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소 수교 수립          2019.12.27.금요일,맑음

1990년9월30일,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양국의 외무장관 사이에 이루어진 한국과 소련의 공식 수교다. 


1884년에 체결된 조.러 수 호통상 조약은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면서 1904년 파기

되었고, 그 후 양국은 냉전을 거치면서 거의 교류가 없었다.

적대적이던 한소 관계는 1970년대 동서 진영의 데탕트가 시작되면서 상호 입국허용,

제3국을 통한 간접 교역, 문화교류 등으로 점차 호전되었다.

그러나 1983년 9월1일의 'KAL기 피격 사건'으로 개선의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되었고,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구상서를 교환하는 것을 시작으로 소련이 올림픽에 788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참가시키면서 다시 호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1989년4월3일, 소련 상공 회의소 서울사무소가 개설되었고,

1989년7월에는 대한 무역 진흥 공사(KOTRA) 모스크바 사무소가 설치되었다.

1989년11월17일,양국간 영사처 설치를 합의함으로 86년만에 공식 외교 관계를 복원하였다.

1990년6월4일,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정상회담을 통해

한 소 수교의 원칙을 합의함으로써 이루어졌다.

1990년9월30일에,

 유엔 본부에서 세바르드나제 소련 외상과 최호중 외무 장관이 '한 ·소 수교 공동 성명서'에 서명함으로써 한국과 소련은 역사적인 수교를 수립하게 되었다.


한국과 소련의 수교는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및 등거리 외교 정책과,

탈냉전의 세계적 추세에 부응하려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 외교'가 맞물려 추진된 결과였으며,

한.중 수교와 함께 북한의 최우방 국가들을 상대로 남북한 교차 승인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북한 핵사찰수용 등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북방 외교가 낳은 성과였다.

그러나 소련에 3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면서도 상환 조건을 명시하지 않는 등 경제적

실리를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정치적 명분에만 압도된 외교라는 비판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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