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영동 백화산 (한성봉;漢城峰)  

해발; 934m

위치; 경북 상주시 모동면과 충북 영동군 황간면 경계

소개;

  한성봉은 일제 강점기때 우리나라의 국운을 꺽을 목적으로 금돌성을 포획한다는 뜻에서 일본인들이 백화

  산 포성으로 불렀다. 2007년 중앙 지명 위원회에서 포성봉에서 한성봉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이곳에선

  백화산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지도상에는 한성봉으로 표기되어 있다.백화산을 사이에 두고 금강과 낙동강

  이 남북으로 흐른다. 삼국 시대에는 이곳의 득실에 따라 신라와 백제 양국의 국운이 좌우되는 요충지였다.

  산에는 금돌산성과 백옥정, 옥동서원 등을 비롯한 문화유적이 남아있어 역사의 향기도 느낄 수 있다.봄이

  면 철쭉이 능선마다 꽃띠를 두르고 있어 꽃산행도 겸할 수 있고, 여름에는 수풀과 옥류가, 가을에는 단풍이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석천골 반야사를 온통 붉게 물 들인다.경북 상주시에서는 상주시 수봉리에서 출발

  하는 호국의 길(천년 옛길)을 조성하여 둘레길을 정비하였으며,충북 영동에서는 반야사에서 출발하는 백화

  산 둘레길을 조성하여 연계하여 조성한 둘레길이 있다.

산행일시; 2014.10.03.금요일. 맑음

산행코스; 반야교-둘레길 방향-팔각정-편백숲길-헬기장-백화산(한성봉)-버들재-계곡-팔각정-반야교

산행시간; 중식포함 5시간

가는길; 대구 성서 홈플러스-신천대로-서대구IC-금호JC-경부고속도로 황간IC-황간 삼거리.황간(김천)

         -마산 삼거리.백화산 (용산) 방면-반야사(우매리)-반야교 주차장 

          (네비;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산 56-1번지-98km,1시간20분 소요,통행료 5.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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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산행은 반야교를 지나 우측으로 조그만 가면 주행봉으로 가는 산행길이 열려있고, 시멘트 포장길이

   마치는 길을 들머리로 잡아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백화산은 산전체가 밝고 맑다는 뜻이며,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 할때,백제 정벌을 하기위해 이곳 금골성에서 한달 머물렷으며, 고려시대(1254년) 몽고침입시

   황령사의 승지인 홍지가 민관민과 함께 무리쳣고 ,몽고군의 차라데가 물러가며 한을 남긴 봉우리라하여

   한성봉이라 하였다.일제 때 일본의 흉계로 성을 사로 잡는다는 포성봉으로 불렀다가 2007년 이름을

   되찿았다.

 

▶반야교를 지나 주차를 하고 ,산행 안내판 오른쪽으로 산행을 시작하자 만나는 통나무로 만들어 놓은

   산행길은 주행봉으로 가는 능선길이다.백화산으로 가는 길은 시멘트 포장길로 곧장 가면 둘레길과

   만나는 넒다란 공터를 만난다.

 

 

 

 

▶계류를 지나고.........

 

 

 

 

▶편백 숲길을 지나......

 

▶산행 30분 쯤이면 한창 공사중인 전망대-석천과 문수전,반야사 전경을 위한 전망대를 조성 중인 듯 하다.

 

▶세조가 문수 보살의 인도로 반야사 개울 석천에서 목욕하여 병이 나았는데, 그 때 문수 보살이 자리한

   망경대(문수바위) 절벽에 세운 전각이 문수전이다.반야란 문수 보살의 지혜를 뜻하고,반야사란 이름도 문수보살

   과 관련이 있다.풍수 지리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최고의 길지라 하는 절벽위에 문수전의 문수 보살의 뒤는 탱화가

   아니라 금강경 금니사경이 있는데 그기에도 사연이 있다.처녀귀신이 든 황도령의 온몸에 금강경을 적다가 귀

  부분을 빠뜨렸다고 한다.그에 귀신이 황도령의 귀를 먹었고,귀가 없는 황도령이 귀가 없어 무이법사 되었다 한다.

  문수전의 문수 보살은 백화산 자락과 석천의 물결을 바라보고 있다.

 

▶반야교에서 출발한 산행은 팔각정을 떠나 편백숲을 지나면 한창 공사중인 전망대 조성 자리에서  바라 다 본

   석천과 어우려 한반도 모양을 한 곳에 좌측으로 문수전이 ,우측으로 반야사가 전망된다.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 20여분 가면 잘 가꾸어진 헬기장을 만날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다 본 백화산과 주행봉을 잇는 부들재가 나즈막히 보인다. 금일 산행은 부들재에서 하산하기로

   하였다.

 

▶정상을 가기전엔 상주 모동을 볼 수 있으나 ,하산길은 상주의 모서를 관망 할 수 있다.

 

▶백화산 산행은 부드럽게 서서히 할 수있어 초보자로도 가능한 산행이다.

 

▶정상 부분이 관망된다.

 

 

 

 

▶정상 가기전 삼거리에는 하산길과 정상길, 그리고 산행한 편백숲을 가르키는  안내판

 

▶정상 가기전 전망대에서 본 산행한 능산길은 멀기도하다.

   이럴때 흔히들 하는말 "사람의 한발 한발이 무섭다" 라고........... 감탄을 연발한다.

 

▶백화산 정상에서 연결되는 부들재와 주행봉이 바로 옆에 있는 것만 같다. 금일 산행은 주행봉을 갈 수 없다.

