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 용연사 (龍淵寺)

위치; 대구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915 

소개; 

   옛날 이 절터의 동구에 용추가 있어 동천했다 하여 붙이게된 용연사는 조계종파며,신라 신덕왕 912년

   보양국사가 창건하였으며,세종1년 1419년 해운당 천일대사가 중건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때 완전히 소실하게 되어 선조36년1603년 홍제존자가 청하당 인잠,탄옥,경천등에게

   명하여 재건한 바있으나,효종1년 1650년에 종각만 남기고 소실되었다.

   그후 노숙이 홍묵,계홍 등 24인과 함께 10년이 걸려 재건하고,경종2년 1772년에 장노찬화가 단청을

   한 바 있으며,영조2년 1726년 다시 화재로 대웅전, 동서별당, 좌우승방이 소실 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영조4년 1728년에 세워진 것으로서

   현재 경내에 극락전, 보광전, 관음전, 사명당 일주문 등을 비롯하여 17동의 건물과 치악산 각림사에서

   옮겨온 사리탑과 고려 시대의 삼층 석탑 등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탐방일시; 2013.06.10.월요일.맑음

가는 길; 대구 성서 홈프러스-신천대로 마산,광주 방면-성서IC-남대구IC-화원.옥포 IC-용연사 삼거리

          -기시못-용연사

          (네비; 대구시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882번지-16.5km,30분.통행료 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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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연사의 가람배치

용연사의 가람 구조는 당우의 배치를 놓고 볼 때

극락전,명부전,적멸보궁을 각각 중심으로 한 세 구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극락전 구역으로는 극락전을 비롯해서 영산전, 삼성각, 안양루, 천왕문, 요사, 종무소 등이 있는데,

   전체 가람의 중심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명부전 구역에는 명부전을 포함하여 사명당, 독산각 등이 있으며,

   중심 영역 왼쪽의 개울 건너편에 자리한다.

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앞쪽에 언덕이 있는데,

   이곳으로 들어서면 바로 적멸보궁 구역이 나온다.

그 밖에 입구쪽에 일주문인 자운문(慈雲門)이 있다.



△ 다른 사찰에는 일주문이라 암각되어 있으나

    용연사 일주문엔  "비슬산 용연사 자운문"이라고 암각되어 있다.

 

△ 용연사 극락교를 지나면 천왕문을 만난다.

    보통 천왕문에는 사천왕상이 있는 반면 여기는 벽에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 천왕문 내의 사천왕상 그림과 항아리에 던져진 동전들. 

 

△ 불교에 관한 물품

 

△ 안양루

    안양루는 범종이 있고 법고, 운판, 목어등 불교의 사물이 한자리에 들어 있다.

 




 

 

 

 

 


 △ 3층석탑

    용연사 극락전 앞에 위치한 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바닥돌은 후대에 새로운 돌로 보수한 상태이며,기단과 탑신의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낙수면이 짧고 처마가 얇은데 비해 밑면에 새긴 4단의 받침이 높직하다.
    석탑의 높이가 2.6m로 작은편이다. 

    전체적으로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고려 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 극락전

    극락전은 서방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불전으로,무량수전·아미타전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대웅전,대적광전과 함께 3대 불전으로 손꼽을 만큼 많이 건립되었다.

    용연사 극락전은 정면 3칸,측면 3칸의 맞배 기와집의 다포계 건물로

    18세기 건축약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 삼성각


 

△ 심검당

 

△ 불이문

 

 

 

 

△ 홍제문

 

△명부전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 (達城 龍淵寺 金剛戒壇) 

 보물 제539호인 금강 계단(戒壇)은 계(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를 수여하는 식장으로, 이 곳에서 승려의 득도식을 비롯한 여러 의식이 행하여 진다. 용연사 내의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이 계단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임진왜란(1592) 때 난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겼던 통도사의 부처사리를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이 다시 통도사로 옮길 때 용연사의 승려들이 그 일부를 모셔와 이곳에 봉안하였다 한다.

돌난간이 둘러진 구역 안에 마련된 계단은 널찍한 2단의 기단(基壇)위로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네 모서리마다 4천왕상(四天王像)을 1구씩 세워두고, 위층 기단은 4면에 8부신상(八部神像)을 돋을새김하였는데, 뛰어난 조각솜씨는 아니지만 섬세하고 균형감이 있어 단조로운 구조에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조선시대에 유행한 양식을 보이고 있는 탑신은 별다른 꾸밈을 하지 않은 채 꼭대기에 큼직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조각해 두었다.

절 안에 세워져 있는 석가여래비에는, 석가의 사리를 모시고 이 계단을 쌓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을 통해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계단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구조가 섬세하고 조각기법이 예리하며, 특히 17세기 초에 만들어진 작품으로서 당시의 석조건축과 조각을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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