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정비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한국형  녹색 뉴딜 정책으로 한강,낙동강,금강 영산강 등 4대강 살리기에 주안점을 두어

2008년12월29일 낙동강지구 착공식을 시작으로 2012년4월22일 까지 추진한 대하천 정비 사업이다. 

 

1.금강

금강에는 금강 공주보, 금강 백제보,금강 세종보 등 3개의 보가 있으며,

댐으로는 18880년에 건설한 대청호와 1990년의 금강 하구둑,추진중인 용담댐이 있다.

우리나라 6대 하천의 하나인 금강은  유로 연장이 401 km로 남한에서는 낙동강·한강 다음으로 큰 강이다.

본류는 장수읍의 수분리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섬진강과 갈라져 진안고원과 덕유산 지역에서 흘러오는 구리향천(34 km),

청자천(30 km) 등 여러 지류들이 북쪽으로 흐른다.

전라북도의 북동부 경계 지역에 이르러 남대천(44 km)·봉황천(30 km)과 합류하고

옥천·영동 사이의 충청북도 남서부에서 송천(70 km) 및 보청천(65 km)과 합류한 뒤 북서쪽으로 물길을 바꾼다.

다시 갑천(57 km) 등 여러 지류가 합쳐 충청남도의 부강에 이르러 남서 방향으로 물길을 바꾸면서 미호천과 합류하고,

공주·부여 등 백제의 고도를 지나 강경에 이르러서는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道界)를 이루며 황해로 흘러들어 간다.

1) 금강 공주보;

    2009년 10월에 착공하여 2011년10월22일 준공한 공주보 건설사업은

    충남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에서 공주시 반포면 원봉리 사이 금강을 가로질러 280m의 보를 건설하고

    일대 총연장 35.3 km 구간을 친환경 생태하천으로 되살렸다.

 

2) 금강 백제보

백제보는 특별하게 수문에 국내 최초로 2단 쉘게이트' 기술을 적용했다고 한다.

쉘게이트는 수문을 열고 닫는데 2단으로 되어 있어 평상시는 상류측의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면서 많은 비가 내려 홍수의 우려가 있을때는

나머지 하나를 모두 열어서 홍수조절을 할수 있게 되어있는 2단 구조 방식이다.

가로 36m, 높이 5.3m 의 규모이다.

 

3) 금강 세종보

 

2.한강

한강에는 한강 강천보, 한강 여주보,한강 이포보 등 3개의 보가 있으며,

태백산맥에서 발원하여 강원·충북·경기도·서울시를 동서로 흘러 황해로 들어 가는 한강은

본류의 길이는 514㎞로 우리나라에서 압록강·두만강·낙동강 다음의 네 번째이고,

강원도 금강산 부근에서 발원한 북한강은 남류하면서 금강천·수입천·화천천 합류하고,춘천에서 소양강과 합류한다.

그리고 다시 남서로 흘러 가평천·홍천강·조종천과 합친 다음,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강원 태백 창죽동 대덕산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남류하면서 평창강·주천강을 합하고 단양 지나면서

북서로 흘러 달천·섬강·청미천·흑천과 합친뒤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한다.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을 합류한 한강은 계속 북서 방향으로 흐르면서 왕숙천·중랑천·안양천 등의 소지류를

합류하여 김포평야를 지난 뒤 황해로 들어간다.

1) 한강 강천보

 

2) 한강 여주보

 

3) 한강 이포보

 

3.영산강

영산강에는 영산강 승춘보, 영산강 죽산보 등 2개의 보가 있으며,

한강,낙동강,금강과 함께 우리나라의 4대강에 속하는 연산강은

전남 담양군 용추봉에서 발원하여 전남 중서부 지역을 지나 서해로 흘러드는 150km다.

전남 담양군 용면 용연리 용추봉(560m)에서 발원하여 광주시,나주시,영암군 등을 지나 영산강 하구둑에서

서해로 유입하는 하천이다.

1) 영산강 승춘보

2) 영산강 죽산보

 

 

4. 낙동강

낙동강에는 낙동강 함안 창녕보,낙동강 창녕 합천보,낙동강 달성보,낙동강 강정 고령보, 낙동강 칠곡보,낙동강 구미보,

낙동강 악단보,낙동강 상주보 등 8개의 보가 있으며,

강원 태백함백산(1,573 m)에서 발원하여 영남지방의 중앙저지를 통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강.

본류의 길이 525.15 km로 남한에서는 제일 긴 강이며 북한을 포함하면 압록강 다음으로 길다.

함백산에서 발원한 본류는 남류하다가 안동 부근에 이르러 반변천(116.1 km)을 비롯한 여러 지류와 합류,

서쪽으로 흐르다가 함창과 점촌 부근에서 내성천(107.1 km)과 영강(69.3 km)을 합류한 뒤 다시 남류한다.

상주와 선산에 이르러 위천(117.5 km)과 감천(76.6 km)을 합하고 다시 대구 부근에서 금호강(118.4㎞)과 합류한다.

경남에 접어들면서 황강(116.9 km)과 남강(193.7 km)을 합한 뒤 동류하다가,

삼랑진 부근에서 밀양강(101.0 km)을 합친 뒤 남쪽으로 유로를 전환하여 부산광역시 서쪽에서 바다로 흘러든다.

1) 낙동강 상주보

 

 

2) 낙동강 낙단보;

 

3) 낙동강 구미보

 

4) 낙동강 칠곡보

 

5) 낙동강 강정고령보

 

6) 낙동강 달성보

 

7) 낙동강 창녕 합천보

 

8) 낙동강 함안 창녕보

 

 

',·´″″°³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식 퀴즈  (0) 2020.03.02
어버이 날의 의미  (0) 2019.08.07
성씨에 얽힌 숨겨진 사연  (0) 2019.07.29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  (0) 2019.07.29
한식(寒食)의 유래  (0) 2019.07.29

상식 퀴즈   작성일자;2020.30.02.월요일,맑음

 

 

1.당(唐)에서 '해동성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던 나라는?

발해는 9C 전반 선왕때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키고 요동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남쪽으로는 신리와 국경을 접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차지 하였고 지방 제도도 정비 하였다.

이후 전성기를 맞은 발해를 중국인들은 해동성국이라 불렀다.

 

2.1급 발암 물질은?

발암 물질은 암 발생에 직접적으로 원인이 되는 물질이나 세균, 바이러스를 뜻한다.

벤젠,석면,술은 1급 발암 물질이다.

 

3.한 나라의 경제가 전년도에 비해 얼마나 성장 했는가를 백분율로 나타낸 지표는?

경제 성장률은

1년동안 경제활동을 한 각 영역이 전년도와 비교하여 얼마나 성장했는지 판가름하는 지표가 되는 것으로, 

한 나라의 경제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4.미국 국무부가 지정한 테러지원국은?

테러지원국은 미국 국무부에 의해

'국제테러 행위에 반복적으로 지원을 제공한 국가'로 규정된 국가들을 말한다.

1979년 12월 29일에 처음 발표된 목록에는

리비아, 이라크, 남예멘, 시리아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대부분 해제되었고,

쿠바 역시 미국과의 재수교와 관계 개선 발표로 2015년 공식 해제됐다.

현재 이란, 수단, 시리아가 테러지원국으로 규정돼 있다.

 

4.가상화폐로 거래가 이루어질 때 해킹을 막는 대표적인 기술은?

블록체인은 가상화폐로 거래가 이뤄질 때 해킹을 막는 기술이다.

거래 정보를 기록한 데이터를 중앙 서버가 아니라

여러 사용자 네트워크로 분신하고 거래할 때마다 내역을 대조하는 방식이다.

참여자가 많을수록 보안이 강력해 진다.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에 이 기술이 적용돼 있다.

