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종과 손순효        2012.08.16.


조선왕조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가장 잘 살았던 시기는 성종 때다.
윗대의 태종,세종대왕,세조가 기반을 다져 놓은 덕에 성종이 통치하던 시기의  조선은 나라로서의 기틀이
완전히 잡힌 안정된 상태였.
밖으로부터의 외침도 없었고  내부적으로는 신생 왕조의 기강이 아직 남아 있어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그리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다.또한 기근이나 흉년도 없어  굶주리는 백성도 없었으며  양반 계층에서는  도리어 사치 풍조 마저 생길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안정 되었던 시기였다 .
세종대왕 시절에는 아직 왕조가 안정되지 않은 데다 흉년도 자주 들었다. 따라서 경제적인 면으로 보면 세종대왕보다 성종 시대가 더 나았다.
이러한 선왕들의 치적 덕분에 통치에 필요한 제반 여건 자체가 좋았는 데다가 다행히 성종 역시 명석하였고,
부지런한 군주로서의 리더쉽과 군신 간 관계도 좋았다.

술독에 빠진 신하를 걱정한 임금이 신하에게 친히 잔을 내리며 하루 석 잔만 마셔라고 했더니 신하는 잔을
서 대접을 만들어 하루 석 잔 아니 대접 마시고 만취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성종과 그의 재상  
손순효 다.
성종의 딱 하나 단점은 놀기를 좋아했다.좋아한 정도가 아니라  주색잡기에 도가 텄다고나 할까?

성종실록에 따르면 밤새도록 일하고 밤새도록 놀고 또  밤새도록 일하고 밤새도록 술마셨다한다.
 여색 또한  밝혀서  3명의 왕비와  9명의 후궁도 모자랐는 지 계속 바람을 핀다.

오죽 했으면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가 성종의 바람기로 인해  질투가 심해져서  부부 싸움 하다가  성종의 뺨을 때려(할퀴었다는 설도 있다) 인수대비의 눈에서 벗어나 폐비되고 결국 사약까지 받게된다.
조선의 왕 중  연산군 빼고는 가장 화끈하게  놀았던 임금이 성종 이었을 것이다.
(당시 성종의 별명이 '주요순 야걸주' 였다한다.낮에는 요,순 임금처럼  성군이지만  밤에는 한나라의 걸,
은나라 주 임금 처럼  주색에 빠졌다는 뜻이다).   

성종과 손순효의 일화 한 가지 소개한다.
연산군이 태자로 책봉되고  성종 재위도 끝나갈 무렵,이날도  성종과 손순효는 질탕하게 놀고 있었다.  
한창 흥이 오르던 중  만취한 손순효가  갑자기 용상을 만지며 울었다.성종이 놀라 까닭을 물으니 귓속말로 이 자리가 딱하고 아깝다고 했다.연산군을 세자에서 폐하고  다른 왕자로 왕위를 잇게 하라는 의미다.
반역으로 엮일 수 있는  위험한 극언 임에도 불구하고 성종 역시 그러한 것을 알고 있지만 차마 세자를 폐할 수는 없다 라고 말했다.
즉, 성종 역시 연산군이 임금의 재목이 아님을  예감하고  있었다는 뜻이다.다만 세자를 폐할 경우 어떤 혼란이 생길 지 몰라  계속 연산군을  세자로 삼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종은 16남 13녀를 두었다. 이렇게 자손이 많으니 태종 때와 같은 왕자의 난이 안 일어
난다는 보장이 없다.
성종이나  손순효나 연산군이  군왕 재목이 아닌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데다가  이들  관계가 (성종과 손순효) 일반적인 군신관계 이상으로, 서로 심금을 터놓을 정도로 상호 신뢰가 두터웠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외에도 손순효는 윤씨를 폐비하는 데 반대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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