 합격했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그가 첫 벼슬을 하고 처음 다룬 일은 명종의 사촌동생이 저지른 살인 사건이었는데 왕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사형에 처해 버리자 왕은 그를 지방으로 좌천시켰다.그는 지방을 떠돌다 31세 때 함경도 암행어사를 지낸 뒤 여러 벼슬을 하다가 40세가 되던 1575년 벼슬을 내놓고 낙향했다. 그는 강직한 성격 때문에 가는 곳마다 논쟁을 벌였고 친하게 지내던 이이로부터 정쟁을 일삼지 말라는 충고를 듣자 실망하여 낙향했던 것이다.
3년뒤 다시 관직에 복귀했으나 동인의 탄핵을 받고 낙향했고 2년뒤 강원도 관찰사가 되자 <관동별곡>과 <훈민가>16수를지었다.
48세 때 예조판서로 승진했으나 이듬해 동인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고 4년 동안 향촌에 은거하면서 <사미인곡>,<속미인곡>,<성산별곡>등의 한문과 한글로 된 시를 창작했다.
54세 때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동인이 실각하자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동인을 치죄했으나 56세 때 이산해의 계략에 빠져서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건의하다 신성군을 염두에 두고 있던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유배되었다.
이때 선조는 정철에게 주색에 빠졌으니 나랏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는데 정철은 주색을 즐기고 말을 함부로 했던 모양이다.
유배된 그는 57세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유배에서 풀려나 사은사로 명나라를 다녀오기도 했으나 동인의 모함으로 다시 사직하고 58세를 일기로 죽었다.
ㅁ 허준은 1546년 무인 집안에서 태어나 29세 때 의과에 급제하여 의관으로 봉직하게 된다.
허준은 어의로 활동하며 왕자의 두창을 낫게 했고 임진왜란 때는 선조의 곁을 떠나지 않고 의주까지 호종하여 호종공신이 되었다.
허준은 선조의 명을 받아 내의원에 편집국을 설치하고 <동의보감>을 편집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2년인 1610년에 25권 25책인 <동의보감>을 완성시켰는데 이책은 당시의 의학지식을 총망라한 임상의학의 백과전서로서 각 병증의 항과 목이 증상을 중심으로 열거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따라서 임상의가들이 환자를 대했을 때 많은 책을 참고로 하지 않아도 이 책 한 권으로 손쉽게 고금의 의서들을 열람한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게다가 세종 때 만들어진 <향약집방서>,<의방유취>와 선조 때의 <의림촬요>,복희의 저작으로 알려진 <천원옥색>,신농의 저작이라는 <본초> 등 83종의 고전 들과 <상한경>,<맥경> 등의 70여 의방서들을 인용한 <동의보감>은 편집력과 서술의 우수성으로 인하여 출판된 뒤 일본과 중국에도 전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귀중한 한방 임상 의학서로 취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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