 

5.신제품을 시장에 출시할 때

  이미 시장에서 강력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브랜드명을 이용하는 마케팅 전략은?

기존 브랜드를 활용하는 것은 브랜드 확장 전략이다.

썬키스트가 사탕이나 청량 음료에 브랜드 사용권을 주고 큰 수익을 올린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브랜드 확장 전략은

신제품 출시에 필요한 광고비 등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타 브랜드보다 성공적으로 시장 진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³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4대강 정비 사업과 16개보  (0) 2021.02.23
어버이 날의 의미  (0) 2019.08.07
성씨에 얽힌 숨겨진 사연  (0) 2019.07.29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  (0) 2019.07.29
한식(寒食)의 유래  (0) 2019.07.29

어버이날의 의미        작성일자; 2019.08.07.수요일,맑음

 

어버이의 날의 의미는 어버이의  은혜와 존경을 되새기자는 뜻으로 제정된 날이다.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 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날- 5월8일.

산업화·도시화·핵가족화로 퇴색되어 가는 어른 봉양과 경로 사상을 확산하고,

국민정신계발의 계기로 삼아 우리 실정에 맞는 복지 사회 건설에 기여하도록 하는 범국민적 기념일이다.

               

 

 

1956년부터 5월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여 경로 효친의 행사를 하여오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날’이 거론되어 1973년에 제정, 공포된 ‘어버이날’로 변경,지정하였다.

이 날에는 각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와 조부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하거나 효도 관광에 모시기도 하며,

기념식장에서는 전국의 시·군·구에서 효자·효부로 선발된 사람에게 ‘효자·효부상’과 상금을 수여하고,

이들에게 산업 시찰의 특전이 주어지기도 한다.

또한, 이날을 전후하여 ‘경로주간’을 설정하여 양로원과 경로원 등을 방문, 위로하고,

민속놀이 및 국악행사 등으로 노인들을 위로하며 노인 백일장·주부 백일장을 개최하여

어른 공경에 관한 사상을 앙양한다. 

 

 

',·´″″°³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4대강 정비 사업과 16개보  (0) 2021.02.23
상식 퀴즈  (0) 2020.03.02
성씨에 얽힌 숨겨진 사연  (0) 2019.07.29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  (0) 2019.07.29
한식(寒食)의 유래  (0) 2019.07.29

성씨에 얽힌 숨겨진 사연          작성일자; 2019.07.29.월요일,맑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족보가 가장 발달한 나라다.  원래 김씨였던 안동 권씨 

안동 권씨의 시조는 원래 신라 왕실의 후손인 경주 김씨였다.

서기 927년,후백제의 견훤이 927년 경주에 침입해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세우자

안동에 살던 김행은 복수를 결심한다.

김행은 3년 후에 후백제군과 왕건의 고려군이 안동 지역에서 대치하자 

성주 김선평과이 지역의 호족 장정필과 함께 군사를 모아 

안동군 와룡면에서 견훤의 8000 대군을 함몰 시키는 큰 공을 세운다.

이 전투로 후삼국의 주도권을 쥐게 된 왕건은 김행에게 권씨 성을 내린 것이 안동 권씨의 시작이다.

 
고려는 성종2년(983) 권행,김선평,장정필 등 세 명을 기리기 위해

현재의 안동시 북문동에 삼태사묘를 세웠다.

천여 년이 지난 현재도 안동 권씨(시조)와 안동 김씨(시조),안동 장씨(시조)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 파평 윤씨 시조 겨드랑이에 잉어 비늘

파평 윤씨는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운 윤신달을 시조로 삼는데 잉어를 먹지 않는다.

여기에는 시조 윤신달과 그 5대손 윤관이 관련되어 있다.

경기도 파평(파주)에 살던 윤 온 할머니는

파평산 기슭의 용연이란 연못에서 금궤를 주워 열어보니 한 아이가 누워 있었다.

그 아이의 어깨 위에는 붉은 사마귀가 돋아 있고

양쪽 겨드랑이에는 81개의 잉어 비늘이 나 있었으며 발에는 황홀한 빛을 내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이 아이가 훗날 윤온 할머니의 성을 따서 윤신달이 된다.

파평 윤씨의 또 하나의 잉어 전설은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전설에서 유례되는데,

거란과 싸우던 윤관이 함흥 선덕진 광포에서 쫓겨 강가에 이르자

잉어들이 다리를 만들어주어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윤관이 영평(파평)백에 봉해짐으로써 파평을 본관으로 삼은 윤씨들은

잉어의 자손이자 윤관에게 도움을 준 데 대한 보답의 뜻으로 잉어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  자라를 먹지 않는 경주 이씨

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형 당한 이원의 모친은 사육신 박팽년의 딸이었다.

그의 부친 이공린이 혼례날 밤 꿈에 늙은 첨지 여덟 명이 절하면서

“우리들이 장차 솥에 삶겨서 죽게 되었는데,

만약 죽을 생명을 살려 주시면 후하게 은혜를 갚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놀라서 깨어보니 자라 여덟 마리를 막 국에 넣으려고 하므로 즉시 강물에 놓아 보내라고 명령했다.

이때 한 마리가 달아나자 어린 종이 삽으로 잡으려다가 잘못해 자라목을 끊어 죽이고 말았다.

그날 밤에 첨지 일곱 명이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꿈을 꾸었다.

결혼 후 이공린은 여덟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오·귀·원·타·별·벽·경·곤으로 지었다. 

꿈의 상서로움을 기념해 자라나 물고기와 관련이 있는

맹(맹꽁이)·귀(龜:거북)·어(魚:물고기)를 부수로 사용한 것이다.

사화로 희생된 이원이 어린 종에게 죽은 자라라고 해석되면서

꿈의 징험은 더욱 뚜렷해진 셈이 되었는데,

이긍익은 연려실기문에서 ‘지금도 경주 이씨들은 자라를 먹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 통혼 않는 김해 김씨,김해 허씨,인천(인주) 이씨

김해 김씨의 시조는 가락국의 김수로왕인데,

그 왕비는 멀리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 허황옥이었다.

그런데 김해 김씨는 김해 허씨,인천(인주) 이씨와 통혼하지 않는다.

장자 거등왕은 수로왕의 뒤를 이어 김해 김씨가 되었지만

김해 허씨 등은 어머니 허황후의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문적인 ‘금관고사급허성제문집’은 허황후는 일곱 아들을 낳았는데

‘장자 거등은 태자에 봉해졌고 차자는 어머니의 성을 좇아 허씨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형제간이기 때문에 통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씨가 포함 된 데는 신라 경덕왕 14년(755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고 알려지고 있는 허기와 관련이 있는데,

그는 안록산의 난 때문에 귀국하지 못하고 당나라 현종을 따라 촉나라로 피란했다.

난이 평정된 후 현종이 이를 가상히 여겨 종성인 이씨 성을 하사했는데

이후 허씨는 이씨와 복성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인천 이씨는 양천 허씨에서 갈라진 태인 허씨에서 다시 갈라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천 허씨의 시조 허선문은 원래 김해 허씨로,

왕건이 견훤과 싸울 때 군량을 공급한 공으로 공암(양천)을 식읍으로 받았는데,

여기에서 허사문을 시조로 하는 태인 허씨가 갈라져 나왔고,

태인 허씨에서 다시 이허겸을 시조로 하는 인천 이씨가 갈라져 나왔다.

이처럼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 인천 이씨 등은 모두 같은 시조에서 갈라진 한핏줄이며,

그래서 이들은 서로 다른 성씨에도 불구하고 가락 중앙 종친회에 함께 소속되어 있다.



☞ 결혼 금하는 청송 심씨와 나주 박씨 

청송 심씨와 나주 박씨는 원한 때문에 혼인을 거부하는 성씨다.

