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정홍원    작성일자; 2020.02.16.월요일,맑음

 

 

2013년2월26일 부터 2015년2월16일까지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제42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정홍원(생졸; 1944년10월9일~)은 

광주,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법무 연수원장,대한법률 구조공단 이사장등을

역임한 법조인 출신이며,

새누리당 공직자 후보 추천 위원회 위원장으로 써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정홍원은 1944년 경남 하동군 금남면에서 12남매(6남6녀) 중 열째로 태어났다.

부산의 친척이 데려가 부산 영도 초등학교(1957년)와 경남 중학교(1960년)를 졸업했다.

그러나 셋째형이 고시 공부를 포기하자 부친이 그를 고향으로 소환 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원하던 경남고에 진학하지 못한다.

그는 진주 사범학교(1963년)에 진학해 가사를 돌보는 것으로 부친과 타협을 했고,

사범 학교를 졸업한 그의 첫 발령지는 서울이었다.

낮에는 인왕 초등학교 교사로 돈을 벌고,밤에는 성균관대 법과대 야간 과정을 다녔다.

1972년, 사법 시험에 합격했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인 김황식 총리와 사법 연수원(4기) 동기며 그가 네 살 많다.

1975년,결혼 후 얼마 안 되어 화재로 아내를 잃고 재혼한 최옥자와의 사이에 외아들이 있다.

 

1982년, 검사 재직 시절

이철희·장영자 부부 사기 사건, '대도' 조세형 탈주 사건, 워커힐 카지노 외화 밀반출 사건 등과 같은

사건을 처리하여 '특별 수사통'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91년,대검찰청 중앙 수사부 3과장 시절 한국 최초의 컴퓨터 해커를 적발하기도 했다.

서울지방 검찰청 남부 지청장으로 재직하면서 '민원인 후견인'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1999년,

대전지방검찰청·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냈으며,

부산 지방 검찰청 울산 지청장을 거쳐 대검찰청 감찰 부장이 되었다.

대검찰청 감찰부장 재직 시 '검찰 낮술 금지'를 실시하는 등 검찰 개혁에 앞장섰다.       

이후 광주지방검찰청과 부산 지방 검찰청에서 검사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의 공직 후보 추천 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2013년2월26일,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총리로 취임하여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2014년4월27일,오전 10시

정홍원 국무총리는 정부 서울청사의 긴급 기자 회견에서

4월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과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하겠다고 밝혔으나,

2014년6월26일,

안대희,문창극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후임이 정해지지 않자

윤두현 청와대 홍보 수석은 기자 회견을 열어 정홍원 국무총리의 유임을 발표했다.

2015년2월17일,

사퇴를 선언한지 296일이 지나서야 이완구 후임 총리가 정해져 총리직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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