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장생       2019.0101.화요일,맑음

김장생;

본관; 광산,서울 출신

호;사계(沙溪).

조부; 지례현감 김호

부; 대사헌 김계휘

모; 평산 신씨 우참찬 신영의 딸이다.

자; 김집


1560년 송익필로부터 사서와 '근사록' 등을 배웠고, 20세 무렵에 이이의 문하에 들어갔다.

1578년(선조11) 학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이 되고, 1581년 종계변무의 일로 아버지를 따라 명나라에

다녀와서 돈녕부참봉이 되었다.그 뒤 정산현감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호조정랑이 된 뒤, 명나라 군사의 군량 조달에 공이 커 종친부전부로 승진하였다.

1596년 한 때 연산으로 낙향하였다.
이듬해 봄에 호남 지방에서 군량을 모으라는 명을 받고 군자감첨정이 되었다가 곧 안성군수가 되었다

북인이 득세하는 것을 보고 1605년 관직을 버리고 연산으로 다시 내려갔다. 그 뒤에 익산군수를 지내고,

1610년(광해군) 회양·철원부사를 역임하였다.

1613년 계축옥사 때 동생이 연좌되었다가 무혐의로 풀려나자, 관직을 버리고 연산에 은둔해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그 뒤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75세의 나이에 장령으로 조정에 나갔으나,

곧이어 사업으로 옮겨 원자보도의 임무를 겸하다가 병으로 다시 낙향했다.

이듬해 이괄의 난으로 왕이 공주로 파천해오자 길에 나와 어가를 맞이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원자 보도의 임무를 다시 맡고 상의원정으로 사업을 겸하였다.

집의를 거친 뒤 낙향하려고 사직하면서 13가지의 중요한 정사를 논하는 소를 올렸다.

그 뒤 좌의정 윤방,이조판서 이정구 등의 발의로 공조참의가 제수되어 원자의 강학을
겸하는 한편, 왕의 시강과 경연에 초치되기도 하였다.

1625년에 동지중추부사를 임명받았으나 이듬해 다시 사직해 행호군의 산직으로 낙향한 뒤

이이.성혼을 제향하는 황산서원을 세웠다.

같은 해 용양위부사직으로 옮기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양호호소사로서 의병을 모아 공주로
온 세자를 호위하였다. 곧 화의가 이루어지자 모은 군사를 해산하고 강화도의 행궁으로 가서 왕을 배알하고, 그 해 다시 형조참판이 되었다.

그러나 한달 만에 다시 사직해 용양위부호군으로 낙향한 뒤 1630년에 가의대부로 올랐으나, 조정에 나가지 않고 줄곧 향리에 머물면서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였다. 늦은 나이에 벼슬을 시작하고 과거를 거치지 않아 요직이 많지 않았지만, 인조반정 이후로는 서인의 영수격으로 영향력이 매우 컸다.

인조 즉위 뒤에도 향리에서 보낸 날이 더 많았지만, 김장생의 영향력은 이이의 문인으로 줄곧 조정에서
활약한 이귀와 함께 인조 초반의 정국을 서인 중심으로 안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학문과 교육으로 보낸 향리 생활에서는 줄곧 곁을 떠나지 않은 아들 김집의 보필을 크게 받았다.
김장생의 문인은 많은데,
송시열.송준길.이유태.강석기.장유.정홍명..최명룡.김경여.이후원.조익.이시직.윤순거.이목.윤원거.최명길.

이상형.송시영.송국택.이덕수.이경직.임의백 등 당대의 비중 높은 명사를 즐비하게 배출하였다.

아들 김집도 문하이지만, 문인들 사이에는 김장생을 ‘노선생’, 아들을 ‘선생’으로 불렀다고 한다.
학문적으로 송익필.이이.성혼 등의 영향을 함께 받았다.

하지만 예학 분야는 송익필의 영향이 컸으며, 예학을 깊이 연구해 아들 김집에게 계승시켜 조선 예학의 태두로 예학파의 한 주류를 형성하였다.

인조 즉위 뒤 서얼 출신이던 송익필이 아버지 송사련의 일로 천인이 되자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같은 문하의 서성.정엽 등과 신변사원소를 올렸다.

또한, 이이와 성혼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1만 8000여 자에 달하는 이이의 행장을 짓기도 하였다.

스승 이이가 시작한 '소학집주'를 1601년에 완성시켜 발문을 붙였는데,

'소학'에 대한 관심은 예학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저서로는 1583년 첫 저술인 '상례비요' 4권을 비롯,
'가례집람''전례문답''의례문해' 등 예에 관한 것이 있고,
'근사록석의''경서변의'와 시문집을 모은 '사계선생전서'가 전한다.

 

1688년 문묘에 배향되었으며, 연산의 돈암서원을 비롯해 안성의 도기서원 등 10개 서원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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