세종비 소헌 왕후 심씨의 부친 심온은 세종의 즉위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세종 즉위년인 1418년,

명나라에 사은사로 갔다가 그를 전별하는 거마가 장안을 뒤 덮었던 것이

상왕 태종의 심기를 건드려 화를 당한다.

태종은 심온의 동생 심정이 총제로 있으면서

‘금위 군사로 상왕(태종)과 주상(세종) 두 분을 호위하려니 숫자가 적다’며 불평한 것을

역모로 몰아 고문 끝에 심온을 끌어들인다.

귀국길에 의주에서 체포되어 사형 당한 심온은,

이를 좌상 박은의 무고 탓으로 돌려 ‘이후로는 박씨와 혼인하지 말라’고 유언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두 집안이 혼인하는 예가 드물었는데,

사실상 심온을 죽인 인물은 박은이 아니라 태종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 당파 따라 옷고름 달리 매기도

조선 후기에는 당쟁이 격화되면서 서로 다른 당파 끼리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당파에 따라 옷고름 매는 방법까지 달라 멀리서 봐도 서로 무슨 당인지 알 수 있을 정도 였다니

그 정도의 심각함을 알 수 있다.

 

1985년을 기준하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성씨는 총 275개, 본관은 3349본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95%는 120여개 성씨 600여 문중에 속해 있으며,

나머지 150여개 성씨에 해당하는 인구는 총인구의 5%정도에 불과하다. 

다섯개 성씨 외에 100만명이 넘는 성씨는 없다.

첫번째는 많은 성씨는 본관을 고려 초기 부터 쓰기 시작한 김해 김씨다.

두번째는 밀양 박씨이고

세번째는 전주 이씨다. 

네번째로 경주 김씨

다섯번째는 경주 이씨다.

 

특이한 점은 많은 씨족이 신라,가야국,중국,일본,베트남,몽골 등에 원류를 두고 있다 것이다.

고구려나 백제 또는 발해에 원류를 두고 있는 씨족은 찾아 보기 힘들다.

이유인 즉,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백제인들은 그 땅에 살았으며,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도 고구려인들은 그 땅에 살며 발해를 건국하는 세력이 됐다.

발해가 멸망한 후에는 수십만 발해인들이 고려로 귀속돼 들어왔다.

현재 백제계라 주장하는 씨족은 '부여 서씨'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고,

발해계로 주장하는 씨족은 '영순 태씨'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고려에 의해 멸망한 신라 왕손들은

왕건의 호족 융합 정책에 따라 지배층의 지위를 계속 이어갔다.

왕건은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백부 김억렴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고,

경순왕에게 자신의 장녀 낙랑공주를 시집보낸 뒤 경주를 식읍으로 줬다.

 

경주 김씨 족보는,

경순왕의 셋째 아들 김명종을 경주 김씨의 대표적 지파인 영분공파의 시조로 모시고 있다.  

왕건의 개성(송악) 왕씨는,

조선 개국 후 극심한 탄압을 받아 옥(玉)·금(琴)·마(馬)·전(田)·전(全)·김(金)씨 등으로 변성해

혈통을 유지해야 했으며,

이들은 조선 정조 때에 와서야 문헌 등을 다시 조사해 왕씨로 성을 도로 바꾸고 개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반면 조선의 종성인 전주 이씨들은

합방의 형식을 강조하고 싶었던 일제에 그다지 큰 탄압은 받지 않아 현재도 대성으로 남아 있다. 

나라가 망한 뒤 수많은 사람들이 성(姓)을 버린 채 지배 당하며 살았고,

출신을 숨기거나 변조했으며

후대의 자손들은 권력의 변천에 따라 유력한 다른 씨족에 흡수돼 들어갔거나 근근이 혈족을 보존해 갔다.


‘완벽한 양반집안’ 존재하지 않아

우리 나라 성씨는 실제 중국에서 건너온 자손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귀화해 온 자손이다.

조선 시대는 사대 외교가 일반적인 정치 행태의 하나였다.

자기 신분을 높여 보려는 의도로 중국 성씨를 갖다 붙이는 경우가 흔했다. 

일부 씨족의 경우엔 중국의 역사적 인물을 원조로 기록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심할 경우 족보를 편찬하는 시점에서 수천년 전 인물을 자신들의 조상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어느 한 인물이 처자를 데리고 중국에서 조선으로 귀화하여 계속 조선에서 살았다면

그의 아들은 조선 여자와 결혼했을 것이고

자손들도 대대로 조선인과 결혼해 자식을 낳고 살았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5세손 아래로 내려가면 그 자손의 혈통은 현지인의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귀화한 지 100년이 지났다면

그 사람의 자손들에겐 이미 귀화국의 피가 더 많이 흐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조선 초 한반도의 인구는 1000만명을 넘지 않았다.

우리 계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느 특정 인물이 중복돼 조상으로 등장하는 것을 기록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5대 이상 이 땅의 사람들과 혼사를 맺으며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같은 혈통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0%도 안되던 ‘양반’ 조선 말 70%로 급증

우리나라에선 어느 문중이든 그 소속원 모두가 완벽한 양반이라고 할 수 없다.

양반 계급은 조선 초기만 해도 전체 인구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던것이

조선 후기에 이르러 70%로 갑자기 늘어나게 된다.

1909년, 일본의 압력으로 민적부를 호구단자로 대체하면서

성이 없던 노비들에게 성과 본관을 지어 주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우리 성은 모두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성을 쓴 시기는

한자가 유입된 시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성과 본관은 원래 씨족의 명칭이었기 때문이다.

부족국가 시대에 중국식 성이 없었다 하더라도

부족의 명칭이 하나의 성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와 같은 성을 쓰게 된 것은 4~5세기부터다.

하지만 성을 쓴 초기에는 본관이란 것이 없었고

필요에 의해 스스로 성씨를 정한 경우도 있었으며 임금이 정해준 사성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문헌으로 나타난 최초의 사성은

고구려 시조 고주몽은 부여에서 남하 도중 만난 세 명에게

각각 극(克)씨,중실(仲室)씨,소실(小室)씨를 내려줬는 성이다.

이후 신라의 3대 유리왕은

박혁거세를 추대한 육부의 촌장에게 이(李)·정(鄭)·손(孫)·최(崔)·배(裵)·설(薛)씨를 내려준다.

경주가 본관인 이들 6개 성씨는 모두 현존하는데 반해

주몽이 사성한 세 성씨는 모두 없어졌다는 사실은

역사에서 왕권의 흥망 성쇠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사라진 성씨 포함하면 총 496개 성

본관은 고려 초에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보편화된 것은 고려 중기에 이르러서다.

본관은 연고가 있는 군현의 명칭을 따라 정해졌는데

평민은 감히 군현의 명칭을 쓰지 못하고 그 아래 단위인 방(坊)의 명칭을 따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몰락하여 천민이 된 천민 아닌 천민은 성도 본관도 가질 수 없었다.

 

우리나라 성씨의 수는

1486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277성이 게재돼 있고,

영조 때의 도곡 이의현이 편찬한 ‘도곡총설’에는 298성이 나와 있으며, 

1930년 국세 조사에서는 250성이,

1960년 국세조사에서는 250성이,

1985년 인구 및 주택센서스에서는 275개의 성이 보고되고 있다. 

 

18세기 들어 족보 편찬 일반화 

우리나라에서 왕의 계대가 아닌 옛 명가들의 계보가 단순한 형태로 형성되기 시작한 연대는

13세기로 보인다. 

고려 말(14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일부 명문가의 소략한 계보와

1401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해주오씨족도’가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계보가 체계화되어 보첩의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실물은 전하지 않으나

1423년의 문화 유씨의 ‘영락보’ 서문이 전하고 있는 것을 보아, 

고려 후기 늦어도 15세기 초이다.

