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시장 박원순 당선            2020.02.16.월요일,맑음

서울 시장 박원순은

변호사 출신으로 제35·36·37대 서울 시장을 역임한 정치가다.


박원순(생졸; 1955년2월11일~)은 경남 창녕군에서 2남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74년,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한 후,

1975년,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하여 유신체제 반대 운동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어

서울대에서 제적되어 단국대 사학과에 재입학하여 졸업했다.

1982년,대구 지방검찰청 검사로 첫 발령을 받았으나, 6개월만에 사표를 내고

1983년,변호사로 개업했다.

1985년6월6일,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에서 조영래 등과 함께 피해자 권인숙 씨의 변호인단을 맡았다.

부천 경찰서경장 문귀동이 조사과정에서 22세이던 대학생 권인숙을 추행한 사건이다.
2000년1월12일,

16대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와 함께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이하 총선연대)를 구성, 단체 상임집행위원장 자격으로 낙천·낙선 운동을 이끌었다.

낙천·낙선운동이 벌어졌던 2000년 16대 총선에서 대상자 132명 중 102명이 낙선했다.

2002년9월26일,

이종찬 민주당 상임고문인 이종찬 '총선 연대가 낙선운동을 벌이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참정권을 침해했다'면서 박원순 등 총선연대 간부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연대해서 원고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2006년,희망 제작소를 설립하여 지역사회 운동, 청년 벤처 운동, 소기업 지원 운동을 했다.

2006년,박원순은 만해상,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을 수상하였다.

2010년12월8일,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2011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며 급식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해 새해가 시작되는 일주일 뒤부터 당장 급식 지원이 끊기는 아이들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박원순은 즉각적으로 '결식제로' 운동을 시작했다.

 2010년 당시 '결식 제로' 운동을 선언하며 박원순은

국가가 책임을 지지 못하면 국민이라도 나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12월 중으로 4만원을 내놓아라 한다, 

2011년10월3일,민주당 소속 박영선,민주 노동당 최규엽,무소속 박원순 세 후보는 단일화

후보 경선을 치렀다.

박원순은 경선에서는 박영선에 패하였으나 TV토론 배심원단 조사, 일반 시민 여론조사를

포함해 실시된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집계한 결과 박원순이 박영선을 이겼다.

2011년10월11일,

박원순은 선거대책위원회 '새로운 서울을 위한 희망캠프'를 공식 출범시켰다.

범야권 단일화의 결과 민주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 야3당이 참여하고 있으며 시민사회, 문화계 인사, 언론계 등이 총 집결하였다.

상임 선대위원장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맡았으며 유시민 ,국민 참여당 대표 노희찬,심상정

전 진보신당의 지도 인사와 문제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정동영,이계안

문성근 등이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선대 위원장직을 맡았다.

범야권 통합후보 경선에서 경쟁한 민주 노당당의 최규엽과 민주당의  박영선 역시 경선 당시의 약속을 지켜 선대 위원장직을 맡았다.

고문에는 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 특보단에 최재천 전 의원, 선대본부장에 문용식 나우콤 사장,정봉주,천호선 전 의원 등이 참여했다.

2011년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의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2014년6월4일,

제6회 지방 선거에서 제36대 서울시장에 재선되었다.

2018년6월13일,

제7회 지방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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