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요호 사건                     2019.08.15.목요일,흐림

1875년9월20일에 일어난 운요호(운양호 사건)은 ,

일본 군함 운요호가 포함 외교의 일환으로,조선 해안을 탐측 연구하기 위해 왔다고 핑계를 대고 강화도

앞바다에 불법으로 침투하자 해안 경비를 서던 조선 수군의 공격을 받자,함포 공격을 가하고,

영종진에 상륙하여 조선 수군을 공격하고 인적.물질적 피해를 입히고 퇴각한 사건이다. 


일본은 1854년, 미국의 포함 외교에 바로 굴복하고 개항(개국)을 하였다.

당시 국제 사회는 제국주의가 팽배해 강대국이 후진국을 무력으로 압박하여 개항을 유도하거나 침략하는

사례가 많았다. 1860년대 이후 일본은 조선에 대한 정한론이 다시 고개를 들어 침략 전략을 가지고 조선에

접근하였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 개혁을 단행한 후,일본은 조선과의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흥선 대원군의 '양이 정책'으로 실패하였다


흥선대원군이 물러나자 외세의 침략은다시  고개를 들기시 작 하였다..

1873년12월,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되면서 개국의 분위기가 일어났다.

한편,일본은 조선과의 수교를 좀 더 신속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포함 외교를 시도하게 되었다.   

1875년,조선 침략의 기회를 엿보던 일본은 운요호와 제이정묘호를 부산에 입항시키고,조선의 항의를

무시하고 무력적 포함 시위를 단행했다.

1875년9월20일,운요호(운양호)는 동해안을 순항하고 다시 남해안을 거쳐 서해안을 거슬러 강화도 앞


바다인 초지진에 접근하자 조선 수비병은 일본군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이에 일본군은 모함으로 되돌아가 함포로서 조선에 보복 포격을 가하였다.

일본군은 영종진에 상륙하여 조선 수군과 격전을 벌여 큰 피해를 입히고 퇴각했다.

1876년2월27일,운양호 사건 이후 일본은 운요호 사건에 대한 사죄와 조선 영해의 자유 항행,강화 부근

지점의 개항 등을 조건으로 내세워, 강제로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조약)을 체결하였고,

일본은 조선 식민지화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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