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추리 사건                  2020.02.11.화요일,맑음

2008년 말 무렵,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는

미국2 보병사단과 서울특별시 용산구 주한미군 기지를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일원

으로 이전하여, 확장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해당 지역 주민 및 시민 운동단체와 대한민국

국방부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뜻한다.


넓은 의미로는

2004년.

미군 기지 이전 결정 이후 벌어진 주민, 시민 단체의 반발과 경찰과의 충돌부터 아우르며,

좁은 의미로는

2006년5월4일,이후 경찰이 투입된  행정대 집합으로 인한 대규모 충돌만을 가리킨다.

대추리 사태 혹은 대추리 사건으로도 부르며,작전명은 여명의 황새울이다.


2004년8월,

한미 양국은 용산기지와 미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는 협정에 합의하였고

2004년10월28일,

협정안에 정식 서명하였다.

2004년10월29일,

국회에 비준 동의안을 제출하였고

2004년12월9일,

비준 동의안이 통과되므로

평택 지역에 349만평 규모로 기지가 확장 이전됨에 따라

535세대(1,372명)의 주민들이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국회의 비준 동의 후 국방부는 토지 보상을 시작하였다.

토지 수용과 보상의 과정에서 국방부의 일방적인 집행으로 인해 대추리 주민들의 반발과

마찰이 빚어졌고,대추리 도두리 주민들 다수가 토지 수용을 거부하자

2005년11월,

중앙 토지 수용위원회 수용 재결을 통해 법원에 토지 보상금을 공탁한 후 국방부는 주민동의 없이도 소유권을 국방부로 이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05년,

겨울부터 국방부는 주민들에게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하였고 

2006년,

봄부터 농사를 지으려는 주민들과 국방부와의 충돌이 발생하였다.

주민들은 미군 기지의 이전 및 확장을 반대하는 시민 단체와 연대하였다.


평택 범대위는

2006년5월4일에 강행된 국방부의 행정 대집행을 규탄하는 범국민 대회를

2006년5월5일, 대추리에서 개최하였으며 경찰과의 충돌로 100명이 연행되었다.

국방부는 주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도록 미군기지 예정 부지에 철조망을 설치한 후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경찰들을 배치하여 검문을 시행하고 주민등록증에 대추리, 도두리

거주자가 아닌 경우 출입을 불허하였다.

2006년9월13일,

대추리, 도두리 주택 일부를 철거하기 위해 포크레인과 용역업체 직원,경찰들을 동원하여

마을로 들어와 빈 집들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당일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 중 24명이 연행되었다.

국방부의 기록에 의하면 미군기지 확장 이전 과정에서 주민과 정부의 갈등으로 1천 명가량 사람들이 경찰에 연행됐다.

2007년1월,

대추리 도두리에 남아 있던 주민들과 정부 사이에 이주 협의가 시작되었다.

2004년9월1일부터 시작된 주민 촛불 행사는

2007년3월24일,

935일째를 마지막으로 마무리 되었고

2007년4월,

주민들은 마을에서 나와 임시 거주지로 모두 이사하여 국방부의 강제 퇴거가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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