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향각의 주인                2019.06.18.화요일,맑음

숙종이 열네 살 때 아직 동궁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갑인년의 봄이 돌아오고 그때 왕대비로 계시던 인선왕후 장씨의 환후가 위중하게 되었다.

평일과 마찬가지로 밤 문안을 드리려고 할머니(장렬대비)의 처소로 와서 보니

때마침 할머니는 왕대비(인선왕후;17대 효종)의 병실로 가서 없고 나인들만이 몇 사람 있었다.

어린 동궁은 혼자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서 앉아 있는데 다른 궁인들은 어디로 갔는지 다 없어지고 오직 각시 나인 하나만이 앞에서 거행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각시 나인이 어린 동궁의 마음에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동궁은 어깨를 으쓱으쓱 하면서 애를 쓰다가 각시 나인을 보고

“얘, 내 등 좀 긁어다오.” 이런 명령을 내렸다.

각시 나인은 좀 머뭇머뭇하다가 세자 등 뒤로 가서 도포를 들치고 손을 옷 밑으로 넣어 조심스럽게 긁어

드리고 물러나려 하는데 동궁은 각시 나인의 손목을 꽉 쥐고

“어디 그 손톱 좀 보자,어째서 긁는 것이 그렇게 시원치 않으냐?” 이런 말을 하고 손을 들여다보았다.

각시는 그만 수줍어서 머리를 돌렸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우냐? 너 성이 뭐냐?” 

“사친의 성은 장가라 하옵니다.”

“몇 살이지?”

“열여섯이옵니다.”

“얘, 내 얼굴이 붉어졌나 좀 보아라.아까 어떤 나인이 장난으로 술을 권해서 한 모금 마시었다.혹시 얼굴이 붉어져서 꾸지람을 들을까 염려된다.”

세자가 이런 말을 하자 아직까지 수줍어하고 있던 각시 나인이 이 말을 듣더니 아무 생각 없이 얼굴을 들어서 생긋 웃으며 세자의 얼굴을 마주 건너다보았다.

마주 건너다보다가 깜짝 무슨 생각이 났던지 얼른 고개를 숙이고 약간 돌리면서 억지로 대답해 아뢰었다.

“소녀가 뵈옵기에는 아무 기색이 없사옵니다.”

실상은 술을 마셔서가 아니라 각시 나인의 얼굴을 좀 바로 보자는 지혜에서 나온 말이었다.

세자는 비로소 분명히 과연 아름답고 어여뿐 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이때 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대왕대비 환어하는 기척이었다.

각시 나인은 황망히 문을 열고 나가서 행차를 맞았고 세자도 밖으로 나와서 할마마마를 모셔 들였다.

그 후 부터는 매양 이 궁에 왔다가 각시 나인 장씨를 보면 남의 눈에 뜨일세라 몰래 웃음을 보내고 그럴 때

마다 장씨는 수줍어서 머리를 돌렸다.이와 같이 하는 사이에 은연중 사랑은 자라났다.

 

봄부터 가을까지 지내는 동안에 왕대비와 임금의 국상을 치르고 세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 남몰래 기뻐한 사람은 장씨 궁인이었다.

장씨 궁인은 벌써 자기가 세자의 애정을 사로잡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그 세자가 왕위에 오르자 다음 날의 영화를 꿈꾸었다.

어느덧 세월은 이년이 흘렀다.

그 해 겨울 어느 눈 내리는 밤,젊은 임금은 미행으로 장씨 궁인 처소를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장씨 궁인은 버선발로 뛰어나와

“황공무지하여이다.” 하고 그 앞에 엎드렸다.

장씨 궁인은 어느 정도까지는 이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짐작하였고 또 며칠 전 꿈에는 황룡이 자기 몸을 칭칭 감았던 일도 있었으므로 이상히 생각하고 벌써 여러 날 전부터 밤단장을 하며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그녀는 곧 방장을 두르고 촛불을 대홍촉으로 갈아 끼고 한옆에 공손히 서서 분부만 기다렸다.

이때 장씨의 나이는 열여덟이니 이 년 전 그때보다 얼굴은 더 곱게 피어났고 태도도 그전보다 점잖아졌다. 얼마 후 젊은 임금은 깔아놓은 비단 이불 한쪽을 젖히고 장씨의 손목을 잡아 끌어들였다.

장씨 궁인에게 이런 엉뚱한 꿈이 지나간 후에도 임금은 자주 이런 엉뚱한 꿈을 그녀에게 실어다 주었다.

한번 두번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두 사람의 애정은 차츰 깊어갔다.


이듬해 봄 임금은 호조판서 김만기의 따님으로 왕비를 삼았다.

왕비는 임금과 동갑인 열일곱이지만 그 조성한 지각과 활달한 언동은 벌써 성인을 능가할 만했다.

왕비는 곤순전의 새 주인이 된지 얼마 안 가서 임금의 은총이 어디에 기울어져 있는가를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래서 하루는 대왕대비에게 사후를 갔을 때에 조용히 대비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소녀가 무엇을 아오리까마는 들으니 주상은 어느 곳에 총애하는바 궁인이 있다 하옵는데,

그런 궁인을 그대로 두면 왕실에 누가 될 것 같사오니 명분을 달리 하시고 처소를 따로 정해 주시는 것이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대왕대비는 이 말을 들으니 너무도 기특하고 고마웠다.진작부터 장씨 궁인을 명분을 달리해주려 해도 새로 들어온 왕비의 마음이 어떠할까 염려되어 마음은 있으나 발설치 못하고 있던 차였다.

“중전의 말이 너무도 기특하오.그러나 궁인으로서 따로 무슨 공이 없으면 후궁을 책봉하지는 못하는 법인즉 아직 명분은 정해 줄 수 없고 처소나 따로 정해주랴 하는 바이오.”

대비는 이런 말을 하였다.

이후부터 장씨는 응향각(凝香閣)에 옮겨서 거처하게 되었다.

