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대덕 대전 계족산성(鷄足山城)과 황톳길

해발; 423m

위치;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

소개;

  대전 계족 산성은 백제 시대 석축산성이다.

  1991년 10월 25일 대한민국 사적 제355호로 대덕 계족 산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11월 28일 대전 계족산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대전 지역의 30여개 산성 중 가장 큰 산성으로 높이 423m의 계족산 위에 있는 산성이다.

  현존하는 성벽의 안벽 높이는 3.4m, 외벽 높이는 7m, 상부 너비는 3.7m이다.

  금강 하류의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백제시대 토기 조각이 많이 출토되고 있어  백제의 옹산성(甕山城)으로 추정되고 있다.

  계족 산성은 문의와 청주로 가는 길목이며,보은,옥천,대전,공주,웅진까지  관망되는 성터다.

  현재 산성 붕괴, 유실 부분과 산성 내부 연지 등의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계족산과 식장산에 이르는 산지는 백제와 신라의 국경으로 백제의 산성이 많이 존재한다.

  백제의 수도 웅진은 이곳으로부터 불과 38km며 이 산성들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였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부흥군이 이 산성을 근거로 한때 신라군 진로를 차단시키기도 하였으며,

  조선 말기에는 동학 농민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성내에서 백제시대는 물론 신라,고려,조선시대의 토기와 자기 조각이 출토되고 있어

  삼국시대 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된 산성임을 알 수 있다.

  일제 시대때 봉황산을 닭발(계족)산으로 했다는 설과 송촌(회덕 일원) 에 지네가 많아

  닭을 상징화 함으로써 지네를 없애기 위하여 붙여진 속설이 있다.

  또한 계족산 황톳길은 한국 관광 공사에서 뽑은 5월 가볼 만한 여행지로 선정되었다.

트레킹 일시; 2014.9.15.월요일.맑음

트레킹 코스;

  장동 산림욕장 주차장~공원 관리 사무소~행사장~목재 태크 계단~임도삼거리~절고개

~산성 사거리~계족산성~공원 관리 사무소~장동 산림욕장 주차장-원점회귀 산행

트레킹 시간; 중식 포함 4시간

가는 길;

  대구 성서 홈플러스~신천대로~서대구IC~금호JC~대전IC~계족로.신탄진,선비바을1단지(청주)

~장동 산림욕장 주차장

(네비;대전 대덕구 장동 484번지-150km,2시간,통행료7.400원)

 

이미지 보기

 

 

▷ 대전 계족산성과 황톳길 산행은  장동 산림욕장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 주차장에서 삼림욕장으로 들어가면

 

 

▷우측으로 계족 산성 방향으로 간다.

 

 

계족산성의 성쌓기 방법은 보은에 있는 신라 삼년산성(사적 제235)과 같은 방식으로 쌓았다는 것이

 

발굴을 통해 밝혀졌고, 출토된 토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 6세기 중·후반의 신라 토기임이 밝혀졌다.

 

이 후에 나온 토기 형태도 백제계는 소수이며 다수의 신라계 토기가 보여, 한때 백제가 점령하긴 했지만

 

신라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조사되었다.

 

  

 

 

 

 

 

 

 

 

 

 

 

 

 

 

 

▷ 쉼터가 있는 곳을 지나 경사진 등산로를 오른다.

 

 

 

 

 

▷ 갈림길에서 바로 계족 산성으로 갈수있으나 황톳길을 선택하여 오른쪽  절고개 방향으로 간다.

 

 

 

 

 

▷ 평편한 임도길 황돗길을 따라 간다,

 

 

 

 

 

 

 

 

 

 

 

 

 

 

 

 

 

 

 

 

 

 

 

 

 

 

 

 

 

 

 

 

 

 

 

 

 

 

 

 

 

▷ 왼쪽 계단으로 계족 산성으로 간다,

 

 

 

 

 

 

 

 

 

 

 

 

 

 

 

 

 

 

 

 

 

 

 

 

 

 

 

 

 

 

 

 

 

 

 

 

 

▷계족산성으로 가는길

 

 

 

 

 

 

 

 

 

 

 

 

 

 

 

 

 

 

 

 

 

 

 

 

 

대전시 장동 계족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이 산성은 백제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9899년 발굴을 통해 신라에서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산성의 높이는 약 710m 가량 되며,

   동·서·남쪽에 문터를 만들었다. 성 안에서 삼국시대에 만든 큰 우물터가 발견되었고, 성내 건물터에서는

  고려시대 기와편과 조선시대 자기편이 발견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쌓기 방법은 보은에 있는 신라 삼년산성(사적 제235)과 같은 방식으로 쌓았다는 것이 발굴을 통해

    밝혀졌고,출토된 토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 6세기 중·후반의 신라토기임이 밝혀졌다. 이후에 나온 토기

    형태도 백제계는 소수이며 다수의 신라계 토기가 보여, 한때 백제가 점령하긴 했지만 신라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조사되었다. 계족산성은 새로운 발굴 성과에 의해 신라가 쌓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아직도 논란이 있으며, 6세기 중 후반 신라나 백제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당시 대전지방이 가진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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