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얼허통      2019.0101.화요일, 맑음

양반의 첩에게서 태어난 사람과 그 후손들을 서얼이라 하는데,

서는 양첩 소산, 얼은 천첩 소산을 가리킨다.

이들은 문과의 생원, 진사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며 잡직 이외의 관직은 맡을 수 없었고

승진에도 제한이 있었다.

서얼의 허통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조광조였다.

이후 이이 등에 의해 허통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다.
인조,현종,숙종 때
에도 계속 허통 문제가 논의되었으며,

서얼들의 집단 상소 운동도 숙종 대 이후에는 자주 나타난다.

그리하여 영조 때는 호부호형을 인정하고 문과를 개방하기도 하였다.

서얼허통 문제가 큰 진전을 보인 것은 정조 때이다.

정조는 즉위 직후 서얼에 대한 승진 제한을 대폭 풀었으며,

규장각에 검서관 제도를 두어 유득공,이덕무,박제가,서이수와 같은 서얼을 검서관으로 등용하였다.

또 초계 문신 가운데도 서얼 출신이 다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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