앞으로 장씨 궁인이 왕자라도 탄생하는 날이면 직첩이 내릴 것이다.


그런데 왕비 처소와 응향각을 드나드는 나인들의 말이 장씨 궁인은 임금을 대할 때마다 왕비를 비방한다는 것이었다. 왕비는 처음에는 그 말이 모두 중간에서 말을 좋아하는 철없는 궁인들의 지껄이는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이 사람 저 사람들이 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더라도 노상 심상하게만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떤 궁인은

“황공한 말씀이오나 나인 차림으로 한번 미행을 납시어 친히 그 거동을 보옵소서.”

이렇게 말하는 자도 있었다. 왕비도 마침내 몸소 그 거동을 살피기로 했다.

어느 날 달 밝은 밤 왕비는 나인의 복장을 하고 두어 궁인만 데리고 응향각으로 갔다. 조용히 창 밑으로 가서 귀를 대어보았다. 무슨 말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임금과 장씨 궁인 사이에는 한창 봄바람을 일으키고 꽃을 피우는 때였다.젊은 임금의 걸걸한 웃음소리와 간드러진 장씨의 웃음소리가 교차되는 광경은 귀보다도 눈이 더 궁금했다.얼마 후 장씨의 암상이 난 독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글쎄. 중전이 이러더래요,그까짓 게 무슨 상감이야,그래 관례도 하기 전에 상복을 입은 채 요사스런 계집년에게 홀려서 왕비가 무언지 임금 노릇이 무언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년의 치맛 자락에 휩싸여 헤어나질 못하는 것이.그년 부터 능지 처참해서 없애 버려야 나라가 될걸.이러더라니 이게 차마 입으로 할 소리입니까.

그 말을 들은 뒤로는 소녀는 정말 치가 떨리고 분해서 못 견디겠어요.”

“중전이 그랬을 리가 있나.”

“중전이 무슨 중전이예요?”

“왕비니까 중전이지 무에야.”

“왕비는 누가 왕비에요.상감을 먼저 모셨어요.먼저 모신 사람이 정궁비(定宮妃)가 아니에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뽀루퉁하던 장씨에게 어디서 그런 간특한 웃음소리가 나오는지,그 웃음소리에 젊은

임금도 따라서 마주 웃어버렸다.


이런 정경을 듣게 된 왕비는 너무도 해괴하고 치가 떨려서 차마 더 들을 수가 없어서 그 자리를 물러났다.

자기 처소로 돌아 온 왕비는 곧 봉서나인을 불러들여서 대필을 잡게 하여 장씨 궁인의 죄상을 일일이 들어 기록하게 하고

<아무날 밤에 응향각에서 어떠어떠한 일까지 있는 것을 본 자가 있으니 대개 이런 계집을 일향 관대하신 처분으로 그대로 궁중에 묻어 두시면 훗일 어떠한 회한이 계시올지 모르는 일이며 소비의 처지로 보아서 이런 말씀을 아뢰면 혹 질투로 그런다고 하실지 모르오나 널리 통촉하시옵고 사실을 살피시온 후에 곧 장씨 궁인을 방축하시옵기 바라옵니다.> 하는 것을 다음날 날이 밝은 후에 대왕대비에게 올렸다.

이 글을 본 대왕대비는 크게 놀랐다. 대비는 그 봉서를 자리 밑에 넣어둔 채 따로 지밀 상궁을 시켜서 수일 동안 응향각의 동정을 살피게 하니, 참으로 왕비의 말대로 해괴망측한 고로 드디어 장씨 궁인을 불러서 꾸짖고 그 날로 사친의 집으로 방축하는 처분을 내렸다.그러나 일은 이것으로 일단락이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장씨 궁인은 원래 덕기가 없는 위인 이어서 자기의 잘못은 추호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왕비의 책동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 하여 속으로 깊이 왕비를 원망하고 사친의 집으로 돌아가니 사태는 점점 험악해졌다.


장씨 궁인이 궁중으로부터 추방 처분을 받게 되어 사친의 집으로 나온 때는 숙종 오년 늦은 가을의 일이다. 

이때에 임금의 나이는 십구 세요,장씨는 이십 세였다.장씨는 집에 나와서 머리를 동이고 드러누워 한숨으로 날을 보내고 그 모친 윤씨는 쫓겨나온 딸을 보고 몸부림 쳐가며 통곡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하루는 눈물과 탄식으로 지내는 장씨 모녀의 집 문을 두드리는 허름한 사나이가 있었다.

"아니, 대감이 웬일이십니까?"장씨의 어머니 윤씨가 문을 열고는 기겁을 해 놀란다.

"떠들지 말게. 남의 이목을 가려서 오느라고 혼이 났네. 그런데 대관절 각시를 좀 보아야겠는데."

“원 이런 미안할 데가 있습니까? 어서 들어오십시오." 윤씨는 손님을 맞아들이고 장씨 궁인을 불렀다.

손님이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전에 윤씨가 침모로 가 있던 승선궁저의 아들 동평군이었다.

승선군은 인조의 왕자의 한 분이다.

얼마 후 장씨 궁인이 모친을 따라서 동평군 앞에 나타났다.

“대감, 오래간만입니다." 허리를 반쯤 꾸부려서 인사를 드렸다.

“듣자니, 너무도 아깝고 가엽고 그런 변고가 어디 있더란 말인가?"

“모두가 제 팔자이고 운수이지요. 하는 수 있습니까."

“지금 밖에서 서두르는 사람들이 있으니 얼마간 기다리게, 다시 부르실 날이 있을 거요.”

“진정이십니까?” 장씨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정신이 드는 듯 물었다.

“내가 왜 헛말을 지껄일 리가 있나.” 동평군은 장씨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조용히 무슨 말을 일러 주었다.

