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당 조만식     작성일자; 2019.11.14.목요일,맑음

 

고당 조만식(植;생졸; 1883.2.1-1950.10.18)은 
민족의 사표(師表)였으며,
오산 학교 교사로 시작한 그는 열렬한 애국심과 독립 정신 속에서
'독립 만세 운동','국산품 애용운동'의 선봉에 앞장섰다.
또한 좌.우파가 하나가 되는 신간회 결성에 애썼으며,
광복 후엔 반탁 운동과 민족 자주 독립 운동의 지도자로서 활동하였다. 
 

평남 강서군 반석면 반일리 내동에서 창녕 조씨 조경학과 경주 김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7세 때에 한문 공부를 시작해 10년에 걸쳐 사서삼경 등 기초 과정을 배웠다.

15세 되던해 평양에서 포목상,지물상을 꾸러온 그는 5척 단신의 이름난 술꾼이었다.

그러다가 서당에서 알게 된 한정교를 만나 기독교 장로교에 입교했다.

이후  23세의 만학으로 평양 숭실학교에 입학했다.

 

1906년,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나 세이소쿠 영어 학교에 입학했고

1910년, 메이지 대학 전문부 법학부에 입학했다.

1913년, 명치 대학 졸업 후

남강 이승훈의 초청으로 민족 교육의 근원지인 오산 학교의 교사가 되었고

2년 후에는 교장으로 승진했다.

사감까지 겸하여 주야 24시간을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기거했다.

선생의 풍모는 매우 독특해서 5척 단구에 머리를 빡빡 깎아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었다.

국산품을 애용을 실천하며 장차 이 나라의 큰 일꾼을 양성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1919년3월1일,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교장직을 사퇴하고

평남 강서군 사천 장날의 독립 만세 운동 시위를 주동하였으며,

그 후 상하이로 망명하려다가 일경에게 붙잡혀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르게 되어

교육계를 떠나게 되었다.

1920년,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 운동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어 사회 운동을 전개했다.

물산 장려운동이 시작되자

전국으로 번져가서 각 지방에서는 '물산 장려회''토산품장려회' 등으로 단체 조직이 속출하고

금주,금연 동맹과 같은 도덕적인 성격의 운동으로까지 파급되었다.

1921년부터 11년 간에 걸쳐

평양 YMCA 총무로서 기독교 정신과 민족 부흥의 정신을 일체화 함으로

항일의 선봉에 서서 일제 말기 신사 참배,궁성 요배 등 강요에 결연히 반대했다.

1923년, 일제에 대항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 양성을 위하여

'조선 민립대학 기성회'를 주축으로 벌어진 '조선 민립대학' 설립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27년, 민족의 좌.우 합작으로 결성된

'신간회(조선일보 계열의 이상재,권동진 등이 사회주의자들과 협력하여

1927년2월15일 YMCA 회관에서 탄생)'가 서울에서 조직되자 

신간회 중앙위원과 평양시 지회장

1937년, 이광수가 조직한 '수양 동맹회'와 안창호의 '대성학교' 및 물산 장려운동 관련자들의

친목 모임인

1945년8월17일, 평양에서 '조선건국 준비평남 위원회'를 조직하여 위원장으로 추대되어

1945년8월18일, 평남 도청에서 있었던 일본군 항복 조인식에 입회하는 형식으로 참석하였다.

1945년8월26일, 소련군은 '건국 준비위원회'와 '공산당'을 평양 호텔로 초청하고

연립정권을 수립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때 조만식은 위원장이 되고 건국준비위원회 측에서도 여러 명이 조각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연립 정권의 수립은 이때까지는 조만식의 지도력을 배제할 수 없어

이뤄진 부득이한 방편이었다.

한편 공산당의 위상은 날로 커지고

소련 군정과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인민 위원회'는 날치기 행정으로 세력을 키워나갔다.

1945년11월3일, 조만식은 평양에서 '조선 민주당'을 창당했다.

1945년12월28일,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조선에 대한 5년 간의 신탁통치안이 결정되자

1946년1월2일, 소련 군정에 신탁통치 불찬성의 뜻을 통고하고

한편으로는 반탁 성명을 발표했다. 동시에 '인민 위원회' 위원장 직도 사퇴했다.

1946년1월6일,소련 군정 및 김일성 일파와의 최후 담판은 결렬되고 

인민위원회 건물 현관을 나서자 

소련군에 의해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실려 고려 호텔로 연행되어 갔다.

그 후 공개적인 장소에서 선생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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