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구만     2019.07.16.화요일,맑음

남구만(南九萬); 조선 문종 때의 정치가며,숙종 때의 소론의 거두이다.

생졸; 1629년~1711년

호; 약천(藥泉)

8대조; 남지는 문종 때 좌의정

10대; 남재는 개국공신

처조카; 오달제


 남구만은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다.

1680년(숙종 6년) 보사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김익희,이경여,송준길의의 문인이다.

충북 홍성의 결성에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김익희,이경여,송준길 등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효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1657년 정언이 되었다.

1664년 당시 중전이었던 현종비 명성왕후의 백부 김좌명을 탄핵하였다가 파직되어

3년 뒤인 1667년 승지로 복직되었다.

연이어 이조참판, 형조참판, 대사성 등을 지냈다. 이후 형조판서, 도승지, 부제학 등을 지냈다.

1679년(숙종 5) 한성부 좌윤을 지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윤휴가 소나무를 사사로이 베어 집을 지은 사실과 허적의 서자 허견의 비리 등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였다가 오히려 거제도와 남해로 유배되었다.

1680년,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몰락하자 도승지로 조정에 복귀해 대제학,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1680년(숙종 6년) 보사원공신1등에 책록되었다. 이후 우의정,좌이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지냈다.

그는 1681년 에도 막부의 제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

   오는 등 당시 대표적인 일본통이었다.

1683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자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1694년 갑술환국이 일어나자 노론에 맞서 희빈 장씨를 두둔하였고 장씨가 인현왕후의 제거를 위해 장희재

   와 주고받은 언문 편지로 인해 장희재가 위기에 몰렸을 때에도 세자의 외숙임을 생각해 그의 목숨을 살리

   는데 일조하였다..이로 인해 남구만은 서인 강경파인 노론을 비롯한 유생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고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일생을 보내다 83세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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