 

지금 왕비가 아무리 장씨를 괄시하고 내쫓았다 하더라도 임금이 장씨를 총애하던 그 정은 오히려 잊지 못할 것이다. 대왕대비께서 비록 일시적 처분으로 그와 같이 명령은 내렸으나 지금 조사석이 대왕대비한테 들어가서 마음을 돌리게 하려고 서두르는 중이니 재소입의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조사석이라 하면 대왕대비의 사친이 되는 조창원의 사촌 아우로서 대비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다.

장씨는 이 말을 듣고

“이렇게 이 몸을 비호해 주시니 그 은혜를 갚을 바를 아직 못하겠습니다.” 하고 사례를 하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 경신대옥으로 인해서 허적 등 남인일파가 쫓겨나는 바람에 남인측의 한 사람인 동평군과 조사석도 두문불출 근시하는 몸이 된 고로 장씨 궁인의 재소입 운동은 한때 주춤하게 되었다.

 

이러던 중 궁중에는 또다시 큰 소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왕비가 하룻밤 사이에 병을 얻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던 까닭이다.

모든 국민이 슬퍼하고 아까워하는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기뻐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장씨 궁인이었다.

장씨 궁인이 임금을 사모하는 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간절해졌다.

아쉬운 마음에, 공방을 지키다가 쓸쓸함을 못 이기어 혹시나 임금께서 자기를 불러들이지 않을까 기다려지는 것이 근일의 장씨 궁인의 심경이었다.그러나 사태는 추측하는 것과는 전연 달랐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와도,다시 여름이 돌아와도 다시 가을이 돌아와도 왕비의 일년 기복을 마치게 되는 때까지도 이렇다 할 소식이 궁중으로부터 들려오지 않는 것이었다.

장씨 궁인은 매일 문 밖만 기웃거리고 새벽녘이면 궁중에서 승은하는 꿈을 꾸었다.

 

이럴 즈음에 장씨 궁인의 가슴을 서늘케 하는 소식이 들리었으니 그것은 숙종이 다시 계비를 간택한다는 것이었다. 장씨 궁인은 이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실망 낙담 했으나 역시 하는 수 없었다.

오직 그 누가 왕비가 되는 가가 궁금했다.

새 왕비가 되는 이 거룩한 행운은 수백 명 간택 처녀들 중에서 서인파의 거두 민유중의 둘째 딸이요,

송준길의 외손녀에게로 떨어졌다.한동안 쓸쓸하던 곤순전에는 또다시 봄바람이 깃들기 시작했다.

새 왕비와 임금의 금실은 나날이 깊어서 임금은 장씨 궁인을 완전히 잊은 듯이 보였고 또 이런대로 한해

두해 지나가니 국가의 기초가 바야흐로 자리를 잡은 듯 튼튼해 보였다.


새 왕비 민씨(인현왕후)가 입궐한지 어느덧 육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 동안에 궁중 형편을 살펴보면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하나 내부를 캐어보면 복잡했으니 근심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그중에 더욱 큰 근심은 새 왕비가 입궐한지 육년에 아직도 아기를 낳지 못하는 일이었다.임금은 어쩌다가 혹시 곤순전에 들리면 조용히 왕비에게

“왕대비를 가서 뵈오나 대왕대비를 가서 뵈오나 모두 왕자 탄생이 늦어지는 것을 보고 큰 걱정들을 합니다. 전날에 풍정으로 사귀었던 장씨 궁인이 다시 마음에 생각나는구려.” 이런 말을 했다.

왕비는 미안하고 죄송한 가운데서도 그 장씨 궁인이라는 말을 듣고는 더욱 마음이 불안했다.

“너무나 미안 죄송합니다.그런데 장씨 궁인이 대체 누구 이옵니까?”

“중전을 알 거 없소.”

“좀 말씀해 주셔요.”

“왜 또 까닭 없이 질투나 하려고?”

“소비가 설마 그렇게야 하려고요. 그런 염려는 마시고 말씀이나 들려주셔요.”

“내가 옛날에 아직 어려서 친했던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오. 그런데 그전 왕비가 마음에 꺼려해서 그 여인이 궐문 밖으로 추방이 됐다오. 그것도 벌써 여덟 해나 되니 독수공방에 한탄으로 오죽이나 나를 원망 하겠소.”

이 말을 듣고 왕비는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젊은 임금을 쏘아보며 그 말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살펴보다가

“그럼 그 궁인을 만나보고 싶으십니까?” 이렇게 물었다.

“보고 싶은들 옛날에 추방된 궁인을 다시 부를 체면이 어디 있겠소?”

“왜요?”

“궁중 일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말이요.”

“상감마마.” 왕비는 사색을 고치면서 임금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감께서 어떠한 처분을 내리시더라도 설마 내보냈던 궁인 하나를 다시 불러들이지 못한 단 말씀입니까. 소비에게는 아무런 꺼림을 두지 마시고 하루 바삐 그 가엾은 궁인을 불러들이게 하옵소서.

그리하셔야 성덕에 누가 되시지 않으실 것 같사옵니다.”

“그러나 나로서 이런 말을 여러 어른께 시뢰고 또 여러 신하에게 할 수 없지 않소?”

“그러면 소비가 대왕대비전께 사뢰어 보면 어떨까요?” 이 말을 듣던 임금은 얼굴에 희색이 돌면서

“그런다면 여북이나 고맙겠소. 그러나 미안해서.”

“별 말씀을, 소비에게는 미안한 생각을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이런 대화가 있은 후 어느 날 왕비는 대왕비전에 사후하여 다음과 같이 장씨 궁인의 말을 아뢰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소비는 나이 이십이 되었으나 몸에 병이 있사와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것 같사오니

국가의 종사가 끊기기 전에 미리 여기에 대한 계책을 베푸셔야 할 줄로 아룁니다.”

대왕대비는 놀라운 표정으로 왕비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러기에 말이요, 만일 아무 일이 없다면 중전이 입궐한지가 벌써 육년, 아직도 아무러한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근심스러운 일이요.”