러나,100여 씨족을 제외한 대다수의 씨족에서 족보 편찬이 일반화된 것은 18세기이다.

16세기 이전에는 족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동일 혈족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16세기 이전의 족보에 이름이 오를 수 있는 사람을 따져보면

외손을 포함해도 100여명이 채 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대적으로 족보를 편찬했다기보다는

간단한 계보를 기록한 ‘단자’를 만든 것으로 봐야 한다.


 성씨 마다 초간보

1476년에 발행돼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안동권씨세보(성화보)’가 

제대로 편찬된 족보다운 족보로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임진왜란(1592) 이전에 발행된 족보로 가장 방대한 것은

1565년에 발행된 ‘문화류씨세보 (가정보)’로 외손까지도 매우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귀중한 유산이다.

이 족보는 수십년 전에 분실되어 현재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18세기에 초간보를 발행한 명문가는

임란 때의 명 재상 서애 유성룡을 배출한 풍산 류씨는 1758년에야 초간보(무인보)를,

충무공 이순신과 율곡 이이를 배출한 명문 덕수 이씨는 1712년에 초간보(임진보)를,

충무공의 선봉장이었던 방덕용,방응원을 배출한 온양 방씨는

1781년에 초간보(신축보)를 낸다.충무공은 온양 방씨의 사위였다.

 

문과급제자 수

이들 19세기 이전에 발행된 옛 족보는 학술상으로 매우 중요하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족보를 편찬하거나 발행하지 못한 씨족도 상당수 있다. 

문과급제자 1만4600여명 중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은 전주 이(李)씨가 가장 많고,

안동 권 씨,파평 윤씨, 남양 홍씨,안동 김씨,청주 한씨, 밀양 박씨, 광산 김씨, 연안 이씨,

여흥 민씨,경주 김씨,한산 이씨 순이다.

상위 50개 가문이 전체 합격자의 56%를 차지하는데, 1명만 배출한 가문도 319개나 되었다.

10명 이상의 정승을 배출한 전주 이씨가 22명으로 역시 1위,

동래 정씨가 16명으로 2위, (신)안동 김씨가 15명으로 3위이고,

청송 심씨 13명,청주 한씨 12명,파평 윤씨·여흥 민씨

각 11명 등이 잇고 있다.

 

☞ 당파에 의한 명가 등장

후기 당쟁이 격화되자 당파에 따른 명가가 등장하는데,

조선 멸망 시까지 집권당이었던 노론은 안동 김씨,연안 이씨,광산 김씨 등이 핵심가였다.

이 무렵에는 한 씨족 내에서도 특정 지파에서 인재가 집중 배출될 때 명가로 평가받았다.

예를 들면 연안 이씨 판사공파는 이단상,이일상,이은상),이익상 등 상(相)자 돌림의 8상(相)을 배출했다.

광산 김씨 사계파도 김만기(숙종비 인경왕후의 부친)는 ‘구운몽’의 작가인 동생 김만중과

형제 대제학이었을 뿐만 아니라 김춘택,김복택 등 이른바 8택의 조부이기도 했다.

김춘택은 벼슬도 없는 신분으로 남인 정권을 붕괴시키고

서인 정권을 등장시킨 갑술환국의 주역으로 유명하다.

 

전주 이씨,정승 22명 배출해

조선 말기에는 안동 김씨 중 김상헌의 직계 후손들이 세도정치의 주역이 되었다.

세도정치 이전에도 김수항,김수흥,김창집,김창협,김창흡 등을 배출했는데,

김창집이 당쟁 와중에서 사형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손자 김조순이 순조의 장인으로 세도정치를 열었다.

김조순 대에 우의정 김달순,이조판서 김문순,형조판서 김희순 등 모든 요직을 독차지한 이들은

아들 대인 근(根)자 항렬에 와서는 김좌근,김흥근이 영의정,김홍근이 좌의정,김응근이 공조판서를 역임했으며,

다음 병(炳)자 항렬에서는 김병학,김병국,김병시가 영의정, 김병덕이 좌의정,김병기가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이들 가문은 명성황후 민씨의 여흥 민씨와 함께 ‘조선 멸망의 원인’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소론은 영조 중기 이후 권력에서 소외되었지만

경주 이씨 백사파 만은 조선 말까지 살아남아 고종 때에도 이유원이 영의정을 지냈다.

나라가 망하자 이 가문의 이회영 6형제는

전 가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나섰다가 이시영을 제외한 5형제가 순국하는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성씨 

ㄱ-가(賈) 간(簡) 갈(葛) 감(甘) 강(姜) 강(康) 강(强) 강(剛) 강(疆) 개(介) 견(堅) 견(甄)

     경(景) 경(慶) 계(桂) 고(高) 곡(曲) 공(孔) 공(公) 곽(郭) 구(丘) 구(邱) 구(具) 국(菊)

     국(國) 국(鞠) 군(君) 궁(弓) 권(權) 근(斤)

     금(琴) 기(奇) 기(箕) 길(吉) 김(金) 궉(喬아랫부분을 鳥로) 

ㄴ-나(羅) 남(南) 낭(浪) 내(乃) 내(奈) 노(盧) 노(魯) 노(路) 뇌(雷) 남궁(南宮) 

ㄷ-단(段) 단(單) 단(端) 당(唐) 대(大) 도(道) 도(都) 도(陶) 돈(敦) 돈(頓)동(董)두(杜)독고(獨孤) 동방(東方)

ㄹ-뢰(賴) 류(柳)

ㅁ-마(馬) 마(麻) 만(萬) 매(梅) 맹(孟) 명(明) 모(牟) 모(毛) 목(睦) 문(文) 미(米) 민(閔)

ㅂ-박(朴) 반(潘) 반(班) 방(房) 방(方) 방(邦) 방(龐) 배(裵) 백(白) 범(范) 범(凡) 변(卞)

     변(邊) 복(卜) 봉(奉) 봉(鳳) 부(夫) 비(丕) 빈(彬) 빈(賓) 빙(氷) 

ㅅ-사(史) 사(謝)사(舍)삼(森)상(尙)서(徐)서(西)석(昔) 석(石) 선(宣) 설(卨) 설(薛)섭(葉) 성(成) 성(星)

     소(蘇) 소(邵) 손(孫) 송(宋) 송(松) 수(水) 수(洙) 순(淳) 순(荀) 순(舜) 순(順) 승(承)승(昇) 시(施)

     시(柴) 신(愼) 신(申) 신(辛) 심(沈) 사공(司空) 서문(西門) 선우(鮮于)

ㅇ-아(阿) 안(安) 애(艾) 야(夜) 양(梁) 양(楊) 양(樑) 양(襄) 어(魚) 엄(嚴) 여(呂) 여(余)여(汝) 연(延)

    연(燕) 연(連) 염(廉) 영(影) 영(榮) 영(永) 예(芮) 오(吳) 옥(玉) 온(溫)옹(邕) 옹(雍) 왕(王) 요(姚)

    용(龍) 우(禹) 우(于) 운(雲) 원(元) 원(袁) 위(韋) 위(魏)유(兪) 유(劉) 유(庾) 육(陸) 윤(尹) 은(殷)

    음(陰) 이(李) 이(異) 이(伊) 인(印) 임(林)임(任)

ㅈ-자(慈) 장(張) 장(章) 장(莊) 장(蔣) 전(全) 전(田) 전(錢) 점(占) 정(丁) 정(程) 정(鄭)

     제(諸) 조(趙) 조(曺) 종(宗) 종(鍾) 좌(左) 주(周) 주(朱) 준(俊) 지(智) 지(池) 진(晋)

     진(眞) 진(秦) 진(陳) 제갈(諸葛)

ㅊ-차(車) 창(昌) 창(倉) 채(蔡) 채(菜) 채(采) 천(千) 천(天) 초(楚) 초(肖) 최(崔) 추(秋)추(鄒)

ㅌ-탁(卓) 탄(彈) 태(太)

ㅍ-판(判) 팽(彭) 편(扁) 편(片) 평(平) 포(包) 표(表) 풍(馮) 피(皮) 필(弼)

ㅎ-하(河) 하(夏) 한(漢) 한(韓) 함(咸) 해(海) 허(許) 현(玄) 형(邢) 호(扈) 호(胡) 홍(洪)

     화(化) 황(黃) 황보(皇甫) 황보(黃甫) 후(后)

 

희귀한 성씨

개성 내씨,교동 뇌씨,희천 편씨,궉,삼,애,옹,탄씨 등은 희귀姓으로 인구 100명도 안된다. 