   시간이 모자라서... 다음번 산행을 기약하며...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할때,백제 정벌을 하기위해 이곳 금골성에서 한달 머물렷으며, 고려시대(1254년)몽고

   침입시 황령사의 승지인 홍지가 민관민과 함께 무리쳣고 ,몽고군의 차라데가 물러가며 한을 남긴 봉우리라하여

   한성봉이라 하였다.일제때 일본의 흉계로 성을 사로 잡는다는 포성봉으로 불렀다가 2007년 이름을 되찿았다.

 

▶정상에서 하산길은 20여분을 가파르게 전개된다. 주의 할 점은, 하산길은 표시목이 있는 부들재에서 하여야한다.

   리본이 달린 곳으로 하산한 산꾼들은 길도 온전치 않고 혼났다고 한다,

 

▶부들재 가 기전 험한 바위 능선을 가야만 하나 우회도로를 택하여 버들재까지 가면 안전한 산행을 즐길수 있다는

  점을 유의 하여야한다.

 

▶정상을 가기전엔 상주 모동을 볼 수 있으나 ,하산길은 상주의 모서를 관망 할 수 있다.

 

▶부들재에서 잠깐 머물면서 하산을 준비한다. 직진하면 주행봉으로,우측은 상주 모서로,좌측으론 산행 기점인

   팔각정과 반야교로.......

 

 

▶버들재에서 하산 후 처음 만나는 이정표-바위로 된길은 하산길중 리본이 달린 곳으로 하산하면 이 길이다.

   이 길로 하산 한 등산객들이 말한다. "길도 없고 혼났다"고

 

▶부들재에서 하산길은 매우 지루한 시간이 지난다. 처음엔 부드러운 산 길을 하산하다가 자갈이 놓인 길을 한창

   가야만한다. 조심 스럽게 하산 하여야 만  한다. 1시간정도 걸리는 하산길이다.

 

 

 ▶금일 산행이 마무리 지어가는 팔각정 삼거리에서

 

 ▶잘 포장된 계류를 지나

 

 

▶ 중식 포함 5시간의 원점 회귀산행이 끝난 반야교 주차장.산행은 종료된다.

    반야사를 관람하기 위해 반야사로 이동한다.

 

반야사

▶반야교에서 반야사는 500m 지척에 있다.일주문을 지나면 주차장이 나온다.여기에 주차하고 반야사로 도보로

   가면 10여분 가면 된다.또한 자동차로 반야사 절 앞 공터에 주차장이 또 있다.

 

 

▶ 전설에 의하면, 반야사는 조선의 세조가 이곳에 행차하여 체류할 때 화신인 문수동자(文殊童子)가 목사자를

    타고 안내하여 가 보니 약수가 있어 그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절의 이름을 반야사라고 한 것도

    이 절 주위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신앙 때문이라고 한다.

 

▶ 반야사는 신라 성덕여왕 27년(728년) 원효대사의 10대 제자 중에서 수제자인 상원화상이 창건하였고, 고려 충숙

    왕 12월(1325년) 학조대사가 재건했다고 전한다. 경내엔 대웅전ㆍ요사 2동ㆍ삼층석탑ㆍ부도 2기 등의 지방문화

    재가 있고, 대웅전에는 삼존석조불상ㆍ각종 정화 및 불구 등의 향토문화재가 있다.
    대웅전은 목조와즙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집으로 포가 없는 간략한 양식의 건물이고, 1995년 독지가 박희택씨

    가 새로히 대웅전을 옆에 다시 지었다. 대웅전의 안에 있는 불상은 옥석으로 만든 보기드문 불상으로 제작연대

    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때 제작된 것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 반야사 호랑이

▲ 반야사에서 본 반야사 호랑이 형상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지장산(地藏山) 기슭에 있는 반야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인 반야사 삼층석탑은 
    1996년 1월 5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되었다.전체 높이 315㎝이다. 1950년경 반야사의 주지였던

   성학(性學)이 절의 동쪽 석천계곡을 따라 1㎞ 지점에 있는 탑벌이라는 곳에서 운반하여 대웅전 앞에 다시 조성한

   것이다. 토단을 조성하고 지대석(地臺石)을 놓았으며 조합된 지대석 윗면에는 우각의 합각선과 기단받침을 조출

  하였다. 기단부는 각 면석을 별석으로 조합하였고 양 우주(隅柱)와 일 탱주(撑柱)를 모각하였다. 각석의 윗면에도

  합각선과 1층탑신 받침을 조출하였다. 1층탑신에도 양 우주를 모각하였는데 동·서의 벽면석은 새로 조성하였다.
  각층 옥개석(屋蓋石)의 낙면은 물매가 급한 편이며 옥개석 받침은 초층 5단, 2∼3층에서는 4단으로 되어 있다.

  2층 탑신의 높이는 26㎝로 높이 56㎝인 1층에 비해 급격히 체감되었으며 상륜부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이

 보존되어 있다.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된다.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 말사다.

 

▶문수전 가는길은 두 가지가 있다.하나는 우물가 우측으로 산행길로..

   또 하나는 좌측으로 난 석천으로 가는 길로....

 

 

 

 

▶세조가 목욕하여 병을 나았다는 망경대

 

 

 

 

 

 

 

▶문수전 난간 아래로 본 망경대

   반야사와 문주선을 관람 한 후 돌아 오는 길에 들린 영동 월류봉이다.

 

■ 월류봉

▶오는길에 잠깐 들린 월류봉은 봄과 겨울. 두번이나 산행 한 월류봉이다.그리고 금일 ,나에게는 친근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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