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 낙동강 남지 개비리길~마분산~도초산
위치; 경남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 일대
해발; 마분산-180m,도초산-166m
소개;
마분산-도초산 산행은 둘레길인 낙동강 남지 개비리길과 병행하여 산행을 한다.
들머리인 창나루 주차장은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위치에 있으며,
역사와 함께 생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6.4km의 개비리길과 해발 180m의 마분산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의병과 함께 육지에서 첫 승을 거둔 기음강 전투의 역사적 현장이며,
한국 전쟁의 최후의 방어선으로 남지 철교와 함께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분산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장은 왜장 하시바가 강변에서 공격을 준비하자
열세인 의병이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없자 장군의 말에 벌통을 달아 적진으로 돌진하게 하여
벌떼의 공격을 받은 적군의 혼란을 틈타 기습 공격하여 어렵지 않게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적탄에 맞아 자신의 말이 사살 되자 토성안에 의병의 무덤 뒷편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로 인하여 이산을 '창진산'에서 말 '마분산(무덤산)'으로 고처 불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또한 마분산과 개비리길 일대는 한국 전쟁당시 남지 철교와 함께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곳이기도하다.
경상남도 창녕군의 남지읍 학계리와 신전리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166m의 도초산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도치산이라고도 한다.
도치는 '도끼'의 창녕 지역 방언이다.
구전에 옛날 천지가 개벽하여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영산의 함박산은 함배기(함지박)만큼,
도초산은 도치만큼 남아 도치산이라 하였던 데에서 유래 한다고 한다.
지도에서 읍치 서쪽으로 도초산을 기재하고 있으며, 여통산봉대와 소산봉대가 이를 끼고 서로 마주하고 있다.
산행일시; 2024.01.28.일요일,맑음
산행코스;
창나루 주차장-계단-97봉-이정표-마분산-임도-도초산-창나루 주차장(개비리길 입구)-원점회귀 산행
산행시간; 중식포함 4시간
가는 길;
대구 성서 홈플러스-신천대로-성서IC-옥포JC-중부 내륙 고속도로 남지IC.남지(칠서)방면-남지 입구 오거리
-남지 읍사무소-창나루 주차장(개비리길 입구)
(네비; 경남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 135-7번지-66km, 1시간 소요,통행료 3,700원)
이미지 보기
마분산과 도초산의 들머리와 날머리인 낙동강과 남강이 합쳐지는 두물 머리인 개비리길 입구인 창나루 주차장이다.
우측으로 높다란 봉우리로 오르면 마분산과 도초산으로 가는 산길이다.
창나루 주차장에서
우측 산길로 오르는 계단길은 마분산과 도초산으로 가는 길이며,
좌측 강변을 따라가는길은 둘레길인 '개비리길'로 가는 길이다.
'남지 개비리길의 유래' 설명판 뒷편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남강을 기준으로 좌측은 함안군 대산면이며 우측은 의령군 지정면이다.
'남지 개비리길'은
용산 마을에서 창아 마을에서 영아지 마을 청아 나룻터까지 이르는 낙동강가에 있는 길로
벼랑을 따라 자연적으로 조성된 길이다.
한사람이 경우 지나 다닐수 있는 좁은 이 길은 수십 미터 절벽 위로 아슬아슬 이어가며
낙동강이 그려주는 눈부신 풍광을 가슴에 수놓아 올수 있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걷는 시골 여행길이다.
또한 개비리길 주변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이 육지에서 첫 승리를 거둔 ' 기음강 전투'의 역사적 현장이며,
한국 전쟁의 낙동강 최후 방어선으로 남지 철교(등록문화재 제145호)와 함께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개비리길의 유래는 여러가지로 전해진다.
영아지 마을에 사는 황씨 할아버지의 개 누렁이가 11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유독 눈에 띄게 조그마한 조리쟁이(못나는 작아 볼품이 없다는 뜻의 지방 사투리)였다.
본시 개의 젓이 10개 밖에 되지않아 조리쟁이는 젖먹이 경쟁에서 항상 밀렸고,
황씨 할아버지는 이를 가엾게 여겨 새끼들이 크자 10마리는 남지 시장에 내다 팔았지만
조리쟁이는 집에 남겨 두었다.
그러던 어느날 등(山 )너머 시집간 황 씨의 딸이 친정에 왔다 가면서 조리쟁이를 키우겠다며
시댁인 알개실로 데려갔다.
며칠 후 황씨 할아버지의 딸은 깜짝 놀랐다.
친정의 누렁이가 조리쟁이에세 젖을 먹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렁이가 젖을 주려고 등(山) 을 넘어 온 것이다.
