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 23대  순조 이야기               2019.08.05.월요일,맑음

순조; 이공,정조의 둘째 아들

생졸; 1790년(정조14년)-1834(순조34년).45세

재위기간; 1800년-1834,34년

능; 능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인릉(仁陵)

순조

  순원왕후 김씨; 김조순의 딸

     효명세자(추존왕 익종)

         신정왕후 조씨

            헌종; 24대

     여;이름불명

     명온공주--김현근

     복온공주

     덕은공주

   숙의박씨

     영은옹주


재위 기간 동안 안동 김씨 세도정권의 확립으로 국정을 주도하지 못했으며,봉건 사회의 모순이 심화되어

대규모의 농민 항쟁이 일어났다.

1800년 11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영조의 계비인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다가

1804년부터 순조가 직접 국정을 관장했다.

친정 이후에도 권력의 핵심은 김조순을 비롯한 안동 김씨 일문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백성의 생활은 '삼정의 문란'에 따라 도탄에 빠졌고,

크고 작은 농민 봉기나 모반사건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재위 34년 만에 45세의 나이로 죽었다.


정조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박준원의 딸 수빈이다.

비(妃)는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딸 순원왕후이다.

1800년(정조24)1월, 세자에 책봉 되었으며,6월 정조가 죽자 1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1804년까지는 나이가 어려 영조의 계비인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했다.

정순왕후는 영조 때에 사도세자의 폐위를 주장했던 동생 김귀주를 비롯한 벽파와 뜻을 같이하고 있었으므로수렴청정 기간 동안 정조 때 집권 세력이었던 시파의 숙청에 주력했다.

또한 무너져가는 조선 왕조의 사회 질서를 지탱하기 위해 1801년1월, 오가작통법을 시행했으며

신유사옥을 일으켜 천주교도 뿐만 아니라 남인과 시파의 주요 인물들을 처형하거나 유배보냈다.

이때 이가환,이승훈,정약종 등을 처형하고,정약용,채제공 등의 관직을 빼앗고 귀양을 보내 남인과 시파는

대거 몰락했다.

천주교 탄압은 그뒤에도 계속되어 1815년의 을해박해와 1827년에도 많은 교인들이 검거되어 처형 당했다.

한편 수렴 청정기에 공노비를 없애고 서얼허통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순조는 1804년12월부터 직접 국정을 관장했으나 권력의 핵심은 김조순을 비롯한 안동 김씨가 장악했다.

김이익·김이도·김이교·김조순·김문순·김희순·김명순·김달순 등이 주요인물로,

 이들은 정부의 요직을 거의 독점하면서 중앙과 지방의 인사권을 장악했다.

이러한 세도 정치로 뇌물수수 등 부정과 부패가 극에 달했으며,

관직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안동 김씨 일족에 줄을 대는 것이 지름길이 되었다.

이에 과거 제도가 문란해지는 등 양반 관료체제가 안정을 잃었을 뿐 아니라,

중간수탈의 가중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조세 체계도 크게 흔들렸다.

탐관오리의 중간 수탈이나 토호의 세금 전가는 주로 일반 농민층에 집중되어 지주제의 압박에 시달리던

농민층의 몰락을 촉진했다. 이른바 '삼정의 문란'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홍경래 등이 봉건 체제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과 더불어 1811년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이 항쟁은 무력에 의해 이듬해 진압되었으나,

정부는 사회 경제적인 근본 수습책을 마련하지 않았으므로 이후에도 크고 작은 농민봉기나 모반사건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안동김씨 세도 정권이 정국을 주도하는 가운데 순조는 이를 견제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책을 강구했다.

1819년 조만영의 딸을 세자빈을 삼은 것을 계기로 풍양 조씨 일문을 중용했으며,

1827년에는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

세자는 조만영을 비롯한 풍양 조씨의 세력을 끌어들여 김노.홍기섭 등 새로운 정치세력을 결집하고,

김조순을 평안도 관찰사로 내보내는 등 안동 김씨를 멀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1830년 세자가 젊은 나이로 죽으면서 안동 김씨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대리 청정기에 정국을 장악했던 인물들은 유배되었으며,

순조의 안동 김씨 견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뒤 안동 김씨 일문은 풍양 조씨의 협력을 얻으면서 정치적 기반을 더욱 굳건히 다져 나갔다.

순조는 김조순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으나 정적으로 변하자 성적 방황을 거듭하다 매독으로

재위 34년 만에 45세의 나이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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