“듣자온즉 예전에 상감의 후대를 받게 되었던 장씨 궁인이 있다 하옵는데 그 궁인이 무엇이 잘못되어 추방 처분을 받아 사가로 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벌써 팔년이라 하오니, 그동안이면 그 궁인도 회과천선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하오니 대왕대비께옵서 너그러우신 처분으로 다시 불러들이시오면 곧 사속지망(嗣續之望)이 있을 것도 같사오니 바라옵건대 널리 통촉하시와 부르도록 하옵소서.”

“중전의 심덕은 매우 갸륵하오.사람이란 마음이 다른데 있겠소.누구보다도 장씨 궁인이 들어오는 일을 꺼려야 할 중전으로서 도리어 이와 같이 솔선해서 말을 하니 고마운 일이요.그러면 내 한번 고집을 세워서 불러들여 보겠소. 그러나 중전의 마음이 끝끝내 고마울는지.”

“황공하온 말씀이오나 소비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옵고 부디 소비의 소원이오니 장씨 궁인을 불러 들여

주시옵소서.” 왕비는 이런 말을 아뢰고 물러 나왔다.


때는 숙종 십이 년 병인 사월 어느 날,젊은 임금은 백화가 난만한 후원 뜰에서 잔치를 베풀고 대왕대비와 왕대비를 모시고 즐거운 하루의 봄날을 보내고 있었다.임금은 손수 술잔을 들어 대왕대비에게 올리었다.

그러나 대왕대비는 마음이 몹시 불쾌한 듯

“이런 놀음에도 모든 일에 근심이 없어야 즐겁지 않겠소.” 이런 말을 하였다.

“아니 할마마마께서 무슨 근심이 따로 계십니까?”

“나는 생전에 현손을 보지 못하고 죽을까 보아 그것이 큰 근심이요.

그전 중전도 이십이 되도록 아무 사속지망이 없는 채 떠나가고, 이번 중전도 들어온 지 벌써 육년인데도

도무지 아무 기색이 없으니 아마도 이대로 가다가는 사속지망이 염려될 것 같으니, 후궁이라도 미리 두어서 낭패 없도록 힘써 보는 것이 옳을 듯하오.”

“그러하오나 상감이 나이 아직 삼십이 못 된 이 때 이 일이 무슨 근심이옵니까? 미리 서둘를 것이야 없지

않을까 하옵니다.” 옆에서 왕대비가 이렇게 참견을 했다.

“그러나 이렇다고 저렇다고 세월만 덧없이 흘려 보내면 이 일을 후회하게 될 장본인이 아니겠소.”

“그러면 대왕대비마마께서는 어떠한 처분을 했으면 좋으신지요?”

“궁인을 새로 두는 일보다 이미 득죄하고 추방 처분을 받아서 나가 있는 장씨 궁인이 있지 않소.그 동안이 벌써 팔년이요.

그 사이면 저도 무던히 회과천선이 되었을 듯하니 너그러운 처분으로 그 궁인을 다시 불러들이면

첫째 젊은 궁인의 함원하는 것을 푸는 일이 성덕에 누가 되지 않을 것이요.

둘째는 이미 익히 사귀었던 궁인이니 새로이 들어오는 것보다 숙친한 맛도 있을 게 아니요. 그러한 즉 내 생각으로는 그 장씨 궁인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오.” 대왕대비가 이런 말을 하자, 왕대비는 임금과 왕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대왕대비의 의향이 그러하시면 소녀가 어찌 그 뜻을 막겠습니까. 그러면 내일이라도 날을 가려서 곧 장씨 궁인을 불러들이도록 분부를 내리시는 일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이렇게 말했다.

 

며칠 후,명성왕대비가 그의 사촌 오라비가 되는 김석주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왕대비는 김석주에게 이번 장씨 궁인을 불러들이게 된 형편을 말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김석주는 이 말을 듣더니 아연실색 어쩔 줄을 모르고 대답하였다.

“왕대비마마, 무슨 말씀이오니까? 새삼스럽게 장씨 궁인을 다시 불러들이신다니 이게 어찌된 일이오니까?”

“왜 그러시오? 그렇게까지 놀라실 게 무엇이요?” 김석주는 크게 뜬 두 눈을 더욱 크게 뜨면서

“왕대비마마, 아직까지 자세한 말씀을 올리지 못했으니 모르고 계시겠지만,장씨 궁인은 그 성품이 교만방자하고 무엄 무례했던 까닭에 승은하던 그 몸으로 궁중에서 추방 처분을 당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랬지요.”

“그러나 팔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개과천선은커녕 도리어 상감께 원망을 품으며 궁주을 험의하고,어쨌든지 다시 한번 들어와서 이제까지 품고 있던 그 원한을 풀려고 여러 해째 이를 갈고 기회를 기다리는데,

그 기회가 돌아오지 않자 드디어 엉뚱한 마음을 품게까지 되었습니다.”

“아니, 제가 엉뚱하면 어떻게 한다는 거요?”

“참으로 기막힌 말씀입니다. 지금 세상이 모두 서인의 천지가 되어서 남인이 항상 서인을 몰아내고 남인이 들어 서보려는 이때에, 이런 기맥을 알고서 남인 거두들을 비밀히 연락해 가지고 어떻게 해서라도 남인을 일으켜서 그 힘으로써 서로 도움이 되어보려는 엄청난 계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씨가 다시 들어와서 총애를 입고 무슨 말이든지 그 말을 들어주시는 날이면 남인은 즉시 다시 일어나서 어느 때이고 기회가 있는 대로 서인들에게 묵은 원수를 갚게 될 것입니다.”

왕대비는 이 말을 듣고 말이 없이 얼마를 앉아 있다가 난처한 빛으로

“그러나 대왕대비께서 주장하시는 일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소? 혹시 상감께서 이 일을 조정에 의논하시게 되면 그때에나 조정에서 이구동성으로 그 일은 안 됩니다 하고 간지해 아뢰는 도리밖에 없겠소.”