그런일이 있은 후에 살펴보니 누렁이는 하루에 꼭 한번씩 조리쟁이에세 젖을 먹이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폭설이 내린 날에도 여전히 누렁이는 알개실 마을에 나타났고
마을 사람들은 누렁이가 어느 길로 왔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누렁이 뒤를 따라 갔는데
누렁이는 낙동강을 따라 있는 절벽면의 급경사로 인하여 눈이 쌓이지 못하고 강으로 떨어져
눈이 없는 곳을 따라 다녔던 것을 확인 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높은 산 고개를 넘는 수고로움을 피하고 개(누렁이)가 다닌 비리(절벽)로 다니게 되어
'개비리'라는 길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또 다른 유래로는
'개'는 강가를 말하며 '비리'는 벼랑이란 뜻의 벼루에서 나온 말로써 강사 절벽 위에 난 길의 뜻으로
벼랑을 따라 조성된 길을 만한다.
창나루 주차장 우측으로 목계단을 오르면서 시작하는 개비리길 둘레길 일부인 마분산과 도초산 산행이다.
목계단 입구에 위치한 이정표에 의하면
창나루 주차장에서 창나루 전망대까지 0.38km며 마분산 정상 갈림길까지 1.69km며,
좌측 강변으로 가는 마분산 갈림길(하)까지는 2.21km다.
좌측으로 많은 리본들이 걸려 있는 가파른 목계단을 오른다.
목계단이 끝나면 능선으로 오르는 산길을 만난다.
어디로 가던 만나는 외길이라 길을 잘못 가는 염려는 않아도 된다.
돌계단길과
봉우리가 보이는 능선길에 우측으로 축대가 보이는 묘 1기를 지나
△ 가파른 오름길로 오르면 묘소가 위치한 해발 97m의 첫봉에 올라 서게 된다.
"마분산과 창나라 마을"에 관한 설명판과 쉼터 의자가 있는 위치한 봉우리다.
마분산과 창나라 마을"에 관한 설명판
묘소 좌측으로 우회하여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곽재우 장군의 토성과 말무덤' 설명판과 함께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는 창나루 전망대에 도착한다.
"곽재우 장군의 토성과 말무덤"에 관한 설명판의 내용은
'임진 왜란 (1592년) 때에 천강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장은
의병을 일으켜 마분산에 토성을 쌓아 낙동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왜적을 맞아 신출귀몰하게 싸워 백전백승 하였다.
이 토성은 작은 규모이나 정상에 공간을 두어 강에서는 보이지 않게 설계되었으며
산을 힘들게 올라온 적과의 육탄전에서 승리 할수 있게 정상 안쪽에 흙으로 성을 쌓았는데
430여 년의 풍상에 토성은 허물어져 경우 흔적만 남겨두고 있다.
곽재우 의병장은 왜장 하시바가 강변에서 공격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모든것이 열세인 의병이 전면 전투로는 승산이 없음을 직감하고는
자신의 말에 벌통을 매달아 적진으로 돌격하게 하여 벌때의 받은 적군의 혼란을 틈타
기습 공격으로 큰힘을 들이지 않고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적탄에 맞아 자신의 말이 사살 되자 그 공을 높이는 뜻에서
토성안의 의병의 무덤 뒤에 말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로 인하여 이 산 이름이 '창진산'에서 '말무덤산(마분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무덤의 둘레가 25m,높이가 5m로 기록과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세월의 풍파와 도굴꾼에 의해 파헤쳐져 지금은 그 차취를 찾아 볼 수가 없다'는 내용이다.
망원경으로 남쪽 방향으로 바라보면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되는 두물머리에서
남강을 기준으로 좌측의 함안군 대산면과 우측의 의령군 지정면이 보이며,
멀리는 함안의 산들이 조망된다.
창나루 전망대에서 조망 후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오르면
한차례 능선에 올라서고
묘소가 있는 능선을 한 번 더 올라서면
앞으로 봉우리가 보이는 소나무 숲길로 내려간다.
완만한 능선길은
진행 방향으로 봉우리가 가까워 지면서 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산사면길을 오르면
주능선으로 올라선다.
우측은 묘소가 있어 우회 한것이다.
주능선을 따라 오르면 좌측으로 묘소가 보이는 무명봉에 올라선다.
무명봉을 내려가면 이내 만나는 6남매 나무다.
5주간의 소나무 사이에 산벚꽃 씨앗이 떨어져 싹을 내어 같이 자란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6남매 나무를 지나면 바로 만나는 삼형제 소나무다.
삼형제 소나무를 지나면 능선으로 오르는 길을 만난다.
