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도산서원

위치;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소개; 

  1965년5월28일,사적 제170호에 지정되고,2019년7월10일,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도산서원은

  영남학파와 한국 유학을 대표하는 퇴계 이황이 사망한지 4년 후인 1574년에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영남 학파의 선구자인 이언적을 모신  경주 옥산서원과 함께 한국의 양대 서원으로 꼽힌다.

  퇴계 이황은 1501년(연산군 7년),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현 노송정 종택 태실)에서 좌찬성 이식과 생모 박씨

  사이에서 7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나 태어나,  1570년(선조 3년)에 작고 하였다.

  1570년,퇴계 이황이 작고하자,1572년에 위패를 상덕사에 모시기 위해 공사가 시작되었다.

   1575년에 선조가 명필 한석봉으로 하여금 쓰게한 편액을 하사함으로써 영남 유림의 본산이 되었다.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단양 군수,풍기 군수,공종 판서,예조 판서,우찬성,대제학을 지냈으며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퇴계 선생은 1561년(명종16년),이 곳에서 '도산서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

  사후 4년만인 1574년(선조7년)에 문인과 유림이 이 곳을 증축하여 '도산서원'이 되었다.

  도산 서원의 행사로는

  매년 2월과 8월, 두차레 상덕사에서 퇴계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는 전통 향사례로서 치뤄지는 향사(享祀)와

  1792년(정조16년) 도산서원에서 치루어진 도산별과를 재현하는 전국 한시 백일장이 있으며,

  한국 정신 문화를 선도해 온 한국의 대표 선비 문화 브랜드로 '도산서원 선비 문화 수련원'에서 체험 할 수 있다.

탐방일시; 2021.09.05.일요일,맑음

탐방코스;

  주차장-운영대-정문-농운정사-정우당-진도문-전교당-서재-동재-삼문-전사청-상고직사-유물전시관-역락서재

탐방시간; 40분

가는 길;

  대구 성서 홈플러스-신천대로-서대구IC-금호JC-중앙고속도로-남안동IC-운산 교차로/안동.영주.영양 방면-한티IC교

 -영호대교-영호대교 북단 교차로/우회전-영호대교 남단 교차로/좌회전-북순환로 사거리-와룡면 보건 지소-도산서원

  삼거리/우회전 1.5km 이동-도산서원 주차장

  (네비;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73-1번지-119km,1시간50분 소요,통행료 4.100원)

 

 

 

이미지 보기

도산서원 탐방은 도산서원 입구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5분 정도면 도산서원 앞 마당까지 갈 수 있다.

 

입장료가 있어 매표 후 입구 안내판 방향으로 들어간다.

 

관리소와 운영대를 지나

 

퇴계 선생이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몸과 마을을 수양하기 위해 산책하던 산기슭 절벽의 전망대인 천광 운영대에 도착한다..

서쪽 절벽 전망대를 천광 운영대,동쪽 절벽 전망대를 '천연대'라 하였다.

 

천광 운영대를 지나면

 

도산 서원 입구 앞마당에 도착한다.

 

도산서원 앞마당에 있는 우물인 '열정(맑을 렬에 우물 정)'은 도산 서당이 있을 때부터 사용하던 우물이라고 한다.

 

도산서원의 입구인 돌계단을 올라 정문을 통과하면

 

입구에 들어서면 서원의 각종 건물들이 잘 배치된 풍경을 볼 수 있다.

정문을 지나 여러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진도문이 있고 그 문을 통과하면 주건물인 '전교당'이 나온다.

정문에서 전교당까지는 약 60m다.

 

정문 좌측 쪽문으로 위치한 '농운정사'는 퇴계의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다.

 

서편 마루를 '관란헌(觀瀾軒)' 이라 하였고,

 

동편 마루를 '시습재(時習齋)'라 하였다.

 

정문 우측으로 도산서당 입구에 '몽천'이란 작은 샘물이 있다.

땅에서 솟아 나는 샘물로 퇴계 선생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정문 우측에 위치한 도산 서당은 퇴계가 만년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거처 하시던 방을 '완락재'라 이름 지었고,

 

마루는 '암서헌'이라 이름 지었다.

