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과 생육신         작성일자; 2010.04.29.목요일,맑음

 

<사육신>

1453년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통해 단종의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병권을 장악했다.

이때 성삼문·정인지·박팽년 등 43명이 정난공신의 칭호를 받았고, 이어 수양대군은 왕위에 올랐다.

세조가 왕의 전제권을 확립하려 하자 집현전 출신의 유신들은 즉각 반발했다.

일부 유신들은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계획을 도모하였고,

이 계획은 성삼문·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들은 1456년 6월 창덕궁에서 명의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를 이용하여 세조를 살해할 계획이었으나

연회 절차에 변동이 생겨 거사가 미루어지게 되었다.

이때 불안을 느낀 김질이 밀고해 주모자 6명은 모두 처형당했다.

훗날 남효온은 '추강집'에 사육신전을 적어 이들 6명의 충절을 기렸다.

                  

 

 

<생육신>

사육신에 비교해서 살아서 절개를 지킨 김시습·원호·이맹전·조려·성담수·남효온을 가리키는 말이다.

계유정난에 의한 세조의 왕위찬탈은 집현전 출신의 학자들이 추구하는 유교정치와 상이하여 갈등으로 나타났으며

단종 복위 운동으로 나타났다.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어 이 때 죽음을 당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를 사육신이라 부르고,

조정에 나아가지 않고 유랑 생활을 하며 초야에 묻힌 사람을 생육신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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