능선길에 줄을 쳐 놓은 묘소를 우회하여
평탄한 능선길을 따라가면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로 오른다.
쉼터의자와 이정표,의병 무덤 설명판이 위치한
창나루 나루터에서 1.57km오른 지점으로 마분산 정상 갈림길을 만난다.
우측 영아지 전망대/영아지 주차장 방향은 정상을 우회하여 산사면길로 오르는 길이라
어디로 가나 정상을 지나 만나므로 직진하여 오르막길로 올라 정상으로 오른다.
의병 무덤 설명판.
말부덤인 정상 이곳에는 임진왜란(1592년)을 맞아 곽재우 의병장과 함께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이름 없는 희병들이 합장되어 있는 거대한 무덤이다.
직진하여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해발 188m의 마분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석은 없으나 '화왕 지맥 179.7m' 표시판이 나무에 걸려 있으며,
누군가 돌에 새긴 정상 표시석이 있다.
묘소가 위치한 정상으로 조망 또한 바랄 것은 없다.
단지 상징적인 마분산 정상 일 뿐이다.
동영상
정상에서 반대로 리본들이 많이 걸린 방향으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조금전 정상 아래 갈림길에서 우회하여 산사면길로 오르는 길과 만나
마분산 갈림길(상-0.3km) 방향으로 내리막길을 내려
오르막길을 오를때 쯤이면 좌측으로
목동들이 무료한 시간을 이용하여 돌에 새긴 이름 등을 새겨 놓은 목동의 이름 새긴 돌 옆을 지난다.
들머리에서 1.4km 오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우측으로 도초산(1.7km)으로 가는 봉우리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 도초산 방향으로 산길로 내려 가면 후에 자전거 임도길과 만나는 길로 산길로 도초산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영아지 쉼터(1km) 방향으로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전설의 마분봉을 지나
마분산 정상 갈림길에서 0.3km 지난 지점의 이정표로
임도 입구는 0.08km 남은 거리다.
쉼터 의자를 지나면
임도 입구 이정표에 도착한다.
좌측 내리막 임도길은 영아지 쉼터(0.77km)/영아지 마을(1.05km)로 가는 임도길이며,
우측으로 오르는 임도길은 도초산으로 가는 자전거길이다.
도초산 방향으로 오르막 자전거 임도길로 오르면
한무리의 자전거 동호인들이 지나간다.
언덕에서 우측으로 휘어진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우측에
'4대강 국토 종주 낙동강 자전거길'이란 표시판을 지나면
이번에는 좌측으로 휘어진 임도길이 나오면
임도길 우측으로 임도를 따라가는 산길이 나온다.
산길로 올라서면
조금전 정상을 지나 첫번째 봉우리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도초산(1.7km) 방향에서 오는 산길과 만난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이 곳에서 부터 도초산으로 가는 길은
임도로 가다 산길로 산길로 가다 임도로 반복하여 갈수 있다.
물론 임도를 줄곧 따라가도 된다.
산길로 올라
묘소가 있는 조그마한 봉우리를 넘어서면
임도길로 내려서면
좌측으로 산길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으나 전망대가 보이는 임도를 따라간다.
쉼터 의자와 함께 전망대에 올라
용산리의 장수골과 낙동강 건너 함안의 용화산(193.2m)이 조망된다.
전망대 아래로는 용산리와 신전리를 잇는 용산터널이 지나가고 있다.
전망대에서 7-80m 임도길을 따라가면
삼거리 갈림길과 돌계단으로 오르는 산길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온다.
최근 2022년에 개설한 우측 시멘트 임도길은 용산리 장수골로 가는 임도며,
돌계단을 올라 산길로 가면 바로 안개실 고개로 가는 등산로며,
임도를 따라가는 길 또한 안개실 고개로 가는 길이다.
도초산으로 가는 입구의 안개실 고개로 가기 위해 임도를 따라 가기로 하여 임도길을 따른다.
우측으로 휘어진 임도길에 한번더 낙동강 자전거길 표시판을 지나면
앞으로 보이는 봉우리에 산불 감시 초소가 보이는데 목적지인 도초산 정상이다.
보라보라 농장 입구 철문을 지나면서
아래로 처다보니
신전 마을로 가는 신전길이 보이며,
멀리는 하왕산 능선이 조망된다.
도초산 정상이 가까워 질때면
보라보라 농장 정문 철문 앞에 도착하여
우측 묘소가 있는 방향으로 산길로 오르면
안개실 고개에 도착한다.
안개실 고개에서 좌측으로 산길로 올라서면
앞으로 산봉우리가 보이는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오른다.
산사면길을 따라 앞으로 보이는
능선에 올라서면
우측 능선으로 희미한 등산로가 있는 능선에 오른다.
