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호             2019.08.14.수요일,맑음

□ 안현궁(安峴宮)

    1786년(정조10년)9월16일,

    의빈의 빈소를 안현의 본궁에 차렸다.

    그래서 안현궁은 의빈을 가리킨다.

    의판,일성록,효안전일기,지구관청일기 등에 기재 되어 있다.

 의빈궁(宜嬪宮)

    정조 시절에 편찬된 '제물등록'에 육상궁(숙빈 최씨),선희궁(영빈 이씨),의빈궁을 삼궁(三宮)이라고 했다. 

    이후 1870년(고종7년)1월2일,의빈의 사당을 희빈 장씨,정빈 이씨,영빈 이씨의 사당과 함께 육상궁(숙빈

    최씨)안의 별묘에 봉안 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상지(太常志)'에 나와 있다.

    '사전각제' 절목에서 대빈궁(희빈 장씨),연호궁(정빈 이씨),선희궁(영빈 이씨),

    의빈궁(의빈 성씨)을 사궁(四宮)이라고 하여 육상궁(숙빈 최씨) 별묘에 함께 봉했다.

    '사중삭사명일제' 조목에는 의빈궁의 제사는 선희궁의 격식과 동일하다고 되어 있다.

     그 외, '향수조사책','대한예전','능안','만기요람','영선사절목' 등에도 의빈궁에 대해 나와 있다.


□ 칠궁(七宮)

    1870년(고종7년)에 사당의 신주를 옮길 때 인빈 김씨의 사우는 경우궁(수빈 박씨)안의 별묘에 봉안했다.

    희빈 장씨,정빈 이씨,영빈 이씨,의빈 성씨의 사우는 육상궁(숙빈 최씨) 별묘 내에 봉안했다.

    저경궁(인빈 김씨),대빈궁(희빈 장씨), 상궁(숙빈 최씨),연호궁(정빙 이씨),경우궁(수빈 박씨),

    선희궁(영빈 이씨),의빈궁(의빈 성씨)은 궁(宮)으로 일컫다가

    1898년(고종35년)에 칠궁(七宮)으로 불렸는데 '향수조사책'에 나타나 있다. 

    당시 칠궁은 왕이나 왕세자를 낳은 생모의 사당이었다.

    하지만 1908년(순종1년)7월23일에 제사 제도가 개정되어 의빈궁은 칠궁에서 제외 되고,

    사당은 매안(埋安: 신주를 무덤 앞에 묻음) 되었다.

    다만 의빈궁의 제사는 의소태자와 문효세자의 원소(園所) 예법을 따랐다.

    이후 육궁(六宮)은 1929년에 덕안궁(순헌왕황귀비 엄씨)이 봉안 되면서 오늘날의 칠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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