1985년의 인구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성씨는 275성이고, 본관은 3349본이다.

100만 명 이상의 본관 성씨는 김해 김씨, 밀양 박씨, 전주 이씨 등 5개에 불과하다.

10만 명 이상의 본관 성씨는 모두 78개로서 여양 진(陳)씨가 10만232명이다.

3만7872명의 삭녕 최(崔)씨가 150위인데,

인구 천 명에 한 명꼴 정도이니 그 다음부터를 희귀 성씨로 분류해도 좋을 것이다.

희귀 성씨는 대개 귀화 성씨가 많지만

여기에는 기자(箕子)를 시조로 모시는 여러 성씨들처럼 후대에 자의적으로 연결한 경우도 적지 않다.

희귀 성씨에는 역사 사건들과 관련있는 성씨들이 있는데 천녕 견씨가 그런 예다.

왕건이 후백제 견훤의 아들 신검을 토벌할 때 고려 대상이었던 견권을 시조로 모시고 있다.

아자개를 시조로 모시는 견씨와 견훤을 시조로 모시는 견씨 등 6개 본관에 1985명이 있다.

희기성 중 옛 왕족의 성씨인 개성 내씨(開城 乃氏)는 원래 개성 왕씨였는데, 

조선 개국 후 탄압을 피해 도망가던 중 임진강 나루터에서 검문을 하던 군졸이 성씨가 뭐냐고 묻자

당황해서 ‘네?’라고 반문한 것이 내씨로 기록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283명으로 조사되었다.

밀양 대씨(大氏)는 발해의 국성에서 유래했다.

시조 대중상(걸걸중상)의 아들이 대조영이다.

발해가 망한 후 그 후손이 경남 밀양에 정착했는데 밀양과 대산(김해)의 두 본관에 499명이 있다. 

 개성 노씨(開城 路氏)의 시조 노은경은 원나라 한림 학자로서 고려 공민왕 때 노국공주를 따라와

개성에 정착했는데,1307명이 조사되었다.

강음 단씨(江陰 段氏)의 시조 단희상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병으로 왔다가 귀화해 강음에 정착했는데,

조사에 따르면 720명이다.

사성(賜姓) 김해 김씨는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의 부장이었던 김충선은

일본 이름이 사야가였으나 귀화 후 선조로부터 김충선이란 이름을 하사받고

진주 목사 장춘점의 딸을 아내로 맞아 들였다.

사성 김해 김씨는 우록 김씨로 불린 적도 있는데,김해 12만 5277명,우록 130명이었다.

연안 인씨(延安 印氏)의 시조 인후는 ‘후라타이’란 이름의 몽골인이었는데,

아들 인승단이 충목왕 때 연안부원군에 봉해진 것이 본관이 되었다. 조사에 따르면 120명이 있다.

화산 이씨(花山 李氏)는 안남(베트남)계 왕족인데,

안남국이 트란 왕조에 점령되면서 국왕 이천조의 둘째 왕자 이용상이,

고려 고종 13년(1226)에 황해도 옹진군 화산으로 이주하자 고종이 화산군에 봉했다.

조사에 따르면 1131명이 있다.

‘천방지축마골피’는 잘못된 통설

‘천방지축마골피’를 천계(賤系)의 대표인 것처럼 말하지만 근거가 없다.

‘축씨’와 ‘골씨’는 1985년 조사 때의 275개 성씨 중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천씨는 ‘하늘 천(天)’자와 ‘일천 천(千)’자를 쓰는 두 경우가 있다.

천(天)씨는 밀양 등 5개 본관에 1351명이 있는데,

조선 정조 때 천명익이 진사시에 합격한 것으로 봐서 천계(賤系)는 아니다.

영양 천씨(潁陽 千氏)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군으로 온 귀화 성씨로서

중시조 천만리가 자헌대부와 화산군에 책봉 받았으니 천계(賤系) 천계가 아니다.

방씨도 대표격인 온양 방씨(溫陽 方氏)의 경우 중간 시조로 알려진 방운이,

고려 성종 때 온수(온양)군(君)에 봉해지자 온양을 본관으로 삼은 것이다.

남양 방씨(南陽 房氏)는 고려 때 벽상공신 삼중대광보국을 역임한 방계홍을 1세 조상으로 하고 있으며,

개성 방씨(開城 龐氏)도 고려 때 원나라 노국대장 공주를 따라 온

원나라 벼슬아치 방두현을 시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천계(賤系)는 아니다.

지씨의 대표격인 충주 지씨(忠州 池氏)는 지용수가,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일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조선 시대 때는 문과 급제자 10명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천계(賤系)가 아니다.

복성(複姓) 중에는 남궁,독고,사공,선우,제갈,황보씨 등 비교적 많이 알려진 성씨 외에,

강전,장곡,서문씨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성씨들이 있다.

이 중 서문씨를 예로 들면,

안음 서문(安陰 西門)씨는 1985년에 2328명이 조사되었는데,

공민왕 때 노국대장 공주를 따라 들어온 서문기가 안음군에 봉해지면서 본관이 되었다.

발음이 희귀한 성씨로는 궉씨가 있다.

조선시대 학자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순창에 궉씨가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으며 중국의 성이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있고,

실학자 이덕무의 앙엽기에는 ‘선산에 궉씨촌이 있는데 선비가 많다’는 기록이 있다.

조사에 따르면 선산,순창,청주의 세 본관과 243명이 있다.



인구가 100명 이하인 극희귀 성씨들도 적지 않다.

사(謝)씨는 진주와 한산의 두 본관이 있는데,

1960년에 19명이 있었으나 1985년에는 4가구에 30명으로 늘었다.

삼가 삼(三嘉 森)씨는 1930년에 조사 때는 나타나지 않은 성씨인데 1985년에는 85명이 확인되었다.

애(艾)씨는 연풍,전주,한양의 세 본관에 66명이 있는데, 1930년 조사 때도 있던 성씨이다.

파평 옹씨(坡平 雍氏)는 조사 때 80명이 확인되었다.

원래 순창 옹(邕)씨였는데 1908년 민적 기재 때 옹(雍)씨로 잘못 기재되었다고 전한다.

탄(彈)씨는 진주,해주의 두 본관에 94명이 있는데,

1930년도 조사 때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구한 말 무관학교 교관 중에 탄원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전부터 실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희천 편(扁)씨는 조사에 따르면 68명이 있는데,

1930년 조사 때 처음 나타난 성씨로 충북 옥천에 1가구가 살고 있었다. 

교동 뇌씨(喬桐 雷氏)는 조사 때 정확히 100명이었다.

강화도 교동이 연산군을 비롯해 여러 선비들의 귀양지였다는 점에서 귀양 갔던 선비의 후예로 추측된다.

그 외에 51명의 연안 단(單)씨와 36명의 한산 단(端)씨 등이 있다.

 

☞ 로버트 할리 귀화로 생긴 영도 하씨

최근에 생긴 희귀 귀화 성씨에는 영도 하씨(影島 河氏)가 있는데

미국 태생의 국제변호사 이자 사업가인 로버트 할리가 1997년 귀화하면서 성명을 하일로 정했는데,

한국인 부인에게서 낳은 3명의 자녀가 있다. 

