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릉 고양 서오릉         작성일자; 2019.06.18.화요일,맑음

 

서울을 중심으로 서쪽에 5개의 능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 8대 예종과 안순왕후의 창릉,

   2.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의 경릉,

   3. 19대 숙종과 인현왕후,인원왕후의 명릉,

   4. 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익릉,

   5. 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홍릉을 비롯해 순회세자의 순창원,

       영빈 이씨의 수경원,옥산부대빈 장씨의 대빈묘가 위치하고 있음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의 쌍릉과 제2계비인 인원왕후 김씨의 단릉을 합칭한 명릉.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명릉의 향로와 어로는 조선 왕릉의 전형을 보여준다.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이 제향 때 향을 들고 가는 향로이고,

오른 쪽 약간 낮은 길이 임금이 다니는 어로다.

 향로와 어로 곁에는 신하들이 걸어갔던 변로가 있다.

 

숙종 임금의 부인은 총9명이다.

  1.인경왕후 김씨 (딸 둘)

  2.인현왕후 민씨 (1667년생)

  3.인원왕후(1687년생)

  4.희빈 장씨(장옥정. 1659년생)     장남 제20대경종. 차남 성수

  5.숙빈 최씨(동이.1670년생)     장남 영수.차남 연잉군(제21대 영조)

  6.명빈 박씨 연령군
  7. 영빈 김씨
  8. 귀인 김씨
  9. 소의 유씨


왕릉은 서울과 근교에 몰려 있어 우선 접근성이 좋다.

풍수지리로도 최고의 자리이므로 경관이 수려하고 좋은 기운이 몰려 있는 곳이다.

조선 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궁녀에서 후궁이 되고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영화도 잠시,
 
폐위되어 사약을 받고 죽은 희빈 장씨.
 
아들 경종은 왕위에 오르자 장씨 묘를 옥사부대빈으로 추존시켜 대빈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규모는 작지만 장희빈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모두 42기인 조선의 왕릉은 멀리로는 강원도 영월과 북한 개성에도 있지만
 
대다수는 경기도의 구리(동구릉)와 고양(서오릉과 서삼릉),파주(삼릉)에 몰려 있다.
 
추존왕(생전엔 임금이 아니나 죽어서 임금이된 왕) 덕종의 능인 경릉.
 
예종과 계비인 안순왕후 한씨의 창릉,
 
숙종의 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인 익릉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와 제2계비 안원왕후 능의 합칭인 명릉,
 
영조의 비 정서왕후 서씨의 홍릉이 있다.
 
숙종의 희빈 장씨의 대빈묘가 오릉에는 끼지 못한 채 서오릉에 함께 있다.     
 
능은 역대 왕과 왕비,추존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한다.   
  
()은 왕의 사친,왕세자와 그 비의 무덤이고,     
 
()는 대군과 공주,옹주,후궁,귀인의 무덤이다.

 

 

고양의 서오릉

 

 

숙종 시절 1계비인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싸움은

당시 남인과 서인의 당파 싸움의 대리전과도 같았다.

인현왕후를 폐위시키고 희빈 장씨가 왕비가 되었으나 짧은 영화도 잠시,

끝없는 당쟁 속에 숙종의 마음을 빼앗긴 장희빈은 다시 폐비가 되고

인현왕후는 복위된다.

 

서오릉에는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와 제2계비인 인원왕후까지 있으니,

숙종은 죽어서도 네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있는 셈이다.

장희빈은 사약을 마실 때 옆에서 울고 있던 열세 살 세자 균(훗날 경종)에게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원망을 퍼부으며 세자의 얼굴을 때리고

아랫도리까지 잡아챘다고 한다.

경종은 생모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와 이 날의 외상으로 시름 시름 앓다가

후사도 보지 못하고 4년 만에 세상을 떴다.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는 서오릉은 동구릉 다음의 규모로 약 55만 평 크기다.

서오릉은 성종의 생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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