“그러나 이런 일까지 조정에 물으실 것 같지도 않사오니 여간 딱한 일이 아니옵니다. 하지만 조정에서도 의논해서 간지할 수 있는 대로는 간지할 것이오니 궁중에서도 장씨 궁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셔야 될 것이옵니다.” 김석주는 이쯤 아뢰고 물러나왔다.

그러나 왕대비가 어떻게 이 일을 막아낼까 근심을 하고 있을 때, 대왕대비는 정음(한글) 전교로써 장씨 궁인을 불러들일 뜻을 예조에 내리었다. 예조에서는 당황해서 즉시 이 전교를 임금에게 올리니 임금도 이미 마음먹고 있던 일이라 그대로 윤허를 하였다. 이때에 김석주가 이런 처분이 내리는 것을 보고 급히 예궐하여 아뢰었다.

"대왕대비께서 분부를 내리신 터이오니 이 일에 말을 아뢰옴도 황송합니다. 그러하오나 지각없는 생각에도 장씨 궁인에 득죄하고 일단 추방되어 여염으로 나간 지 이미 팔년이 지 난 이때에 다시 그를 불러들이신다는 것은 도리어 성덕에 누가 될 것이오니 널리 통촉하시와 이 분부는 곧 거두어 주시옵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듣던 임금은 물끄러미 김석주를 바라보다가

“나 역시 이런 일을 하기가 불안하오마는 대왕대비께서 주장하시는 일이니 이제는 하는 수없는 처지요.

그대로 거행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겠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장씨 궁인이 다시 궁중에 들어오더라도 궁중과 조정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으로 통촉하시옵니까?” “그건 미리 알 수 없는 일이 아니겠소?”

“그러면 어른을 섬기는 도리에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불러들이기는 하옵지마는 그 궁인을 조종하시는 일은 상감 말씀 여하에 달린 일이오니, 모든 일은 오직 상감의 처분만 믿고 있겠습니다.”

“경의 말이 모두 충의에서 나온 말임을 나도 짐작 못하는 바가 아니요. 이 일은 이쯤들 알고 물러가시오.”

임금은 이런 분부를 내리고 그대로 편전으로 사라졌다.


숙종 십이 년 오월 십육일,

장씨 궁인은 추방 처분을 받은 지 무려 팔년만에 다시 궁중으로 들어오게 되어 대왕대비께 나아가서 뵈었다.

장씨는 대왕대비를 뵙자 먼저 눈물이 두 눈에 핑 돌았다.

배례를 올리고 고개를 쳐드니 대비도 두 눈에 눈물이 어리었다.

“오래간만이로구나. 그동안 얼마나 노심초사로 지냈느냐.이제부터는 아무쪼록 잘해라.지금부터라도 너만 잘 하면 네 몸의 영귀는 다 찾아올 게다.”

대왕대비는 마치 시집살이를 하다가 오래간만에 친정에 가서 할머니를 대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 다음으로 나아간 곳이 왕대비의 처소였다.왕대비가 장씨를 대하는 표정은 너무도 차디찼다.먼저 장씨의 위아래를 훑어보고 경멸과 증오의 표정을 지었다.

그 다음은 왕비의 처소다.왕비는 말하자면 정적의 사이다.

마음이 이상스럽게 설레이면서 우선 궁금한 것이 그 얼굴빛이었다.

그 까닭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그 한 가지는 왕비의 얼굴이 얼마나 어여쁜가를 보자는 것이요,

다른 한 가지는 자기에게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로 움직여지는가를 보자는 것이다.

장씨의 마음에는 오히려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아직도 자기가 첫 번 왕비인 셈이요,

상대는 둘째 셋째로 들어온 사람이 아니냐, 다만 신분 때문에 버젓이 비(妃) 노릇을 못하고 이 아니꼬운 절을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역시 예법은 지켜야 하므로 절을 드리고 우선 그 궁금한 얼굴부터 살펴보았다.

임금보다는 여섯 해 아래이고,장씨보다는 일곱 해 아래, 이제 이십을 헤이는 왕비는 나이보다 훨씬 노숙해 보였으나 용색에는 어여쁜 티란 조금도 없었다. 여기에서

“저런 정도라면야.” 하는 그 어떤 자신을 속으로 뇌이면서 장씨가 그 얼굴을 살피니 왕비는 의외에도 웃는 낯으로

“들으니 일찍 승은했던 궁인으로 득죄 추방이 되었다기에 매우 가엾이 여겨서 여러 가지로 애를 써 위에 아뢰고 대비전에 사뢰어서 다시 부르시게 한 터이니 아무쪼록 다음 일을 조심하고 궁중 매사에 화목하게 지내도록 하여라.”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장씨는 의외로 자기를 대하는 폼이 너그러움을 보고

“황공 감사하옵니다.”용히 대답하고 물러 나와서 예전에 거처하던 응향각으로 돌아갔다.

응향각은 여덟 해 만에 옛 주인을 맞아들였다.

오월의 하루해는 유난히 길었다.지루한 하루해를 정각에서 그럭저럭 보내고 밤이 되자 응향각으로 임금이 찾아 들었다. 임금을 맞은 장씨는 그 앞에 엎드리어

“상감마마 황공하옵니다.”

이 말 한마디를 아뢰자마자 곧 두 눈에서 눈물이 솟구쳐 흐르고 흑흑 느껴 울었다.

상감은 장씨의 몸을 일으키고 그 얼굴의 눈물을 씻어주며 달랬다.

“울지 마라. 모두가 운수니라.” 임금의 말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장씨의 팔년간 쌓이고 쌓였던 야속함과 노여움은 좀체 끊이지 않았다.

“어서 그만 그쳐라.”

“상감마마, 어쩌면 그렇게도 야속하시단 말씀이옵니까? 아무리 미천한 몸이기로서니 사람의 마음이야 다를 데가 있겠습니까? 한 번 내어보내시고 그처럼도 모른 척하실 줄이야 소녀는 진정으로 생각지 못했나이다.”