 

',·´″″°³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식 퀴즈  (0) 2020.03.02
어버이 날의 의미  (0) 2019.08.07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  (0) 2019.07.29
한식(寒食)의 유래  (0) 2019.07.29
식목일의 유래  (0) 2019.07.29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    작성일자; 2019.07.29.월요일,맑음

 

1.갈릴레오 갈릴레이 명언의 진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불후의 명언은 진실이 아니다.

    후대 계몽주의 사조들이 종교와 과학의 대립을 부각 시키기 위해 지어낸 허구다.

2.나폴레옹 키의 진실

    당시 프랑스의 군인들의 평균 키가  164cm 였는데,

    나풀레옹의 키는 168cm이므로 평균키가 넘었다.

    단신으로 영웅으로 유명한 나폴레옹은 사실 키가 작지 않았다.

3.한국의 영어 표기 Corea→Korea로의 진실

   한국의 영어 표기는 원래 Corea 였는데,일제가 Korea로 바꾸었다는 진실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 혼용하여 사용 하여 왔으며,

   일제에 의한 것 임을 입증 할 증거는 없다.

4.힛틀러 독재의 진실

   민주주의 방식으로 정권을 잡은 힛틀러는 구테타가 아니다.

   1932년 총선에서 나치당은 37.4%의 지지를 얻으며 바이마르 공화국 제1당으로 등극

   하였다.이를 기반으로하여 이듬해 총리로 임명 되었으며,1934년 총통이 되어 독재 체제를

   구축하였다.

5.김정호 대동 여지도의 진실 

   김정호는 대동여지고를 만들때 전국을 답사하지 않았다.

   당시 까지의 지도와 지리지를 고증하며 집대성 한 것으로

   일제가 조선의 선비들은 지도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며 깍아 내리는 과정에서 잘못

   알려진 속성이다.

6.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진실

   이집트의 여왕으로 알려진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인이 아니다.

   알랙산더 대왕 사후 이집토 총독이었던 프톨레마 이오스 왕조의 마즈막 왕비였으며,

   당연히 그리스 혈통이었다.

7.만유 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과 사과 이야기의 진실

   만유 인력의 발견한 뉴턴의 "뉴턴의 사과"는 부풀러진 일화다. 

   만유 인력은 20년간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다.

8.크리스마스 날짜의 진실

   크리스마스 12월25일은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 아니다.

   4세기 로마 시대 카돌릭교가 공인 된 후 상징적으로 공인된 날이다.

 

        

 

 

',·´″″°³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버이 날의 의미  (0) 2019.08.07
성씨에 얽힌 숨겨진 사연  (0) 2019.07.29
한식(寒食)의 유래  (0) 2019.07.29
식목일의 유래  (0) 2019.07.29
한국사의 반란  (0) 2019.07.14

한식(寒食)유래      작성일자; 2019.07.29.월요일.맑음

 

한식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첫번째, 춘추시대의 인물인 개자추 설화다.

개자추는 망명해 있던 진나라의 공자 중이(重耳)를 위해 헌신했고,

나중에 진 문공(재위 B.C.636~628)으로 즉위했지만 개자추에게는 아무런 벼슬을 내리지

않자 분개한 개자추는 면산으로 은둔했고,

뒤늦게 이를 깨달은 진 문공이 개자추를 등용하려 했지만,그는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했다.

진 문공은 개자추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고 타죽고 말았다.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만을 먹는 한식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두번째,고대의 개화(改火) 의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원시사회에서는 모든 사물이 생명을 가지며,

생명이란 오래되면 소멸하기 때문에 주기적 갱생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불의 경우도 오래된 불은 생명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오래 사용한 불을 끄고 새로 불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개화 의례를 주기적으로 거행했는데,

한식이란 구화(舊火)의 소멸과 신화(新火) 점화까지의 과도기란 것이다.

한식이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인 것도 28수(宿)의 하나이며

불을 관장하는 심성(心星)이 출현하는 것이 이때이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개자추의 죽음은 구화를 끄면서 제물을 태우는 관습을 반영한 설화라고 한다.

둘 중 개화 의례와 관련짓는 후자 두번째 설이 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정의를 내리면

한식은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 양력으로는 4월5일 무렵이며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다.

일정 기간 불의 사용을 금하며 찬 음식을 먹는 고대 중국의 풍습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금연일,숙식,냉절이라고도 한다.

한식은 음력을 기준으로 한 명절이 아니므로 음력 2월에 있을 수도 있고,

음력 3월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2월 한식과 3월 한식을 구분하는 관념이 있다.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세월이 좋고 따뜻하다고 여기며,

3월에 한식이 있으면 지역에 따라서 개사초를 하지 않는다.

 

          

 

 

 

',·´″″°³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씨에 얽힌 숨겨진 사연  (0) 2019.07.29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  (0) 2019.07.29
식목일의 유래  (0) 2019.07.29
한국사의 반란  (0) 2019.07.14
헬레니즘(Hellenism)과 신화  (0) 2019.01.15

식목일 유래       작성일자; 2019.07.29.월요일,맑음

 

식목일은 나무를 아끼고 잘 가꾸도록 권장하기 위하여 제정된 날이다.

해마다 4월5일을 식목일로 정하여 국가적인 행사로 나무를 심는다.

 

식목일의 유래는 

1872년4월10일,

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제1회 식목 행사가 열렸으며,

그 후,식목 운동을 주장한 J. S. 모텅의 생일인 3월22일을 아버데이(나무의 날)로 정하여

각종 축제를 벌인 것이 시초로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식목일 4월5일.

이 날의 제정 유래는

신라가 당나라의 세력을 한반도로 부터 몰아내고,

삼국통일의 성업을 완수한 677년(문무왕17년),2월25일에 해당되는 날이며,

또한 조선 성종이 세자.문무 백관과 함께 동대문밖의 선농단에 나아가 몸소 제를 지낸 뒤

전(籍田)을 친경(親耕)한 날인 1493년(성종24).3월10일에 해당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이 날은 통일 성업을 완수하고 왕이 친경의 성전을 거행한 민족사와

농림 사상에 매우 뜻있는 날일 뿐만 아니라,

계절적으로 청명을 전후하여 나무 심기에 좋은 시기이므로,

1949년 대통령령으로 제정하여 이 날을 식목일로 지정하였다.

1960년에 식목일을 공휴일에서 폐지하고,3월15일을 ‘사방의 날’로 대체 지정하였으며,

1961년에 식목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어 공휴일로 부활되었다.

1982년에 기념일로 지정되었으나,

2006년부터 다시 공휴일에서 폐지되었다.

 

                  

 

 

 

',·´″″°³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  (0) 2019.07.29
한식(寒食)의 유래  (0) 2019.07.29
한국사의 반란  (0) 2019.07.14
헬레니즘(Hellenism)과 신화  (0) 2019.01.15
제주마  (0) 2018.12.19

한국사의 반란      작성일자; 2019.07.14.일요일,맑음

 

1.위만의 반란(기원전 194);

  기원전 194년에 일어난 정변으로 고조선의 서쪽 땅을 다스리며

  변방을 방어하던 박사 위만이 정변을 일으켜

  준왕(초기국가시대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됐다.

  위만은 본래 중국 연나라 사람으로,

  연나라 왕 노관이 한나라에 불만을 품고 흉노로 망명하자

  서기전 195년에 약 1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들어왔다.

  그때 준왕은 위만을 믿고 서쪽 땅 100리를 다스리게 하면서

  한나라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군사를 모아 한나라 군대가 침입해 온다는 거짓으로 내세워

  왕검성으로 들어가 준왕을 쫓아냈다.

