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                 2019.08.15.목요일,흐림

조선 후기에 정학을 지키고 사학을 배척하는 유교의 이념을 대변하는 사상으로 일어난 사회 운동이다.

구한말 외세의 개항 압력이 거셀 때 이를 반대하는 반외세 운동의 이념적 바탕이 된 이론이다.

 

위정척사를 주장한 이항로,기정진,김평묵,최익현,유인석 등의 유학자들을 위정척사파라 칭했다.

반외세를 주장한 위정척사파는 병인양요 등 외세의 침략과 개화에 반대하여 상소 운동을 벌였으며,

을미,을사 의병을 일으켜 반일 투쟁을 벌였다.


기정진의 손자인 기우만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반포되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5년에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결사 항쟁을 호소했다.


이와 같이 위정척사론은 주자학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나 반외세 민족 의식의 형성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송나라 주자가 여진족의 침략으로 한족과 중국의 문화가 위기에 빠지자

유교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오랑캐의 사상을 배척하기 위해 위정척사를 체계화하였다.

조선의 위정척사는 조선 초 유교를 정통으로 하여 불교를 배척할 때 처음 등장했다.

영.정조 때 천주교가 들어와 유교의 전통을 거스르는 교리를 전도하자 위정척사가 다시 등장하였다.

이항로 등 유학자들은 서양을 오랑캐로,학문과 종교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배척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위정척사론은 기존의 체제를 옹호하는 보수적인 논리였으나,서구의 침략에 저항하며 민족주의적 의식을

고취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개화파의 주장이 현실적이고 일리는 있었으나 무력으로 문호 개방을 하게 된 조선에서 위정척사는

개항의 침략적 속성을 꿰뚫어보고 저항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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