장씨는 이제야 비로소 자기 흉금에 서려 있는 말을 털어 놓았다.

“그야 낸들 생각이 없었겠느냐마는 궁중 일이라는 것은 여염집 일과는 아주 판이하게 다르니 내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음을 그치고 좋은 낯으로 대하여 다오.”

장씨는 드디어 울음을 그치고 얼굴을 들어 임금을 바라보았다.

“어디 좀 옛 모양을 찾아보자.” 임금은 장씨의 포동포동한 손목을 잡아보았다.

장씨는 수줍은 웃음을 지으면서 머리를 숙여 외면했다.임금은 그 얼굴에서 옛날의 애정이 조수같이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너는 여덟 해나 지났어도 얼굴은 더 예뻐졌구나.”

“나이를 먹으니까 자연 늙어 뵈는 걸 어쩝니까?”

“아니다. 조금도 늙은 티가 없다.”

이 말을 듣는 장씨는 새 정신이 나는 듯 얼굴이 갑자기 명랑해지면서 쌩긋 웃었다.

 

이리하여 응향각은 다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새로 이어진 임금의 애정은 날이 갈수록 깊어갔다.

그 해가 지나가고 그 다음 해도 지나갔다.봄이 되고 여름이 시작되는데 장씨의 몸에는 이상한 반응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년이 하루같이 건강하던 장씨 몸이 쇠약해지고 구미를 잃어 식사를 못하고 자리에 누워서 일어나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임금은 슬그머니 여의를 불러들여서 진찰을 시키니 바로 장씨의 몸에는 태기가 있다는 진맥이 나왔다.

임금은 여의에게 단단히 일렀다.

“누구에게도 이 일은 발설치 말아라. 만일 발설되면 네가 죄를 당할 줄 알아라.”

“황송하옵니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여의는 물러가고 임금은 장씨를 위로해 주었다.

장씨는 또다시 가이없이 크나 큰 환희를 느꼈다.


장씨 궁인이 태기가 있게 된 것을 안 임금은 궁중의 그 누구에게도 발설치 못하게 신칙을 했으나 역시 숨기는 일처럼 남에게 드러나기 잘하는 것은 없었다.어느덧 장씨 궁인이 잉태했다는 소문은 궁중에 자자했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임금의 기쁜 마음은 비할 길이 없었다.

왕비 민씨도 이 말을 듣고 우선 임금에게 진하 전갈을 보내고 응향각에 상궁나인을 보내서 장씨에게 고마움을 이르는 것이었다.왕대비도 자기의 피도 뼈도 섞이지 않은 현손이었지만, 현손을 보게 되었다고 매우 기뻐했다.온 궁중이 떠들썩하는 통에 장씨가 어느덧 궁중에서 버젓하게 되자 임금은 드디어 대왕대비의 권유로써 장씨에게 소의라는 직첩을 내리게 하였다.장소의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듯하고 입지 않아도 등이 더운 듯했다.


일찍이 임금은 장소의에게 여염에 나가 있었을 때 어떻게 지내었나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장소의는 누구보다도 조사석과 동평군이 비호해 준 덕택으로 잔명을 보전해 왔다고 아뢰었다.

임금은 그것을 고맙게 여기고 동평군에게는 혜민제조를 임명하고 조사석에게는 예조참판을 임명했다가

얼마 후에 우의정 자리가 비게 되니 정승과 판서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약 조사석을 우의정에 앉혔다.

 

날은 가고 달이 차서 무진 시월 이십팔일에 장씨는 왕자를 낳았다.

임금은 오직 이 왕자만을 위해서 사는 보람을 느끼는 듯싶었다.

왕자가 두달이 되는 그 해 정월 초하루, 임금은 만조백관의 조하를 받게 되어 영의정 김수흥 이하 삼상,육경, 삼사,정부제학들이 모두 한 뜰에 모이게 되었다.임금은 신하들을 편전으로 불러들여서 술을 내렸다.

어사주가 한순배 지냈을까 할 때에 임금은 여러 신하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까지 왕자가 없어 국본이 위태하다가 새로 왕자를 낳았으니 하루 바삐 원자의 정호를 내리려 하는데 이 일에 그 누가 반대할 자가 있겠소마는 혹시라도 반대할 사람이 있다면 곧 이 자리에서 물러가 주오.”

너무도 돌발적인 명령이었다. 여러 재상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에 성급하고 혈기 있기로 유명한 이조판서 남용익이 썩 나서며 아뢰었다.

“이번 원자 정호는 아무리 생각한데도 시기가 너무 이른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왜냐하면 이제 전하 춘추 삼십 미만이온데 훗일 정궁에서 탄생이 없으란 법도 없고, 또 탄생할 가망이 없다하더라도 이제 생후 불과 백일의 어린 왕자로써 원자 정호한 바 전례가 없사오니 죄송한 말씀이오나 이 분부는 거두시옵소서.”

성급한 남용익은 할 말을 다하고 나가버리고 그 다음에 영의정 이하가 차례로 아뢰는 말이 모두 시기상조라 했다.

그러나 임금은 장소의의 간절한 소청으로 지금 미리 원자를 책봉하고, 백일이 되는 날에는 세자를 책봉하고, 한돌이 되면 동궁을 봉하고, 이리해서 혹시라도 동궁 자리를 다른 아기에게 빼앗길까 보아 은근히 초조해하는 그 마음을 쓰다듬어 주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터였다. 그런 때문에 신하들이 말리는 것으로 그 문제를 거두어들일 임금이 아니었다.

“국가 대사는 하루가 바쁘니 원자 정호 절차를 예조에 분부해서 거행케 하라.”

이런 전교를 내리고야 말았다.


이리하여 생후 백일 남짓해서 장소의의 소생은 원자 책봉이 되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다.왕자를 탄생해서 원자 정호가 되니 그 왕자의 어머니에게는 정이품의 희빈이란 직책이 내리고, 또 처소를 새로 정해 주니 이곳은 대조전에서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영휘당이었다.

