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필            2019.12.20.금요일,흐림

김종필(생졸; 1926.1.7-2018.6.23)은 충남 부여에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김상배와 어머니 이정훈 아래 7남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에는 한학을 수학했고,대전 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로 잠깐 교편을 잡았다. 1945년 해방 후,

경성사범학교(서울대학교 사범대학으로 통합) 교육학과에 입학,

1947년,2년 수료한 후

1948년, 육군 사관학교 8기로 임관,주로 참모직을 역임하였다.

육사 8기 졸업생인 그는 군에서 주로 정보관계 업무에 종사하다가

1958년 중령으로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기획과장에 임명되었다.

1961년,

육사 8기 졸업생 출신인 그는 중령으로 5·16군사정변의 주역으로 참여하고, 중앙정보부

창설을 주도하여 1963년까지 초대 중앙 정보부장(국가정보원장)을 지냈으며,

1962년11월12일,

중앙 정보부장으로서 일본의 외무장관 오히라 마사요시와 회담,대일 청구권 문제와 평화선, 법적 지위 문제 등에 대해 타협점을 찾고 메모를 교환함으로써

1963년,준장으로 예편하여 공화당 창당위원장을 맡았다.

또한 6대 국회의원과 공화당의장직을 지냈으며,

중앙정보부장 재임시 한일회담의 특사로 파견되어 회담을 매듭지었으며,공화당 소속으로

의장과 부총재를 지내고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유신체제 유지에 역할을 했다.

1967년에는 7대 의원에 당선되었으나

1968년, 반대 세력에 밀려 국회의원직 등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해외로 나갔다.

1970년, 공화당 총재 수석 상임 고문,



1971년6월에서 1975년12월까지 


국무총리를 지냈다.

1971-73년, 공화당 부총재,

1971년, 8대 국회의원,

1971년6월-1975년 12월 국무총리를 지냈다. 그 사이 9대(1973년) 의원을 겸하고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1976년, 한.일의원 연맹회장,

1979년,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79년,10.26 사태 후 공화당 총재가 되었으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정치 활동이 금지되고 부정 축재자로 지목되어 재산환수의 수난을 겪었다. 

1987년, 공화당을 재건하여 총재가 되면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 하였으며, 낙선하였고

1990년,

노태우,김영삼과 민주 자유당을 창당하여 최고위원이 되었고,



이후 연이은 대통령 선거에서






1992년 여야 합당,14대 국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1992년8월,민자당 대표위원을 지내던 중 

1995년,2월, 민자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을 창당, 총재가 되었다. 

1997년 야당 연합으로 참여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이 끝난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2018년, 6월 23일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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