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길                    2019.12.28.토요일,맑음

권영길(생졸;1941년11월5일~)은

일본 혼슈 야마구치 현에서 밀항자의 아들로 태어나 8·15해방 직후 부모를 따라 경상남도

산청에 정착했다.

6·25전쟁과 더불어 빨치산 활동을 하던 아버지가 1954년 군경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으로

총살당한 사건은 그의 성장기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경남 고등학교를 거쳐

1961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진학해 잠사학을 공부하면서 반정부 비밀 서클 활동을 했으며,

1967,

잠시 '대한일보' 기자로 활동한 뒤

1971년,

정부 기관지인 '서울신문'의 기자로 일했다.

1988년초,

서울 신문사 노동 조합 건설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1988년 말,

41개의 언론 노동조합(조합원1만3,000명)을 포괄하는 '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의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1988년에서 1994년까지 제2~3대 위원장을 역임

1995년부터1997년까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초대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한국노동운동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진보 정당 '국민승리21' 대표로 역임하여고,

2000년부터,

민주노동당 초대에서 제2대까지 대표를 역임하면서 진보적 정치 지도자로 부상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국민승리21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으며,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경상남도 창원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2년12월,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다시 낙선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창원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재출마하여 당선했다.

또한 당대표로서 이끌었던 민주노동당도 비례대표를 포함해 10석을 얻어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얻어냈다.

당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당직,공직(의원직) 분리 방침에 따라 대표에서 사퇴했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거에서 원내 진출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얻어내기는 했지만 이후 지지율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2007년,

그는 혁신과 변화를 앞세운 심상정,노회찬 후보를 누르고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로 다시

선출되었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3%의 지지율로 낙선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경상남도 창원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재선에 성공했다.


권영길은 언론인 출신의 노동운동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1997년,

진보정당 ‘국민승리21’ 대표를 맡으며 정치에 입문했다.

제15,16,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일본에서 밀항자의 아들로 태어나 8·15해방 직후 부모를 따라 경상남도 산청에 정착했다.
1988년,

서울 신문사 노동 조합 건설에 참가하고 언론 노동 조합연맹의 초대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이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초대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노동계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국민승리21' 대표, 민주노동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진보 정치지도자로 부상했다.

제15대(1997)와 제16대(2002)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로 제18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다시 낙선했다.

2008년,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2

013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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