영휘당에 자리를 옮긴 장희빈은 낮에는 아들 재미, 밤에는 임금의 귀염을 독차지했다.

이만하면 세상에 더 부러운 것이 없으련만, 그러나 장희빈에게는 아직도 불만이 있었다.그것은 왕비 민씨를 내쫓고 자기가 그 자리에 들어앉지 않는 이상엔 사라지지 않을 불만이었다. 

임금의 총애가 지극해지면 지극해질수록 장희빈은 임금을 보는 대로 공연히 짜증과 암상을 부렸다.

그리고 가지가지로 왕비의 흉이며 잘못을 고해 바쳤다.

왕비는 까닭 없이 자기를 미워하여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심복 상궁을 시켜서 왕자의 음식에 치독하려고 일을 했던 적도 있다고 왕비를 모함했다.

 임금은 장희빈의 그런 말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아양떠는 장희빈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서인의 거두 송시열은 조정의 원로요 사림의 중진이었으나 숙종 초년에 복제 문제로 상소했다가 극형에 처하게 된 것을 김석주의 힘으로 목숨을 보전했다가 경신대옥 때에 풀려서 고향으로 내려가 숨어 살고 있었던 까닭으로,원자 책봉 당시에는 모르고 있었다.

추후에야 이런 일을 알고 고향에서 상소를 올려 그 옳지 못한 이유를 들어 원자의 정호 절차를 거두어 주십사 하고 아뢰었다. 임금은

“원자를 봉한 이상에는 군신의 분의가 벌써 정해졌거늘 원자 책봉에 대하여 옳지 않다고 상소하였으니 이것은 필시 원자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것이며, 또한 내가 하는 일을 반대한 것이니 용서할 수 없다.”

하고 진노하여 친히 빈청에 제신들을 불러 송시열의 상소에 대하여 하문하였다.

이때에 남인들과 우부승지 이현기, 교리 남치훈등은 그 상소의 잘 못된 점을 상계하고 또한 전날에 송시열이 윤증과 분쟁하여 조야를 시끄럽게 한 일을 책논하였다.


임금은 송시열을 제주도로 귀양 보내는 한편 여기에 따라 그의 동조자들을 모조리 처형하니,영의정 김수흥은 파면이 되고 이사명,이익,김익훈,이순명,김만중 등도 유배를 당했다.

이것으로 서인파는 완전히 실각 당하고 남인파가 점점 세력을 뻗치기 시작했다.

우선 목래선,김덕원으로 하여금 좌우상을 삼고 목창명,권유 등을 승지로 삼았다.

다시 보사공신이었던 광성부원군 김만기와 청성부원군 김석주 등의 관직을 수탈하였다.

한번 벌어진 사태는 꼬리를 물고 확대되어 갔다.

세자 책봉과 서인파의 실각은 왕비 민씨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왕비 민씨는 본시 서인파의 거두 김석주가 천거하여 봉후한 관계로 서인과는 운명을 같이 해야 할 입장에

있었다.처음에는 민비가 장씨를 불러들여 후궁을 삼았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임금의 총애가 모조리 장희빈 한 몸으로 쏠리었다. 아무리 점잖고 덕이 있는 민비라 하지만 자연 질투심이 안 생길 수 없었다. 마음에 항상 거리낌이 있을 때는 그것이 아무리 숨기는 한이 있더라도 자연 나타나게 되는 것이니 민비의 질투심을 임금이 모를 리가 없었다.

어느 날 장희빈은 임금의 무릎에 매어달리며

“신첩을 이 궁에서 내쫓아 주세요. 이 궁에 있다가는 제 명에 죽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흑흑 느껴 울었다.

“왜 또 그러오?”

“중전께서 음식을 많이 보냈기에 개에게 시험을 하였는데 피를 토하고 죽었습니다.”하고 뜰에 축 늘어져서 죽어 있는 개를 가리켰다. 임금은 불문곡직하고 민비 폐출을 결심했다.

민비가 장씨를 다시 불러들인 장본인이면서 요새 와서는 그 시기하는 품을 보아 지금 장희빈의 한 말이 거짓되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험악하게 감돌던 공기는 드디어 폭발되고 말았으니,

그것은 기사년(숙종 십오 년) 사월 이십삼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날은 왕비의 탄신일이어서 예년과 같이 축연 절차가 거행되게 되었다.

이때는 장열 조대비, 즉 대왕대비의 승하 후 삼년상이 지나지 않은 때라 궁중 축연을 여러 해째 그치게 되었다가 오랜만에 곤순전 제조상궁의 주선으로 탄신 잔치를 올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왕비 민씨는 월여 전에 사친 아버지 민유중이 작고하여 상중에 있는 몸이라 굳이 사양하였지만 사가 친정 복상으로 궁중 절차를 궐하는 법이 없으므로 그대로 진찬을 드리게 되는 터였다.

공사 이중의 상복을 입은 몸으로 이날을 보내게 되는 왕비의 심정은 착잡하였다. 그러나 예년과 같이 여러 종척의 하표 진상과 진찬단자가 연속해서 들어와야 할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 모든 것은 한 장도 곤순전에 들어오지 않았다. 왕비는 각처에서 들어올 문안 단자가 한 장도 없는 일이 매우 의심스럽고 궁금하여 봉서나인에게 이 일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봉서나인도 모르는 일, 궁금한 마음으로 이날 하루를 지내고 저녁때가 되었다.

사친 오라버니 민진후가 잠깐 사후차로 왔다가 나갔다.이때 왕비는 민진후를 보고

“오늘은 문안 단자가 더러 들어올 줄 알았는데 아무 곳에서도 들어오지 않으니 이게 어찌된 일이요?”

