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림대군과 청의 황후       2019.01.22.화요일,맑음

인조반정을 전후하여 바다 건너 이웃 일본의 왕실에서는 딸 하나를 낳았다.
성장 하면서 인물이 매우 아름답고 슬기가 출중할 뿐 아니라 무술에도 뛰어났다.

나이 열 여덟이 되어 부모가 배필을 구했으나  워낙 인물이 뛰어난 터라 짝될 만한 남자를 찾지 못하였다.

 

하루는 그 처녀가 부모 앞에 나아가 말하기를,
'소녀는 천하의 영웅이 아니면 낭군으로 삼지 않겠습니다.이 좁은 섬안에는 그런 남자가 없으니 바다를 건너 천하를 두루 다니면서 소녀의 배필될 쾌남을 구하겠습니다'하고 부모에게 하직을 고한 다음

조선국으로 건너와 머리를 삭발하고 여승이 되어 팔도를 두루 돌면서 뛰어난 남자를 찾아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서울의 대궐 문 밖에 다다랐다.

많은 벼슬 아치들,재상들이 대궐에 출입을 하였으나 그 처녀를 알아 보지 못하고 그저 지나치고 말았다.

그러던 중에 봉림대군이 외출을 하였다가 그 여인을 발견했다.

봉림대군은 외모가 빼어난 여승을 보자 약간의 호기심에서 그 여승에게 뒤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여승은 봉림대군을 보자 무슨 생각을 하였던지 순순히 그의 손짓에 응하여 뒤를 따랐다.

 

봉림대군은 관속에 명하여 대궐 안의 방 하나를 주어 거처하도록 하였다.

인물이 절색인데다가 문필이 빼어났을 뿐 아니라 행동까지 단아하여 보는 사람마다 신기하게 생각하여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마지 않았다.

이러는 동안에 세월이 흘러 일 년이 되는 어느 날 새벽의 일이다.

대궐 안마당에 있는 마부가 황급히 뛰어 와서,
'대군마마께 아뢰오.황공하옵게도 대궐의 천리마가 간 곳이 없습니다.소인의 죄는 죽어 마땅하옵니다'
마부가 땅에 엎드리는 것이었다. 
놀란 것은 봉림대군이다.

천리마를 잃은 경로를 물으려고 할 즈음에 다른 편에서 한 무수리가 편지 한 장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 여승이 밤새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이 봉서를 남기고 갔기로 가지고 왔나이다'.
별당에서 그 여인을 돌보아 주던 무수리가 편지 한 장을 바치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봉림대군이 급히 바친 봉서를 뜯어보았다.
'이 사람은 원래 섬나라인 일본에서 태어나 천하의 영웅을 찾기 위하여 바다를 건너 왔던 바,

다행히 왕자를 뵈올 수가 있었습니다.일반 인사들이 지나쳐 버리는 이 사람을 알아 보실 뿐 아니라,

머리까지 기르라 하시오니 그것 만으로도 이 사람을 사랑하시고 아끼심인 줄 아옵니다.

그러하오나 일년을 두고 이사람이 왕자를 살피건대,왕자는 작은 나라의 영웅은 되겠으나 큰 나라의 큰 영웅은 되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그래서 몸을 허락 하올 길이 없어 떠나오니 널리 용서하소서'.
글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봉림대군은 괴이하게 여겼으나 그여인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지 수년 후에 병자호란이 터졌고 청에 폐하여 대군은 형님인 소현세자와 함께 볼모의

신세가 되어 청의 심양에 잡혀가 8년간이라는 오랜 세월을 슬프게 보냈다.

그러던 중 청의 태종의 뒤를 이어 세조가 제위에 올라 천하를 통일하게 이르렀다.

이에 우리 조정에서는 치하하는 사신을 보냈던 까닭에 이것을 만족히 여긴 세조는 인조25년에 볼모로 잡아갔던 조선국 사람들을 본국으로 돌려 보내기로 정하고 인심을 써서 크게 잔치까지 베풀었다. 
볼모의 세월을 보내던 봉림대군도 고국에 돌아가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며 청의 세조가 베푼 잔치 자리에

참석하였던 바, 잔치에 나온 음식이 모두 고국에 있을 때에 즐기던 것들 뿐이었다.

