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 녹동서원       

위치; 대구 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585

소개; 

   녹동서원은 귀화 일본인 김충선의 위폐를 모신 곳이다.

   충선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으로 참전 하였으나,

   명분 없는 전쟁이라며 조선에 귀화하였다.

   조정에서 경상도 병마절도사 직을 하사 하였으며,목사 장춘점의 딸과 혼인하였다.

   조선조 임진,정유,병자년의 난에 큰 공을 세운 모하당 김충선 장군은

   이후 조총 제작 기술을 전수하고 경주,울산 전투에서 공을 세워 조정으로부터 김충선이라는 성과 이름을 하사 받았다.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당시에도 큰 역할을 하였으며,말년에는 낙향하여 향리 교화에 힘썼다.

탐방일시; 2009.8.6.금요일,맑음

가는 길; 

   대구 성서 홈플러스-수성교 우회전-신천대로 상동교-파동-가창-가창면 소재지-911번 국도-삼산리-우록방면 우회전

  -녹동서원

   (네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585번지-25km,50분 소요,택시비 20,000)

 

이미지 보기

녹동서원 전경

정조 13년 1789년 비방 유림들뜻을 모아 서원을 창건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으나 1885년 재건하였고,1971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현재 녹동 서원에는 장군을 모신 녹동사향양문,유적지,신도비등이 있다.

전쟁에 참여 했다가 귀화한 김장군의 특별한 이력 때문에 한국인 보다도 일본인들의 발걸음이 더 잦다.

 일본인들은 '평화 주의자 시야가'로 그를 기억한다.

 

 

 

녹동사 전경

 

 

김충선은 임진왜란 때 왜장으로 와

조선에 귀화한 모하당(慕夏堂) 김충선(金忠善1571~1642,일본명 사야가 沙也可)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조 18년(1794)에 건립하였으나,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85년에 재건되었으며,

1971년 국고의 지원을 받아 현 위치로 옮겼다.

경내에는 정면 5간 팔작지붕의 강당과 정면 3간 맞배지붕의 녹동사,정면 3간의 향양문이 있다.

 

 

숭의당.

 

 

 

 

 

    조선 선조 때 기화한 일본 장수 모화당 김충선의 묘지가 있는 해발 566m의 삼정산.

    일본인이였던 선조25년(1592년)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30만 대병으로 조선을 침공하자,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의 우선봉장이 되어 부산에 상륙하였다.

    그러나,전쟁은 인륜의 대의에 어긋 난다며 조선에 귀화하였고,

    조총도약법을 전수하는 등 임란에 공을 세우고 선조로 부터 김충선이라는 성(姓)과 이름을 하사 받았다.

    또한,조정으로부터 벼슬과 논밭을 하사 받았으나 마다하고 우록리에 내려와 사슴과 벗하며 여생을 마감

    했다고 하니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인조 20년(임오1642) 72세로 세상을 떠나 삼정산 임좌원에서 장례를 치렀다.

 

 

 

김충선에 대한 설명판

고향 땅에 대한 향수는 어쩔 수 없었다.

 

김충선이 남긴 시문에는 그 애절한 향수가 곳곳에 배여 있다.

 

그가 남긴 詩로 그 슬픔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의중에 결단하고 선산에 하직하고

 

친척과 이별하며 일곱 형제와 두 아내 일시에 다 떠나니

 

슬픈 마음 설운 뜻이 없다 하면 빈말이라..................중략

 

       술회가(述懷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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