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충선 (사야가)      2018.12.14.금요일,맑음

김충선;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화한 왜 장수

일본명; 사야가(沙也可)

호; 모하당(慕夏堂)

생졸; 1572-1642 (72세)

출생지; 일본


임진왜란때 귀순한 일본인인 김충선은 일본명으로 사야가 였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 으로 3000여 군사를 이끌고 침입했다가

동래성으로 입성한 다음날 

경상도 병마절도사(조선시대 각 도의 군사적인 지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설치한 정2품 서반 관직)인

박진 에게 투항하였다.

이후 사야가는 경상도의 의병들과 함께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곽재우와도 연합하기도 했다.

의병 및 조선군 장수로서 모두 78회의 전투를 치렀으며,

이때 전공을 세워 정3품 첨지중추부사(군사,왕명 출납을 관장하던 중앙 관청의 하나)에 이르렀다.

 

1597년 8월 (선조 30년) 정유재란(1568년-1603년 까지 지속된 도요토미 정권은 임진왜란의 정전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재차 조선을 침공하여 이듬해인 1598년 12월까지 지속된 전쟁)이 발발하자 손시로등 항복한

왜장수와 함께 의령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무관 3품 당상에 올랐으며,

이어 김충선은 울산성 전투에 경상도 우병사 김응서 휘하로 울산왜성에 농성 중이던 가토의 1군을 섬멸하는 공을 세웠고,종2품 가선대부를 하사받기도 했다

이 후 도원수 권율,어사 한준겸의 주청으로 선조로부터 김해 김씨와 김충선이라는 조선 이름을 하사받고

정2품 자헌대부로 승진했다.


임진왜란 이 끝난 후 광해군의 부탁으로 10년간 북쪽 변경의 방어를 맡았고,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장헌대부로 승진하였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때,

이괄의 부장 서이지를 잡아죽이는 등 난의 진압에 공을 세웠다.

1636년 병자호란때 청군500명을 벤 공으로 임갑병삼란의 공신으로 일컽어 진다.

청과의 화의가 성립된 후 대구로 내려가 장춘첨의 딸과 혼인하여 5남1녀를 낳아 살면서

가훈,향약등을 저술하였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위치한 녹동서원은 김충선(사야가)를 기리기 위하여 지어진 서원이며,

김해 김씨는 선조로부터 김해 김씨를 하사 받은 김충선이 자신들의 시조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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