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선                    2019.08.02.금요일,맑음

서명선;

생졸;1728(영조4년)-1791(정조15년)

본관; 대구

증조부;남원부사 서정리

조부; 참찬 서문유

부; 이조판서 서종옥

모; 이집(李㙫)의 딸


1753년(영조 29) 생원이 되고, 1763년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곧 홍문관부교리에 처음으로 제수되고, 다음날 왕의 특명에 의해서 교리가 되었다.

1764년 홍문관 관원들이 올린 소로 왕의 노여움을 사서 홍낙명 등 8인과 함께 갑산부에 일시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재기용되어 사헌부지평·사간원헌납, 부교리·풍산만호·홍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1767년 지제교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에서 우등해 말을 하사 받았고,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하였다.

이 후 부교리·승지를 거쳐

1769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삼촌이 피체되자 연루되어 체직당하였다.

   이어서 이조참의·대사성·대사헌·승지·부제학을 역임하고 이조참판이 되었다.

1775년 일시 한직에 밀려났으나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는 홍인한 일파를 탄핵,

   세손의 대리청정을 시행할 수 있도록 크게 노력하였다.

    이 때의 공으로 세손에 의해 발탁되어 예조판서·병조판서·이조판서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정조가 즉위하자 더욱 중용되어 수어사·총융사를 겸임해 군사권까지 장악했고, 우참찬·판돈녕부사를 거쳐 1777년(정조 1) 우의정, 다음 해 좌의정, 그 다음 해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1780년 일시 한직에 물러났다가 곧 좌의정·영의정을 역임하였다. 1783년 판중추부사가 되었고, 1791년 영중추부사로 죽었다.

영조대 중반까지는 은인 자중해 크게 현달하지 못했으나, 영조 말년에는 세손의 대리청정을 위해 진력을 한 결과 정조에 의해 중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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