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현왕후 민씨 2019.03.17.일요일,맑음
인현왕후 민씨;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의 2번째 왕후
생졸;1667.5.15~1701.9.16
본관; 여흥
부; 여양부원군 민유중
모; 은성부부인 송씨(송준길의 딸)의 차녀
숙종의 초비 인경왕후가 죽은 후 1년 후에 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 김씨와 외가 친척인 송시열의 추천으로 왕비로 뽑힌다. 가례 초기부터 숙종의 애정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한다. 더욱이 명성왕후의 사후 숙종은 과거 명성왕후에 의해 출궁되었던 궁인 장씨(張氏: 희빈 장씨)를 환궁시켜 후궁으로 삼고 총애하였다. 인현왕후는 장희빈을 견제하고자 김수항의 종손녀인 연빈 김씨를 간택후궁으로 추천하여 입궐시키기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1688년 후궁 장씨(소의 장씨)가 아들 윤(후일의 경종)을 낳자 숙종은 이 왕자를 원자를 정하고자 했으나,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들은 원자정호를 뒤로 미룰 것을 주장했다.
송시열 등은 송나라 철종의 고사를 예로 들기도 했다.
원자 정호 문제는 결국 기사환국으로 이어져 1689년 서인들이 쫓겨나고 남인들이 집권하였으며 그녀 역시 폐서인되어 안국동 사가로 내쳐졌다.
1681년에 외조부 송준길의 친척 아우인 송시열의 후견으로 갓 왕비를 잃은 숙종의 계비가 되었으나
1689년 기사환국의 여파로 폐위되었다(1689년 음력 5월 2일).
이후 한 달 뒤에 서인의 상징 인물인 송시열도 정읍에서 1689년 음력 6월 3일사사되었다.
5년 후인 1694년 갑술환국의 여파로 왕비로 복위했다(1694년 음력 4월 12일).
1700년 음력 3월 26일 전후로 하반신이 부풀어 오르는 괴질이 발병해 신체가 썩어 들어가는 고통 아래 투병하다가 1701년 음력 8월 14일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사망했다.
이 여파로 무고의 옥과 신사환국이 발생하여 그녀의 오랜 연적이었던 희빈장씨가 자진했으며 가문의 정적인
남인,소론이 큰 화를 입었다.
묘는 서오릉 중 하나인 명릉이다.
※ 무고의 옥(巫蠱-獄) 또는 신사옥사,신사환국은 일명 신사대출척이라고도 부른다
1701년(숙종27년) 희빈 장씨가 취선당에서 인현황후를를 저주했다고 알려진 사건이다.
또한 이 무렵 남인들이 서인들을 몰락시키기 위해 일부러 희빈 장씨의 친정아버지 장형의 묘역을 일부러
파헤치고 비석을 훼손하여 물의를 빚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숙종은 희빈 장시의 자결을 명하고, 장희재 등은 처형하였으며
남인의 당원인 이현일,이서우 등은 파직되고, 이미 죽은 허목,윤후,윤선도 등의 관작은 추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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