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가독서제와 초계문신제                        2019.08.05.월요일,맑음

사가독서제도는 세종대의 사가독서제로부터 비롯되었다.

    세종은 집현전 소속의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집에서 독서에 몰두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를 사가

    독서제라 한다.성종대에 이르러 사가독서의 대상자들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는 장소를 상설기구로 설치

    하자는 서거정의 주청에 따라,

    1492년(성종23년),지금의 마포 한강변에 있던 사찰을 확장하여 남호독서당을 열었다.

    1504년(연산군10년),이 독서당 제도는 갑자사화의 여파로 폐지되었다가,

    1507년(중종2년),중종의 지원아래 지금의 동대문구 숭인동에 있던 정업원에 다시 설치되었다.

    1517년(중종12년),두모포 정자를 고쳐 지어 독서당을 설치하고 동호독서당이라 했다.

    임진왜란(1592-1598;7년 전쟁)이 발발하여 불에 탈때까지 학문연구,도서열람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임진왜란 이후 독서당은  대제학 유근의 청으로 한강별영에 임시로 설치되었다.

    1324년(인조2년),이괄의 난과 병자호란(1636년-1637년) 등으로 사가독서제가 정지됨에 따라 독서당의

        기능도 크게 위축되었다.이후에 독서당은 형식상으로만 존재하다가,

    1776년(정조 즉위년),규장각이 세워짐에 따라 완전히 그 기능이 소멸되었다.

       독서당은 연구기관으로서 옥당인 집현전이나 홍문관 못지않게 평가되었던 기관이다.

       따라서 독서당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사가인원을 선발하는 데 있어 그 규정을 엄격히 했다.

       당시 사가독서의 대상이 된 인원은 1번에 대체로 6명 안쪽이었고,

       대제학은 독서당을 거친 사람이라야 그 임명이 가능하게끔 제도화되어 있었다.

       독서당 제도를 통하여 유명한 정치가,유학자가 많이 탄생했다.


초계문신제는 조선 전기의 사가독서제를 이어받은 것으로,

     37세 이하의 참상,참하의 당하 문신 중 승문원의 분관인 자를 뽑아 규장각에서 교육시키고 40세에 졸업

     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1781년(정조5년)에 처음 시행되었고,

     1784년(정조8년) '규장각지'가 완성될 때 제도적으로 정착했다.

       교육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초계 문신들은 신분 및 경제적 보장,잡무 면제 등 왕이 직접 이들을 지도

       편달하는 친림의 행사도 있었다.

       정조는 이 제도의 시행을 통해 연소한 문신들을 재교육함으로써 인재를 양성하고,

       자신의 친위세력을 배출하여 시파,벽파의 당파나 사색 당파의 타파를 기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정조대의 문화 정책의 수행이나 인재의 양성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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