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의왕후의 사망에  관한 야사        2019.07.18.목요일,비

선의왕후가 사망한 것은 오랜 지병을 앓아서가 아니라

1730년 4월15일에 발생했던 영조 암살 사건주모자로 지목되어 어조당에 유폐되었고,

분개한 선의왕후가 음식을 거부하여 끝내 아사한 것이라고 전한다.


선의왕후가 이인좌 등에게 비밀리에 언문교서를 내렸는데

"왕실의 씨가 바뀌었으니 바로 잡아라"는 하교를 내렸다고 전한다.

사실 여부는 실록에 존재하지 않으나 이인좌 등이 왕대비의 밀명을 받았다고 주장한 흔적은 영조실록에

수차례 등장한다.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가 사망한 것에 대해 선의왕후가 독살 하였다는 설과 궁녀를 시켜 독살 한 것이란

설이 존재한다.


시동생인 영조와 사이가 두드러지게 좋지 않았는데,

즉위 초부터 선의왕후는 남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영조를 위한 예식과 절차를 거부하기 일쑤였고,

영조는 왕대비인 선의왕후에게 올려지는 물품을 매번 삭감하여 국고나 백성에게 돌렸다.

왕대비(선의왕후)에게 진연을 올리자는 홍치중의 주청이 있자 영조가 진노어린 비답을 내려 종실 전성군

이혼 등 종친부가 일제히 상소하여 진연 올리기를 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영조는성의가 부족한 것 때문에 선의왕후의 윤허를 받지 못했다며 비난과 책임을 회피하였고,

이후 진연을 올리는 것이 정해지긴 하였지만 수차례 연기되었다.


영조는 선의왕후의 국상 기간 중에 후궁 숙의 이씨를 빈으로 삼고 대대적인 혼인잔치를 열어 도성 안팎은

물론 노론 대신들까지 탄식을 쏟아낼 정도였다.


선의왕후를 죽음으로 이끈 병명은 밝혀지진 않았으나 죽기 직전까지 몸을 떨며 통곡을 하고 읍성을 냈다고 한다.이에 영조가 의관들이게 그러한 증후를 본 적이 있는지 묻자 중관이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 대답하였다.

선의왕후의 백모(어유봉의 처)는 숙종의 후궁이자 희빈장씨의 숙적이었던 영빈 김씨의 고모이다.

경종의 초비였던 단의왕후 심씨 역시 영빈 김씨의 외가 친척이었다.

영빈 김씨는 신임옥사 직후 경종 즉위년에 발생했었던 경종의 급성중독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되어 경종4년에는 다름아닌 자신의 외사촌동생인 이진유의 강력한 주장으로 참수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인원왕후의 절대적인 비호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가 영조의 등극 직후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