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마를 세게 해 반역자 된 시녀        작성일자.2010.04.14.수요일,맑음

 

태종 이방원은 형제들 사이의 치열한 왕권 쟁탈 싸움을 통해 왕위에 올란 인물이다.

그의 나이 51살에 셋째 아들 충녕군에게 왕위를 넘겨 주었으니 그가 바로 세종이다.

태종은 왜 아직 젊은 나이에 서둘러 왕위를 세종에게 넘겨 준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사고에 대비 하려는 뜻과 왕위에서 물러나 상왕의 자격으로

세종의 왕권을 보강하려는 뜻도 있었다.

상왕 태종 이방원은 세종의 집권 초기에 각종 국사에 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태종 이방원에게 대들었던 사람이 있었으니,장미라는 예쁜 이름의 시녀였다.



세종 2년(1490.10.11)  53살의 상왕 태종은 말한다.

내 나이 오십이 지난 뒤에는 잠을 편케 못 자고해서 시녀 장미를 시켜서 무릎을 두드리게 했더니 마음에 맞지 아니해,

내가 조금 꾸짖어 주고 바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장미가 갑자기 두들겨서 놀라 잠을 깨었다.

그 무례함을 미워해 대비에게 보내 그 정상을 물었으나 실상대로 대답하지 아니하므로,

내가 불러서 친히 물으니 말하기를 “꾸지람 하심에 분이 나서 조심 없이 두드렸다”고 하니 그 불경함이 크다.

인명이 중하다 하겠으나 징계하지 않을 수 없다.

잡아서 물에 넣든지 목을 졸라 죽이든지 해야겠다.

상왕이 격노 했으니 세종이 이 일을 수습해야 했다.

변계량을 비롯한 세종의 대신들이 앞을 다투어 준엄하게 충언한다.

장미가 저지른 죄는 반역으로 논해야 될 것이니, 마땅히 세 정승과 함께 국문해 사형에 처해야 할 것입니다.

안마를 세게 했으니 반역이요,

영의정·좌의정·우의정 세 정승이 몸소 심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23살의 세종은 다소 침착한 편이었다.

장미의 일은 말만 해도 오히려 부끄러우니 세 정승까지 번거롭게 할 것이 있겠는가.

영의정이 이미 몸소 국문하기로 되어 있으니 그렇게 하라.

‘반역자’ 장미는 어떻게 되었는가?

꺼낼수록 부끄러운 일인지.

세종실록에 그 뒤의 일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³ 역사.인물.사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승 황희  (0) 2010.04.15
세종대왕과 수맥피해  (0) 2010.04.15
신숙주  (0) 2010.04.14
하위지  (0) 2010.04.14
박팽년  (0) 2010.04.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