도초산 정상 후 이 곳으로 되돌아와 하산하는 능선 갈림길이다.
한차례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산불 감시 초소가 위치한 해발 166m의 도초산 정상에 서게 된다.
높이 200m도 되지 않는 야트막한 봉우리에서 이토록 사방 조망이 트이는 것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정상의 무덤은 후손없는 무덤으로 무료한 산불지기가 봉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그야 말로 주위 모두가 훤히 보이는 조망터다.
신전 마을 너머로 고곡리의 구진산(307.9m)과
창녕 방면으로 화왕산에서 종남산- 함박산까지 길게 마루금이 드러나고,
남지읍을 가로 질러 흐르는 낙동강,
그 강을 건너는 중부 내륙 고속도로의 창녕 낙동강교, 그 뒤로 낙동강교,창녕 함안보가 조망되고,
덕곡리의 도덕봉,길곡리의 석천산등이 조망되고
용산리 개비리길 입구 창나루터 주차장 건너 용화산이 조망되는
도초산 정상이다.
동영상
하산은 안개실 고개 방향으로 되돌아 가다
능선을 지나
우측 계곡아래 용산 마을이 보이는
능선 갈림길에서 좌측 능선으로 하산길로 접어든다.
안개실 고개에서 좌측 계곡 방향인 용산 마을로 하산하여도 좋을 것 같다.
탱자 나무 끝지점에 도착하면 좌측으로 희미한 산길이 보인다.
여기서 부터 길을 잘 찾아 가야 한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두개의 흰 천으로 띠를 두른 나무
좌측으로 지나 우측으로 산사면길을 내려가면
앞으로 봉우리가 보인다.
재선충 더미를 지나는 봉우리다.
아직 까지는 등산로가 희미하게 나 있어 쉽게 등산로를 따를수 있다.
봉우리를 내려가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능선으로 올라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여러 기의 묘소가 위치하고 있는데,
묘소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나무 가지에 걸린 두개의 빨간 리본 아래를 지나
커다란 바위 옆을 지나면
'한국국토정보공사 대경산악회' 노란 리본을 지나면
흩트러진 능선길을 만나
우측 계곡 건너 마분산으로 올랐던 산능선이 보이는 능선길이다.
능선길을 따라가면
직진하여 능선으로 오르는 길과 좌측 임도 모양을 한 희미한 길이 나온다.
좌측 임도 수준의 길을 가면 묘소를 만나는데
앞길이 나무로 가려 우측으로 올라가야 한다.
여기서 부터 희미한 등산로는 감잡아 가야하는 형편이다.
우측 능선으로 오르면 직진하여 오르는 능선길과 만난다.
만나는 지점에는 묵묘 위로 삼각점이 위치하고 있다.
능선으로 가면 노란 산악회 리본을 지나면
묘소 위 삼각점을 만난다.
삼각점을 지나 묵묘를 지나 묘소가 보이는 방향으로 능선으로 가면
우측으로 노란색의 '남지 개비리길 보존회' 리본 방향으로 내려가
묘소 앞을 지나면
마즈막 묘소 앞으로 학계리의 학계 마을이 보이는 방향으로 좌측으로 가면
잡풀 사이로 하여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희미한 능선길 우측으로 용산 마을이 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며
능선은 잡풀로 가리워 갈 수 없어 좌측으로 하여 능선으로 오른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노란색 '재부용산 산악회'리본을 만나 지나면
다시 능선의 잡풀이 길을 막아 갈수 없어 이번에는 우측으로 우회 하여
우측 끝 묘소를 지나면
여러 기의 묘소를 지나
묘소 끝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좌측으로 가보았더니 묘소끝에서 용산마을로 하산하는 길이 있음)
능선을 두고 좌측과 우측으로 내려서는 등산로가 없는 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가닥을 잡아 내려가면
정수장이 바로 보이는 농노길 시멘트에 내려선다.
용산 터널로 가는 지방도 1022번 방향으로 우측으로 시멘트길을 따라가
지방도 1022번 도로에서 좌측 도로를 따라가면
창나루 주차장에 도착하여 종료하는 마분산-도초산 산행이다.
',·´″″°³ 산행.여행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남 밀양 하서산~황산 (0) | 2024.02.07 |
---|---|
경남 창녕 부곡온천 힐링 둘레길~밀양 종암산 (0) | 2024.01.31 |
대구 달성 최정산 누리길(숲길) (0) | 2024.01.21 |
대구 동구 초례산 매여봉 (0) | 2024.01.17 |
경북 영천 보현산댐 출렁다리 (0) | 2024.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