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해군과 김개시 2018.12.17.월요일,맑음
조선의 3대 악녀(요부)는
장녹수와 정난정,김개시(김상궁)와 장희빈(장옥정)
장녹수와 정난정,김개시(김상궁)은 노비 출신이다.
장희빈(장옥정),장녹수,김개시(김상궁)으로 분류하는 이도 있다.
장녹수,정난정,장희빈(장옥정)으로 분류 하는 이도 있다.
4명의 여인중 유일하게 천민 신분에서 국모,왕비까지 오른 신분은 장희빈이다.
광해군의 최측근으로는 대신 이이첨과 애인이자 정치 참모 상궁 김개시가 있었다.
이들은 광해군이 피의 숙청을 하는 데도 앞장 섰던 인물들 이었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을 역모자로 몰아서 사사하는데 당시 예조판서인 이이첨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광해군의 총애와 후광을 등에 업고,국정을 농단하고 어지럽혔던 인물이 바로 상궁 김개시다.
김개시는 광해군과 연인 관계였다.
광해군이 상궁 김개시와 동침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김개시는 왕의 후궁이 되진 못하고 그냥 상궁으로만
계속 남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광해군은 김개시를 총애하였고 동침까지 했지만,김개시가 자신의 아버지인 선조의 후궁이었기
때문에 후궁의 첩지를 내리지는 못했던 것이다. 사실상 후궁 대접을 받는 상궁이었다고 한다.
광해군이 김개시를 총애했던 이유는 광해군이 세자로 있었을 때에 광해군이 왕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김개시의 큰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한다.
당시 김개시는 세자궁에서 일하는 궁녀였는데,선조가 세자궁을 드나 들다가 우연히 본 김개시를 마음에
두고 품게되었다고 한다.
김개시는 권모술수에 능란한 요부였기 때문에 선조에게 온갖 여우짓을 다했다고 한다.
얼굴은 별로 미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김개시가 선조와 광해군의 총애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 아는 그녀만의 간교한 애교술와 교활한 아첨 덕분이다.
김개시는 특유의 간교한 애교와 아첨으로 선조와 광해군 두부자의 마음을 사로잡고서,
두사람 모두의 총애를 받으면서, 권력의 한복판에 서서 막강한 권세를 휘둘렀던 여장부였다.
김개시는 여우같은 술수를 부려서 선조의 마음을 움직이고,
광해군이 왕의 첩지를 받을 수 있도록 광해군을 도와 주었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광해군은 김개시를 총애하게 된 것이며,왕이된 후에도 광해군은 김개시를 최측근으로 옆에두고 정권이 끝날 때까지 그녀를 감싸 줬다고 한다.
김개시는 단순히 광해군의 애인 역할에 머문 것이 아니라,광해군의 정치적인 참모 역할도 했으며,
정치사건에도 크게 관여했다고 한다.
김개시는 광해군의 마음을 읽고서,영창대군의 참살과 인목대비의 폐위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담당 했다고 한다.
김개시는 사람들에게 뇌물을 받고서 국가의 관직을 파는 매관 매직을 많이 행했다고 한다.
국가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도 참여했을 뿐만아니라,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팔았던 김개시는 광해군정권 때에 2인자였던 이이첨만큼 권력이 대단했었다고 한다. 김개시가 매관매직을 일삼는 등 그녀의 전횡과 해악을 보다못한 윤선도와 이회 같은 유학자들이 광해군에게 상소를 올려서 김개시 탄핵을 주장했다고 하는데, 광해군은 오히려 상소를 올린 윤선도와 이회를 무고죄를 물어서 유배를 보냈다고 한다.
광해군 정권 말기 반정이 일어날 시점에서 김개시는 광해군을 배반하고야 만다.
1623년 광해군 정권 말기 수차례에 걸쳐서 반정 쿠테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상소가 많이 올라왔는데도,
김개시는 거짓된 상소라고 말하면서 광해군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이같은 김개시의 방해 공작으로 인해 광해군은 쿠테타 시도에 제대로된 대응을 하지못하게 되었고,
결국 ‘인조반정’이 일어나서 광해군은 왕의 자리에서 폐위되고 만다.
선조에 이어 광해군까지 2대에 걸쳐서 성은을 입었던 김개시,
그렇지만 끝내 후궁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지만,권력의 실세로서 광해군의 애인이자 정치적인 참모의
두가지 역할을 했던 김개시는 카멜레온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개시는 광해군이 왕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지만,
동시에 광해군이 왕에서 폐위되는 데에도 일조한 인물이다.
김개시의 이같은 이율 배반적인 행동은 그녀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간에도 붙었다 쓸개에도 붙었다가 하는 천하의 아첨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김개시는 인조 반정이 일어날 때에 반정군의 뇌물을 얻어 먹고서 반정군에게 협조적인 행동을 했다고 한다.
반정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반정 쿠테타가 일어 난다는 상소가 여러차례 올라 왔는데도 불구하고,
김개시가 연회를 개최해서 광해군에게 술을 먹이고 안심시켰기 때문에 반정 세력은 군사적 저항을 적게받고 손쉽게 반정을 성공 시킬 수 있었다.
광해군의 은덕을 그렇게 많이 받았던 김개시는 이미 반정 세력의 쿠테타가 돌이킬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는 것을 알고서,광해군을 배신하는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인조 반정’의 성공 이후에,
김개시는 반정 세력들에게 결국 참수 되었다고 한다.
반정 세력들은 자신의 주군을 쉽게 배신하는 그녀를 살려둘 가치를 못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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