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덴만 여명 작전              2020.02.16.일요일,맑음

2011년1월21일의 아덴만 여명 작전은 

한국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들이 몸값 지불을 요구하며 피랍한 한국의 삼호해운

소속 선박 삼호 주얼리호를 소말리아 인근의 아데만 해상에서 1,2차에 걸친  구출 작전으로 구출한 사건이다.


1차 구출 작전은

2011년1월18일,20시 9분,

해적들이 소말리아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최영함(구축함)이 해적들을 뒤쫓는 도중 해적들이 몽골 선박을 추가로 피랍하기 위해 자선을 내리는것을 포착하고 작전을 시행했다.

헬기로 자선에 위협 사격을 가한 뒤,

청해 부대 소속 해군 요원들이 고속정으로 삼호 주얼리호에 접근했고 해적과의 교전이 벌어졌다.

해적들은 흰기를 들고 항복 하는 척 하다가 소총을 발포하여 특수부대원 3명이 부상을 입고 작전을 중지하여 최영함으로 복귀했다.

2차 구출 작전은

2011년1월21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에게 구출 작전을 최종 승인하였고,

'아덴만 여명작전'이라고 불리는 작전이 개시되었다.

최영함과 해군 특수전 여단은 약 5시간의 교전을 거쳐  해적들을 제압하고 21명의 선원들을 전원 구출했다.

8명의 해적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으나 한국 해군의 사망자는 없었다.

인질 중에 사망자는 없었으나 해적이 발사한 총탄에 석해균 선장이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다.

석해균 선장은 응급 처치 후 오만의 제2도시 살랄라에 위치한 술탄카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후 석 선장은 오만 살랄라 공항에서

2011년1월29일,태국을 거쳐 11시간 만인 22시 30분경 서울 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아주대학교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석선장은 작전 과정에서 목숨을 걸고 기지를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국 정부는 생포한 5명의 해적을 제3국에 인계하여 국제 공조를 통해 대리 처벌하도록 할 예정이었으나,인접 국가들이 대리 처벌을 거부함에 따라 최초로 본국으로 송치하게 되었다.

한국 선원들이 피랍되어 있는 금미호 선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해적들과 맞교환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이 역시 현실적으로 어려운점이 있으며, 소말리아 해적들도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송치하여 처벌하도록 지시했다.

한국 정부는 사망한 해적들의 시신들을 수장하는 방안을 검토하였으나,

소말리아 정부에 시신을 인계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2011년5월27일,

재판부는 1심에서 석해균 선장을 쏜 것으로 지목된 해적 아라이에게 무기징역을,

나머지 3명에게 징역 13년에서 15년을 선고하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