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 왕산  

해발; 923.2m

위치;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소개;

  왕산은 가락국 제10대 양왕(讓王)의 능인 전구형 왕릉에서 유래 하였으며,

  옛날 가락국의 궁궐 이름인 태왕궁에서 이름을 따서 태왕산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김수로왕이 말년에 이 산에서 휴양했다고 가락국 신도비에 새겨져 있기도 한 이 왕산은

  가락국의 왕과 많은 사연이 있음을 알려주는 지명인 왕등재,국골,깃대봉등이 각종  기록이나 문헌에도 나와있다.

   필봉산, 웅석봉,한방 휴양 단지,대전 통영간 고속 도로,지리산 천황봉,써리봉,중봉등이 관망되는 산이기도 하다.

산행일시; 2014.04.21.월요일.맑음

산행코스;

   구형왕릉 주차장~류이태 약수너~망경대~전망바위~작은 왕산~왕산~필봉산~현수교~한방 휴양지

산행시간; 중식포함  4시간

가는길;

   대구 성서 홈플러스~성서IC~남대구IC~옥포JC~광주 대구 고속도로-함양IC~거창/진주 방면-유림/마천 방면

  -유림면사무소-생초IC/산청 방면-화계리~동의보감로~구형왕릉 주차장

  (네비;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16-8번지-106km, 1시간17분 소요,통행료 5,000원(2023년 현재))

 

이미지 보기

 

 

 

 

 

 

사적 제214호인 가야의 마지막 왕인 제10대 구형왕이 묻혀있다는 (전)구형왕릉은

   전(傳)자가 붙은 이유는 그의 능이라는 확증이 없고, 단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왕능과는 전혀 다른 특이한 형태로서  무엇보다도 돌로 쌓은 석총 즉-돌무덤이라는 점이다.

 

   521년 가야국의 왕으로 올라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으며,

 

   신라 삼국 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장군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산청군 금서면의 오봉계곡에 위치한  유의태 약수터
   드라마 허준에서 스승으로 나왔던 류의태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드라마에서만 존재하는 가공 인물이라 한다.

   역사에도 류의태에 대한 것은 단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는 허준이 산청에 들어와 '명의' 류의태를 스승으로 맞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류의태가 자신 몸을 해부하도록 하는 대목에서이야기 감동은 극에 달한다.

 

산청은 지리산을 끼고 있어 심산유곡들이 많아 좋은 물이 많이 난다.

이중 지리산 동북쪽 쑥밭재, 즉 산청과 함양 경계지점에 있는 오봉 계곡은

한여름에도 한산할 정도로 숨겨진 계곡이다.

양쪽 산기슭에서 내려온 계류가 합쳐지면서 깊은 협곡, 즉 오봉계곡을 이루며 굽이쳐 내려간다.

화계리에는 허준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가 한약을 달일 때 사용 했다는

유의태 약수터가 있는 왕산에서 흘러내린 작은 계곡이 있다. 물이 차고 몸에 좋다.

 구형왕릉을 찾아가는 길에는 소설 동의보감을 재현한다는 단지조성지가 나온다.

산청은 허준이 유의태 스승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그 흔적은 구형왕릉(금서면 화계리)이 있는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왕릉에서 유의태가 약초 물로 사용했다는 약수터가 멀지 않다.

다시 말해서

구형왕릉 옆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구형왕이 나라를 신라에 맡기고 말년을 보냈다는 수정궁터가 있다.

소나무 숲을 따라 계곡으로 더 들어가면 돌무더기로 조성한 약수터도 있다.

명의 유의태가 약수로 썼다 해서 유의태 약수터라 한다.

그리고 능 100m 아래에는 김유신 사대비가 있다. 김유신 장군이 활을 쏘던 자리다.

유의태는 지리산의 광활한 숲과 맑은 자연환경 속에서 자란 약초의 효능을 알아본 명의였다.

유의태로 인해 산청은 일찍부터 의술이 발달하였다. 조

선 선조 때에 지금의 신안면 정태 마을에 유의태가 태어났다.

유의태는 의술이 탁월해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그의 외손(진외손)인 허준이 그 밑에서 의술을 배워 마침내 대성하여

‘동의보감’이라는 불후의 의서를 편찬하고 양평군으로 봉군되기도 하였다.

 이 지역의 기이한 연고는

그 뒤 조선 숙종 연간에 거창 위천에서 생초 신연으로 옮겨온 유이태 의원이 있었으니

그 또한 명의로서 청나라 고종의 천문창을 고쳐주므로 천하에 명의로 알려졌다.

그런데 앞서 선조 때의 유의태와 100년 후인 숙종 때의 유이태는 성씨와 명자가 각각 다르지마는

우리말 발음이 비슷하고 의술 또한 뛰어난 분이었으므로 간혹은 이야기 속에서 혼동을 가져오고 있다.

조선, 순조 때에 단성의 금만에는 허씨 형제가 있었는데,

형 허영과 아우 허언이었다.

형은 처방의학에 통달하였고 아우는 침술에 능하여 세상에서는 옛날의 화타나 편작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두 사람이 주유천하를 하면서 많은 일화를 남기고 진양신방을 저술하였으며

대를 이어서 허형의 아들도 명성을 날렸다.

이렇듯이 독특한 의술문화는 이 고장의 천혜적인 조건과 합당하는 인위적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반대한 두문동 72인의 한분인 민안부가 이곳 생초에서 은둔하면서. 이곳 망경대에 올라

   송경(고려의 수도)과 마즈막왕인 공양왕을 흠모하기 위해 올랐다는 망경대

 

 

 

 

 

 

 

 

 

 

 

 

 

 

 

 

 

 

 

 

 

 

 

 

 

 

 

 

 

 

 

 

 

 

 

 

 

 

 

 

 

 

 

 

 

 

 

 

 

 

 

 

 

 

 

 

 

 

 

 

 

▶필봉산은 붓끝처럼 뽀족한데서 유래되었으며,여성의 유두를 연상케해 유두봉이라고도 불렸다.

 

 

 

 

 

 

 

 

 

 

 

 

 

 

 

 

 

 

 

 

 

 

 

 

 

 

 

 

 

 

 

 

 

 

 

 

 

 

 

 

 

 

 

 

 

국내 최초로 건립된 한의학 전문박물관으로 규모로 지하1층,지상2층으로 한의학의 세계화를 목표로 하여 조선

  시대 명의 허준과 그의 스승인 신의 류의태선생이 활동한 곳으로 알려진 한방의 고장  산청군이 주도해  

  2007년 5월4일 개관한 산청 한의학박물관의 모습

 

 

 

 

□ 경남 산청 왕산   2014.4.21.월요일.맑음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위치한 해발 923.2m의왕산은 

가락국 제10대 양왕(讓王)의 능인 전구형왕릉에서 유래하였으며,

옛날 가락국의 궁궐 이름인 태왕궁에서 이름을 따서 태왕산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김수로왕이 말년에 이 산에서 휴양했다고 가락국 신도비에 새겨져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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