 

도산 서당 앞마당에는 '깨끗한 벗이 있는 연못'이란 뜻인 조그마한 연못인 정우당이 있다.

 

도산 서당을 나와 진도문 방향으로 계단을 오르면

양쪽으로 누각식으로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지은 두개의 광명실이 있다.

 

왼쪽 광명실과

 

우측 광명실

 

광명실을 양쪽에 끼고 가운데  있는 '진도문'을 들어선다.

아래쪽은 서당의 영역이므로 진도문은 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셈이다.

 

도산서원 전교당이다.

보물 제210호로 유생들의 자기 수양과 자제들의 교육을 하기 위한 강당이다.

전교당의 앞 마당 좌,우에는 1574년(선조 7년)에 지었고,1969년에 수리를 한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팔작지붕과 온돌방,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선조의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해진다.

 

전교당에 걸린 편액은 한석봉이 쓴 글씨로 선조가 친히 내려 준것이라 한다.

 

전교당 서편에는 유생들의 기숙사로 사용하던 서재인 홍익재와

 

전교당 동편에는 동재인 박약재가 있다.

 

삼문및 상덕사

보물 제211호인 삼문과 상덕사는

도산서원 가장 뒷쪽에 위치한 퇴계 이황과 그의 제자 조목의 위폐를 모시고 있는 사당과 입구인 삼문이다.

1574년(선조 7년)에 지었고,1969년에 수리를 하였다.

3개의 문 중에서 가운데는 귀신이 드나드는 문이며 산 사람은 양쪽의 문으로 다녀야 한다.

 

전사청 담너머로 본 성덕사

성덕사는 보물 제211호로 퇴계 선생의 위폐와 제자인 월천 조목의 위폐가 함께 모셔져 있다.

매년 2월과 8월에 향사를 지낸다.

 

장판각 입구에서 본 전교당

 

장판각

장판각은 전교당 우측으로 삼문과 동재 사이 위치한 건물로 도산서원에서 만든 책의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상고직사

전사청 옆에 있는 건물로 도산서원을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전사청

전사청은 사당인 성덕사에서 향사를 받들 때 제주와 제사 음식을 보관하던 곳이다.

 

동쪽 건물은 제수를 보관하던 곳이며,

 

서쪽 건물은 제주를 보관하던 주고(酒庫)다.

 

 

서재(홍익재) 뒷편 유물 전시관으로 가는 쪽문을 지나 돌계단을 내려서면

 

유물 전시관인 옥진각에 도착한다.

 

유물 전시관 앞 이정표

 

유물 전시관인 옥진각에 도착한다.

 

유물 전시관을 나와 뒤돌아 본 모습이다.

 

유물 전시관을 나와 쪽문을 지나 돌계단을 내려서면

 

제일 마즈막 건물인 도산서당의 기숙사인 역락서재다.

퇴계 선생이 도산서당에서 학문을 강론할 때 정사성을 비롯한 뜻있는 제자들이 힘을 합쳐 세웠으며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앞마당에서 내려와 뒤돌아 본 역락서재와 유물 전시관으로 오르는 돌계단.

 

앞마당에서 본 왕버들 고목과 쉼터 의자와 안동댐.

 

쉼터의자에서 보는 시사단

 

시사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된 시사단은

퇴계 이황  사후 200년이 지난 후 조선 정조 임금이 평소에 흠모하던  퇴계 이황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혀 주기 위하여 어명으로 특별 과거인  지방별과인 '도산별과'를 보던 장소다.

총 응시자가 7,228명이었고 임금이 직접 11명을 선발하였다.

원래 한양에서 벼슬 시험을 치렸으나 특별히 퇴계가 있는 이곳에서 별과를 보도록 배려하였다.

원래는 섬이 아닌데 안동댐 수몰로 인해 섬처럼 되어버렸다.

 

앞마당 한켵에 위치한 도산서원 중수 기념비

 

앞마당을 벗어나 천광 운영대로 가는 길이다.

 

운영대를 지나

 

관리소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여 종료하는 도산서원 탐방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