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작성일자; 2019.10.28.월요일,맑음

만해 한용운(생졸;1879.8.29-1944.6.29)은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신이며

독립 운동가 겸 승려,시인이며 일제 강점기 때 시집인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 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 운동에 앞장섰다.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로 '조선 불교 유신론' 등이 있다.

 

한용운은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 농민 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건양1),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갔다.

그 뒤 1905년(광무9), 인제의 백담사에 가서 연곡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에게서 법을 받았다.

1908년(융희2), 전국 사찰 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에서 원종 종무원을 설립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10년,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독립군 군관 학교를 방문,

이를 격려하고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 불교 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3년,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을 저술, 대승 불교의 반야사상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였다.

1918년 서울 계동에서 월간지 '유심'을 발간,

1919년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 선언서에 서명,체포되어 3년을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 문학에 앞장섰고,

1927년,신간회에 가입하여, 이듬해 중앙 집행위원이 되어 경성 지회장의 일을 맡았다.

1931년 조선 불교 청년회를 조선 불교 청년 동맹으로 개칭,

불교를 통한 청년 운동을 강화하고

이해 월간지 '불교'를 인수,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 사상 고취에 힘썼다.

1935년 첫 장편 소설 '흑풍'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1937년 불교 관계 항일 단체인 '만당 사건'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그 후에도 불교의 혁신과 작품활동을 계속하다가 서울  성북동에서 중풍으로 죽었다.



시에 있어 퇴폐적인 서정성을 배격하고 불교적인 ‘님’을 자연으로 형상화했으며,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하여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 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 제도를 노래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작품으로는 상기 장편 외에 장편 소설인 '박명'이 있고,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십현담주해''불교대전''불교와 고려제왕' 등이 있다. 1973년, '한용운 전집(6권)'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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