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고건       작성일자; 2020.02.04,화요일,맑음

 

고건(생졸;1938년1월2일~현존)은

서울에서 아버지 고형곤과 어머니 장정자 사이에서 3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고형근은 학술원 회원의 철학자로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당시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한 탓에 내사와 탄압을 받기도 했다.

형 고석윤은 행시와 사시에 합격했고 이후 상공부 상역국장을 지내다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아버지가 검찰의 내사를 받자 공직을 사퇴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작은 형 고경윤은 일찍 사망했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본적지는 전북 군산이며 본관은 제주다.

학창 시절 내내 서울에서 거주하였으며 전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한다.

1959년,재학 중 서울대 총학생 회장을 지냈으며,서울대를 졸업하고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였다.

고시에 합격한 아들에게 아버지 고형곤은 공무원으로 지켜야 할 3계명을 줬다.

"줄서지 마라, 돈받지 마라, 술 잘 먹는다는 소문을 내지 마라."이다.

후일 고건은 경향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버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그

러나 술은 어쩔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1962년,지방 행정사무관에 임용된 뒤 내무부 수습사무관, 이후 여러 보직을 거쳐

1965년, 내무부 행정과 기획계장,

1968년, 서기관으로 승진하여 전북 식산국장과 내무국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부터 1973년까지,

내무부 지방국 지역개발담당관,새마을 담당관,이후 행정 관리관으로 승진하였다.

1973년,강원사 부지사,내무부 지방국장,

1975년,전남 지사를 거쳐

1979년,대통령 정무제2수석비서관,정무 수석비서관을 지냈다.

1980년, 국토개발연구원 고문에 선임되었으나,

1980년5월17일,신군부가 비상 계엄확대를 내리자 5.17을 군정으로 간주하고 사표를 냈다.

1980년9월,전두환 정권 하에서 교통부 장관과 이듬해 농수산부 장관을 지내고,

1983년,미국으로 유학하여 미국 하버드대학교 객원 연구원으로 있다가

1984년, 미국 M.I.T.국제 문제연구소 객원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곧 귀국한다.

1985년,민주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지방자치제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

1987년,민주정의당 전북도 지부장,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내무부 장관에서 하야한 뒤 서울 종로에 사무실을 하나 열고 칩거하던 중

1988년, 민정당 군산지구당 위원장, 민정당 전라북도 지부장에 임명되고,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서울시 관선 시장을 지내고 

1991년부터,

공동체 의식개혁 국민협의회 공동대표와 명지대학교 총장직에 있다가

1995년,한국 그린크로스 공동 의장,

1996년 부터 1997년까지,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거쳐 문민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다.

1998년3월3일,

퇴임 다음날 대통령 취임일 각료 제청권을 재청하고 물러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는 김종필 총리 서리가 인준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98년6월,

새정치 국민회의 공천으로 4년 임기인 서울시장 선거에 당선되었다.

1998년4월, 명지대학교 석좌교수에 특별 임용되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첫 국무총리로 임명되어 직무를 수행하던 중

2004년3월12일,

대한민국 국회가 193대 2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의결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헌법에 의거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했다. 

 

세번의 장관,두번의 서울시장에 이어 두번의 국무총리을 역임한 고건 대통령 권한 대행은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정국을 안정시키고 원활히 돌아가도록 하는 역할을 잘 해 온 인물로 평가된 대통령 권한 대행이었다.

이라크 파병 문제,경제문제,제17대 국회위원 선거 등이었다.

2004년5월24일,

노무현 대통령이 복귀한 후 대통령의 권한 대행을 종료하고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노무현의 대통령 탄핵 기간 중 고건은 민심과 여의도 국회의 분노를 수습하는 등 무난한

수습 노력을 보였다는 평가가 있으나 대통령직에 복귀한 노무현은 그를 총리로 기용한 것은 인사 실패라고 비판하여 설전을 벌였다.

2006년12월15일,

고건은 광주 전남 방문에서 대통령과 참여 정부를 비판했다.

2006년12월21일,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평통 상임위원회에서 고건의 기용을 인사 실패라고 규정했다.

12월22일,

고건은 언론의 성명에서

자신의 총리 기용을 `인사 실패'로 규정한 노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정면 비판했다.

이후 그는 17대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됐으며 통합민주신당 영입설,민주당 영입설,한나라당 영입설 등이 나타났으나

2007년1월6일, 언론에 대통령 불출마 선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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