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종이 후궁을 두지 않은 이유? 2019.03.17.일요일,맑음
왕이 후궁을 두지 않는 일은 드물다.
조선 왕 중에 후궁을 두지않은 왕으로는 단종,예종,경종,수종등이 있다.
그런데 이들에겐 각각 이유가 있었다.
단종은 너무 어렸고,예종과 경종은 건강이 나빴고,순종은 정치 상황이 나빠서 후궁을 둘 수 없었다.
하지만 현종은 이런 이유가 없었는데도 재위 기간도 15년이나 되는데도 후궁을 두지 않았다.
아들도 왕비인 명성왕후로부터 얻은 숙종 한 명뿐이었다.
왕조 국가에서 왕위 계승권자가 선정되지 못하면 국가가 흔들리고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으므로
왕위 계승을 위해 아들을 여럿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도 현종은 후궁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후궁을 두지 않을 정도로 왕비인 명성왕후를 지극히 사랑했던 것일까?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는 금실이 좋았다고 한다.
현정과 명성왕후가 혼인한 건 1651년이었다.
당시 현종은 11살, 김씨는 10살이었습니다.
흔히 부부가 금실이 좋으면 딸이 많다는데,현종과 명성왕후도 따을 여럿 두었다.
명성왕후는 1남 5녀를 낳았다.
현종은 어릴 때 지병이 있었다.
지병 탓에 자주 눈병이 나고,얼굴에 종기가 생겼다.
이 때문에 자주 침을 맞았고 때로는 종기를 터뜨려 고름을 짜냈다.
하지만 늘 병상에 있었던 것이 아닌 데다 15년 동안 재위했기 때문에 지병 때문에 후궁을 두지 못한 것도
아닌 것 같다.
현종이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명서왕후 김씨 때문이 아니었을까?
명성왕후는 질투심이 매우 강하고 성질이 드센 여자였다.
고집도 세고 권력욕도 강했다.
신하들이 현종에게 후궁 간택을 권하지 않은것도 명성왕후와 김우명 일가를 의식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그런데 현종이 딱 한 번 명성왕후 이외의 여자를 품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군기시(軍器寺) 서리(胥吏) 김이선의 딸 김상업이었다.
김상업은 현종의 승은을 입은 유일한 궁녀였으나 후궁이 되지는 못했다.
원래 궁녀가 승은을 입어 아이를 낳으면 후궁이 되나 승은을 입고도 아이를 낳지 못하면 후궁의 첩지는 받지 못하고 특별 상궁이 된다.
그런데 상업은 후궁도,특별 상궁도 되지 못하고 그냥 궁녀 신분으로 결국 궁궐에서 내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녀를 내쫓은 사람은 명성왕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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