봉림대군은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여기었다.
봉림대군이 얼른 손을 대지 않는 모양을 본 세조는,
'음식을 들지 않으니 의심을 하는 기색이 아닌가?.이제 떠나는 마당에 설마 내가 부정한 음식을 먹이겠가?. 조금도 어려워 말고 오래간 만에 그대의 고국에서 맛보던 음식을 즐기라.

그리고 그대가 여기를 떠나기 전에 한번 만나자고 황후가 간청하니 짐과 함께 들어가 뵘이 어떨고?'
세조가 이렇게 말하면서 대군의 손을 이끌었다.
봉림대군은 세조에게 이끌리어 여러 문을 지나서 대궐 안으로 인도 되었다.

내전 깊숙이 들어가니 그곳에 선녀와도 같이 아름답게 꾸민 여인이 황후의 옷을 입고 보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좌우에는 비빈들이 황홀히 몸단장을 하고 늘어섰다.

모든 것이 눈이 부실 지경이다.

대군은 그만 얼떨떨하여 사방을 돌아보고 섰노라니,그제야 보좌 위에 앉아 있던 황후가 손을 들어 자기를

보라 하면서,
'이 사람을 몰라 보시나요?'
뜻밖에도 십 년씩이나 들어 보지 못하던 조선말이 여인의 입에서 나왔다.

대군은 더욱 놀라 어안이 벙벙하든 차 그 황후는 이어서 말을 붙였다.
'이 사람은 십여 년 전에 그대의 본국에서 머리를 기르면서 일년 동안이나 묵고 있던 여승이외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천리 준마를 끌어내어 타고 압록강을 건너서 심양까지 들어왔다는 것이며,그 때에 사냥을 나온 세조의 눈에 띄어 가까이 하게 되었고,그가 대영웅 인 것을 알고 몸을 허락하여 태자빈이 되었다가 이어 황후가 되었다는 경로를 밝혔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전인 대군에게 작은 나라의 영웅밖에 되지 못 한다고 한 연유를 여쭈오리까?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밤에 주무실 때에 방문 고리를 모두 걸고 잤기 때문에 한 말입니다.

천하를 통일할 만한 배포이면 무엇이 두려워서 그처럼 작은 문을 단속하겠어요.

영웅이란 살벌한 전장에서 화살과 철환이 빗발치듯 하여도 봄 뜰을 거니는 것과 같거늘,

대군은 형적이 나타 나지도 않은 것들을 두려워하시는 것이었소.

그러나 이 말은 한 계집의 수다라고 여기시고 마음에 깊이 두지 마시오.

내 십여 년 전에 조선에서 지기를 얻은 은혜를 한 번도 잊은 때가 없었소이다.

그래서 선황제께서 병자년에 동병하셨을 때에 군사로 하여금 무고한 백성을 욕보이지 말도록,

또 왕궁을 노략질하지 않도록 이 사람으로서는 성심껏 간곡한 소청을 해주었소이다.

그동안 그리워 하시던 고국에 돌아가게 되시었으니 부디 잘 가시기를 비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을 드릴 일은 청국을 거역 마시라는 것이외다.

아무리 분노로 인하여 거역하시려 하여도 일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급기야는 화만 미칠 것이오니

명심하소서'.겸하여 후일에는 조선국의 왕위에 오를 것이 틀림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생각지 않던 곳에서 인물을 만난 봉림대군은 크게 놀랐고,겸하여 이러한 말을 들으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봉림대군은 큰 감명을 받고서 고국으로 향하게 되었던 것이다.
십 년 동안,울분 속에서 지내던 청의 심양을 떠나려 하니,

봉림대군의 머리에는 볼모로 심양으로 들어설 때에 지은 시조가 머리에 떠올랐다.

청석령 지나거다 초하구 어디메뇨
호풍도 차도 찰사,궂은 비는 무삼 일고,
뉘라서 내 행색 그려다 임계신데 보낼고.

이 노래를 읊은 심정을 생각하니 울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심양을 떠나는 이 마당에 다시 한 구를 읊어서 끓는 심사를 토로하였다.

어찌하면 날랜 군사 십만 명을 얻어서,
추풍에 구련성을 깨뜨려 부수고,
크게 부르짖어 오랑캐를 짓밟곤,
노래하고 춤추며 백오경에 돌아올고.

봉림대군은 심양을 떠나면서 더욱 원한의 결심이 굳혔다. 
봉림대군은 고국에 돌아와서 왕위에 올라 효종이 된 다음에 북벌을 꾀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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