  위만은 ‘조선’이란 나라 이름을 바꾸지 않았고

  토착 세력을 지배층에 참여시켜 정치적 안정을 꾀했다.

   이후의 고조선을 ‘위만조선’이라 부른다.

   한편 쫓겨난 준왕은 뱃길로 한반도 남쪽에 내려가 한왕(남쪽 지역 불투명하다)이 됐다.

2.주근의 난

   초기 국가 시대 마한의 부흥을 도모하여 16년에 우곡성에서 주근이 반란을 일으킨 난으로

   백제 시조 온조왕이 고구려에서 한수 유역으로 이동하여 오자 마한왕은 동북 100리의

   땅을 할양하여 거주하게 하였다.

   그 뒤 백제는 강성해져 온조왕 6년 때 웅천책을 설치하는 문제로 마한과 국경 분쟁을

   일으키고, 8년에는 마한의 공격하여 그 도읍을 함락하고 병합하였다.

   이 때 마한의 원산,금현의 두 성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지만 백제의 공격으로

   이듬해 4월에 함락되고 그 성의 백성을 한산 북으로 옮겼다.

   이에 마한은 멸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369년(근초고왕 24)에 마한이 멸망하였으니 이 때의 마한의 멸망은 완전

   멸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마한의 패배와 남쪽으로의 후퇴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16년에 마한의 장군 주근이 마한의 부흥을 도모하여 우곡성에 웅거하여 백제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백제 정벌군에게 패배하자 주근은 목매어 자결하였다.

   백제는 그 시체의 허리를 베고 가족을 처벌하였다.

3.길선의 난

   삼국시대 신라의 아찬으로 165년.10월에 모반에 실패해 백제로 건너간 관리로써

   모반을 하다가 실패하여 이웃 백제로 달아났는데,

   아달라이사금은 백제의 개루왕에게 글을 보내어 그를 돌려보내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개루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아달라이사금은 군사를 일으켜 백제에 쳐들어갔으나,백제는 군비를 갖추고 성을

   굳게 지키며 나와 싸우지 않았다.

   그리하여 군량이 떨어진 신라군은 싸움을 포기하고 군사를 돌이켰다.

4.좌가려.어비류의 난(190)

5.발기의 난(197)

6.예물.사구의 난(248)

7.일우.소발의 난(286)

8.우복의 난(327)

9.해구.연신의 난(478)

10.백가의 난(501)

    간주리의 난(557)

    칠숙.석품의 난(631)

    비담의 난(647)

    김흠돌의 난(681)

    각간의 난(768)

    대공.대렴의 난(768)

    김융의 난(770)

    김은거의 난(775)

    염상.정문의 난(775)

    김지정의 난(780)

    제공의 난(791)

    김헌창의 난(822)

    김범문의 난(825)

    홍필의 난(841)

    장보고의 난(846)

    양순.흥종의 난(847)

    김식.대흔의 난(849)

    윤흥 형제의 난(866)

    김예.김현의 난(868)

    근종의 난(874)

    신홍의 난(879)

    김요의 난(887)

    원종.애노의 난(889)

    적고적의 난(892)

    후백제 건국(900)

    후고구려 건국(901)

    현승의 난(918)

    왕규의 난(945)

    강조의 정변(1009)

    김훈.최질의 난(1014)

    이자겸의 난(1126)

    묘청의 난(1135)

    무신정변(1170)

    김보당의 난(1173)

    제1차 개경승도의 난(1174)

    조위총의 난(1174~1176)

    갑오정변(1174)

    석령사의 난(1175)

    망이.망소이의 난(1176)

    손청의 난(1176)

    흥왕사 승려의 난(1178)

    기해정변(1179)

    죽동의 난(1182)

    전주 관노의 난(1182)

    조원정의 난(1187)

    동경민란(1190)

    김사미.효심의 난(1193)

    병진정변(1196)

    만적의 난(1198)

    광명.계발의 난(1200)

    이비.패좌의 난(1202)

    최광수의 난(1217)

    제2차 개경승도의 난(1217)

    이장대의 난(1218)

    의주적의 난(1219)

    충주 노군의 난(1231)

    이통의 난(1232)

    이연년 형제의 난(1237)

    안열의 난(1257)

    삼별초의 난(1270~1273)

    이숭겸의 난(1271)

    조일신의 난(1352)

    박의의 난(1361)

    흥왕사의 변(1363)

    삼선.삼개의 난(1364)

    목호의 난(1374)

    위화도 회군(1388)

    왕자의 난

      1차 왕자의 난(1398)

      2차 왕자의 난(1400)

    조사의의 난(1402)

    계유정난(1453)

    이징옥의 난(1453)

    이시애의 난(1467)

    중종반정(1506)

    임꺽정의 난(1559~1562)

    니탕개의 난(1583)

    정여립의 난(1589)

    이몽학의 난(1596)

    인조반정(1623)

    이괄의 난(1624)

    이인거의 난(1627)

    이인좌의 난(1728)

    홍경래의 난(1811~1812)

    임술 농민봉기(1862)

    이필제의 난(1871)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민란(1894~1895)

    조선군 훈련대 반란사건(을미사변) (1895)

    신축민란(1901)

    여수 14연대 반란사건(여순사건)(1948)

    5.16 군사정변(1961)

    12.12 군사반란(1979)

    5.17 내란(1980)

    프룬제 반란사건(북한)(1993)

    6군단 반란사건(북한)(1995)

',·´″″°³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식(寒食)의 유래  (0) 2019.07.29
식목일의 유래  (0) 2019.07.29
헬레니즘(Hellenism)과 신화  (0) 2019.01.15
제주마  (0) 2018.12.19
기네스 북  (0) 2018.12.17

헬레니즘과 신화              작성일자; 2019.01.19.토요일,맑음

 

우리 생활의 곳곳을 살펴보면,

고대로부터 내려온 문화적 요소들이 계승되어 지금까지 그대로 누리고 있는 것들이 많다.

역사는 한 세대가 잘려 나가거나 홀로 떨어져 나갈 수 없는지 서로 희석되고 물들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여 오늘에 이른다.

 

헬레니즘이란 '말하다,그리스인 처럼 행동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hellenizein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리스 고유의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하여 이루어진 세계 주의적인 예술·사상·정신 등을

특징으로 하는 문화대계다.

 

거대한 나일상은 1513 년에 캄포 마르 지오에서 발견되었으며,

이 섬은 이집트의 신들인 이시스(Isis)와 세라피스 (Serapis)에게 헌정 된

이서 카이 필스(Iseo Campense) 장식의 일부이다.

강은 그의 왼쪽 팔에 과일 풍요의 뿔과 그의 오른손에 있는 밀 귀가 그 옆에 서 있는 노인으로 나타난다.

이집트는 스핑크스의 존재로 대표되는데,

이 스핑크스에는 나일강의 형상이 자신을 지지하고, 일부 이국적인 동물이 있다.

나일강이 연례 홍수로 인해 솟아 오른 16 큐빗의 물을 암시하는 16명의 아이들이 장면으로 뚜렷하게

묘사되었다.

조각상의 주변에는 피그미,하마,악어가 있는 나일강의 풍경이 장식되어 있다.

이 조각품은 아마 나일강의 기념비적인 검은 현무암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검은 현무암의 걸작 인 Pliny the Elder는 평화의 포럼 안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 거대한 석상은 현재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나일강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이 석상은 헬레니즘 양식으로 표현된 복제품이라고 한다.

원래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던 것인데 반환 받았다고 한다.

 

헬레니즘 문화가 로마의 문화에 끼친 영향과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한 이야기다.

흔히, 헬레니즘을 '동서 문화가 융합된 산물'이라고 표현한다.

그리스의 문화가 오리엔트(동양)에 전파되어서 헬레니즘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지만

그 중심은 '그리스 문화'.

