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확                               2019.12.27.금요일,맑음

신현확(생졸;1920년10월29일- 2007년4월26일)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보사부장관,부흥부장관,삼성물산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1920년10월 29일에 경상북도 칠곡에서 태어난 신현확은

일제 강점기에 대구고등보통학교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한 뒤,

1943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일본 도쿄의 상무성에서 근무하였다.

   이후 일본 군수성의 군수 관리관으로 있던 중 해방을 맞이했고,해방 후에는 대구대학교 교수로 근무했다..

1951년,한국 전쟁 중 상공부 공업국 공정과장으로 다시 관직에 들어와 상공부 공업국 국장을 지냈고,

1957년, 부흥부 차관에 임명되었다.

1959년에는 만 39세의 나이로 최연소 부흥부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난 뒤 3·15부정선거에 연루되어 2년여 동안 옥살이를 하였다.

  출옥 이후에는 민간기업 경영자로 변신했다.

1968년, 동해 전력 사장을 시작으로 쌍용양회, 쌍용산업 사장 등 재계에 몸담고 있다가

1973년에는 민주공화당의 공천을 받아 경상북도 지역구에 출마하여 제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제10대 국회의원에도 재선되었다.

1975년에는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976년의 의료보험법 개정과 1977년의 의료보험 실시의

   주무적인 역할을 했다.

1978년12월에는 제2차 오일쇼크 경제위기 속에 남덕우를 대신해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되어 경제

   안정화 시책을 추진했다.

1979년, 10·26사건 이후 최규하 정부 초대 국무총리가 되었으나

1980년,5월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그 다음날 사임했다.

   그러나 다시 헌법개정심의위원장을 맡아 신군부의 제5공화국 헌법 입안을 주도하였으며,

1981년, 국정자문위원,

1983년, 한일협력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다시 한 번 민간기업 경영진으로 복귀하였다.

1986년, 삼성물산 회장을 맡았고,

1988년, 행정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99년에는 전경련 기업윤리위원회 위원장과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의 회장 직을 맡이 기념관 건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6년2월, 척추골절로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오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2007년4월 사망하였다.

1973년 금탄산업훈장,1978년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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