이러한 영향은,신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로마 신화를 이루고 있는 근원은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로마에 전파되어 로마 신화로 복제되다시피 한 것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는 로마 신화에서는 '쥬피터',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는 로마신화에서는 '미네르바'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인 과정을 알아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보통, 그리스 신화와 로마신화를 따로 부르지 안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가 거의 같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가 로마로 전해지면서 이름이 로마 이름으로 바뀐 것 뿐이고 스토리도 거의 같다.

고대 그리스의 문명은 그 당시로서는 최고였고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던 로마에 전해져 흡수되었는데,

이렇게 그리스 문명이 로마에 쉽게 흡수될 수 있었던 것은 신흥 강국 로마의 정책의 영향도 한 몫을 했다.

로마는 개방적인 정책을 펴서 그들이 정복한 국가들에 대한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

들였던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로마인들이 그리스 신화를 도입하게 되었다.

로마의 건국 신화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을 끌어들이면서 그리스 신화가 본격적으로 로마 신화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푸스 신들의 이름이 그 당시 로마에서 사용되고 있던 라틴어로

바뀌어 전해지게 되었고,

라틴어로 바뀌어 전해진 신들의 이름은 오늘날 불리어지는 로마 신들의 이름이 된 것이다.

'그리스 신화'라는 말은 영어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원래는 '희랍 신화'라고 해야 맞다.

'그리스'라는 말은 영어식 표현이고,

원래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헬라스(Hellas)'라고 적어 왔고, 이것을 비슷한 음의 한자로

표현한 것이 '희랍(希臘)'이다.

그리스의 신화는 서양의 역사에서 문학과 예술 부문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수많은 문학 작품과 그림, 조각 등을 비롯한 미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바탕이 되었다.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을 비교

 

신의 이름 그리스명 로마명 영어명
사랑과 미의여신 Aphrodi(아프로디테) Venus (베누스) Venus (비너스)
태양의 신 Apollon (아폴론) Phoebus(포에부스) Apollo (아폴로)
전쟁의 여신 Ares (아레스) Mars (마르스) Mars (마스)
달과사냥의 여신 Artemis(아르테미스) Diana (디아나) Diana (다이아나)
지혜의 여신 Athena (아테나) Minerva (미네르바) Minerva미네르바
아름다움의 여신 Charites (카리테스) Gratiae (그라티애) Grace (그레이스)
농경의 신 Cronos (크로노스) Saturnus(사투르누스) Saturn (새턴)
농업,결혼의여신 Demeter (데메테르) Ceres (케레스) Ceres (세레스)
술의 신 Dionysos(디오니소스) Bacchus (바쿠스) Bacchus (바커스)
새벽의 신 Eos (에오스) Aurora (아우로라) Aurora (오로라)
사랑의 신 Eros (에로스) Cupid (쿠피드) Cupid (큐피드)
대지의 여신 Gaia (가이아) Terra (테라) Gaea (가이아)
명계의 신 Hades (하데스) Dis (디스) Pluto (플루토)
청춘의 여신 Hebe (헤베) Juventa (유벤타)  
태양의 신 Helios (헬리오스) Sol () Sol ()
,대장장이의 신 Hephaestos 헤파이스토 Vulcanus (불카누스) Vulcan (벌컨)
제우스의 본처 Hera (헤라) Juno (유노) Juno (주노)
전령의 신 Hermes(헤르메스) Mercurius메르쿠리스) Mercury(머큐리)
불과 화로의 신 Hestia (헤스티아) Vesta (베스타) Vesta (베스타)
잠의 신 Hypnos (히프노스) Somnus (솜누스)  
제우스의 애인 Lato (라토) Latona (라토나) Leto (레토)
예술의 여신 Mousai (무사이) Mousai (무사이) Muse (뮤즈)
승리의 여신 Nike (니케) Victoria (빅토리아) Victoria빅토리아)
목신(牧神) Pan () Faunus (파우누스) Faun ()
명계의 여왕 Persephone페르세포네 Proserpine프로세르) Proserpina프로서
바다의 신 Poseidon (포세이돈) Neptunus(넵투누스) Neptune (넵튠)
영혼의 신 Psukhe (프쉬케) Psyche (프시케) Psyche (사이키)
풍요의 여신 Rhea (레아) Cybele (키벨레) Cybele (시빌리)
달의 여신 Selene (셀레네) Luna (루나) Luna (루나)
죽음의 신 Thanatos (타나토스) Mors (모르스)  
행운의 여신 Tyche (티케) Fortuna (포르투나) Fortune (포튠)
하늘의신,대지 Uranos (우라노스) Caelus (카엘루스) Uranus(우라누스)
주신 Zeus (제우스) Jupiter (유피테르) Jupiter (주피터)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역사와 문화로 이어지고 현재에도 여전히 세계인의 생활과 문화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향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말들에 대해 예를 들면, '아킬레스건'이라는 말이 있다.

아킬레스건은 발뒤꿈치 힘줄을 뜻하는 말인데, 보통 '약점'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 말의 어원이 된 것은 바로, 전쟁의 영웅인 '아킬레우스'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와 펠레우스왕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 테티스는 제우스신에게 이 아이를 불사(不死)의 몸으로 만들어 줄 것을 간청했고,

제우스는 아이 몸을 '스티크스 강'에 담그면 칼과 창이 뚫지 못하는 강철 몸이 된다고 말해준다.

제우스 신의 그 말을 따라 테티스는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잡고 아킬레우스를 강 속에 담근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킬레우스는 그 어떤 강철로도 뚫지 못하는 초인으로 변하지만,

어머니 테티스가 아킬레우스를 강물에 넣을 때 손으로 잡고 있던 부분인 발뒤꿈치 부분이 강물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발뒤꿈치 부분은 예외였던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서 잘 싸우게 되지만,강물에 담가지지 않은 그의 발뒤꿈치 부분에

독화살을 맞고 숨을 거두게 된다.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 바로, '아킬레스건'이라는 말이며, '치명적인 약점'을 뜻하는 말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 외에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아가페 사랑과 에로스 사랑', '에로티스즘', '마이더스의 손' 등등...

수많은 말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된 말로 우리 생활 속에서 여전히 쓰이고 있다.

또한,피로 회복제인 '박카스'도 술의 신 '바커스'에서 따 온 말이다.

               

 

 

 

',·´″″°³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목일의 유래  (0) 2019.07.29
한국사의 반란  (0) 2019.07.14
제주마  (0) 2018.12.19
기네스 북  (0) 2018.12.17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0) 2018.12.11

제주마   작성일자;  2018.12.19.수요일,맑음 

 

천연기념물 347호인 제주마는

초기 청동기 시대 내지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말들이

몽골에 의해 제주도에 들어온 몽골/서아시아산 말들과 교잡되고,

조선시대에 말 품종개량을 하면서 추가로 변하는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남아있는 말이다.

흔히 몽고마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조람말이지만 키가 암컷 117㎝, 수컷 115㎝로 중형 마종에 속한다.

한국에서 말은 제주도 말이 유명하며,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말이 비교적 흔해서 과거 제주도에서는 제주마로 밭을 갈기도 했다.

그 이전에도 말을 기르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제주도가 말의 섬이 된 것은 고려 말 원간섭기 몽골식 목마장이 들어온 시기부터로 보인다.

1986년에 천연기념물로 등록되고,

1999년에 제주마 혈통서 관리가 시작되었다.

이후 2002부터 혈통 등록 또는 확인된 제주마가 출전하는 경마 경주가 개최되고 있다.

',·´″″°³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사의 반란  (0) 2019.07.14
헬레니즘(Hellenism)과 신화  (0) 2019.01.15
기네스 북  (0) 2018.12.17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0) 2018.12.11
나비 효과  (0) 2017.10.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