하고 물었다. 민진후는 조용히 손짓을 하며, 오늘 여러 곳에서 들어온 문안단자와 진찬단자들은 모두 정원에서 받아서 상감의 분부로 땅을 파고 묻는다, 불에 태워버린다, 야단법석을 하고 있으니 이런 일을 아는 체도 마시라고 이르는 것이었다. 왕비는 이 말을 듣고 너무도 섭섭하고 야속하게 생각했다.

밤이 되자 임금은 중전의 탄신일이니 곤순전을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왕비는 임금을 맞아 대강 인사말을 올린 후에, 낮에 들은 바 섭섭한 말을 하였다.

“오늘은 여러 곳에서 문안단자가 들어올 줄 알았더니 한 곳도 온 데가 없으니 어찌된 일이니 저에게 대해서는 일가친척까지도 모두 괄세를 하는 모양이니 야속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은 무슨 때문인지 갑자기 변색하고 노염을 내며

“문안단자가 몇 장 들어왔었소.

중전은 서인을 끔찍이 여기는 때문에 모두가 서인 재상의 집에서 문안단자를 들여왔기에 아니 꼬아서 모두 불을 놓아 태워버렸소.나는 서인놈이라면 그 글장도 보기 싫소.” 이런 말을 하였다.

“그러기로 사친 족척들이 자주 만나지 못하고 서면으로 안부하는 것조차 막고 끊으실 게 무엇입니까?

너무 야속하지 않습니까?” 임금은 더욱 노기를 띠우며 소리쳤다.

“그렇게도 사친 족척이 못 잊을 지경이면 내일이라도 사가로 나가서 지내구료. 그러면 족척들도 마음대로 만날 수 있고 서인놈들도 마음대로 사귈 수 있을 테니까 여북 좋겠소.”

이때 왕비도 화가 발칵 아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 말씀은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이 사람에게 서인이 무슨 아랑곳이 있다고 그 분풀이를 저에게 펴시려 합니까? 내쫓으려면 그냥 내쫓으실 일이지 사친이 서인이라 해서 이 사람에게도 서인 대접을 할 필요야 없지 않습니까? 희빈은 남인이 뒷배를 보아준다고 합디마다는 이 사람은 서인과 결탁한 일이 없습니다.

이 자리를 장희빈에게 내어주시랴 한다는 말씀은 미리부터 들은 바이오니 내일이라도 나가라 하오면 분부대로 나가겠습니다.” 왕비는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까지 하였다.

“그렇겠소. 나는 천고에 없는 폭군이고 중전은 세상에 드문 현비이니 어떻게 그대로 궁중에 머물러 있을 수 있겠소. 내일은 사친의 집으로 나가시오.” 임금은 이 말을 남긴 채 노기충천해서 돌아갔다.

 

왕비는 이날 밤, 밤이 새도록 슬피 울고 날을 밝혔다. 날이 밝자 임금은 입직 승지에게 분부하여 곧 전교로써

“왕비 민씨는 연래에 너무 실덕해서 궁중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역대 종사가 욕될 것임에 오늘 그를 폐위

서인해서 사친의 집으로 내보내는 바이니 만조백관들은 딴말을 말지어다. 이런 뜻을 정원에 내리었다.

정원에서는 예조판서가 먼저 극간했다. 임금은 정원에 모인 여러 재상을 둘러보고 이렇게 또 말을 했다.

“소위 중전이 겉으로는 어진 체하나 속으로는 투기와 간악이 허다하여 최근에는 그 버릇이 더욱 심해서 안으로는 가법을 어그러지게 하고, 밖으로는 왕실의 체통을 보전치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요녀(妖女)와 내시놈들을 부동해서 아직 강보에 싸인 왕자까지 없애려고 갖은 간계를 다하고 있으니 이때에 궁중을 깨끗이 숙청하지 않으면 안 되겠으므로 마침내 왕비를 폐위하게 이르렀으니 만조백관들은 그 누구도 이 일에 대해서 말리는 말을 내지 마오.” 이런 엄중한 분부를 내리었다.

그러나 재상들 중에 지각이 있는 늙은이들은 모두 머리를 조아려 간하고

그 중에도 좌승지 이기만,수찬 이만원,이후정,강선,이상진 같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직간하였으나 임금은 조금도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망녕한 늙은이들은 나가서 누워있게 하라.” 라고 말할 뿐 그대로 편전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날 낮에는 각조 대신들과 이품 이상의 조관들이 빈청에 모여 정청하고 삼사에서는 합문밖에 엎드리어 전교의 환수를 청했으나 임금은 모두 물리쳐 버렸다.

정원에서 고간한 것을 물리치고 안으로 들어간 임금은 그날 저녁으로 왕비의 직첩을 거두고 폐위 서인해서 소보교에 태워, 두어 시녀만 따르게 하여 안국동 사친의 집으로 내보냈다. 이때 길가에서 이 소보교가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된 여러 사람들은 그 누구나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태학의 유생들이 수십 명이나 길가에 엎드려서 소보교를 우러러 통곡했다. 백성들의 반응이 이와 같은 것을 보게 되자 남인측에서도 지각 있는 이들은 슬그머니 사직하고 숨어 버리는 자도 생겨났다.

 

한편 전직 구관 즉, 서인 측 구관들 중에 아직 사직만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차차 여론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전임 형조판서 오두인은 숙종의 매부 해창위 오태주의 부친이요, 인조조 이후 사대를 내리섬긴 원로재상이었는데 이 소문을 듣고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하리라.” 하면서 동지들을 모아 이 일을 바로잡겠다고 열렬히 부르짖었다.

그는 전 참판 이세화,유헌,전 응교 박태보 등 팔십 여명을 모아가지고 여기에 대한 일을 주야로 의논했다.

 

마침내 오두인은 박태보에게 상소문을 짓게 하고 두 사람의 이름으로 그 소문을 올렸다.

<중궁은 일국의 국모로서 입궐하신지 구년에 갸륵한 성덕이 조야에 자자할 뿐 아무런 허물이 없으신 터에 갑자기 그 죄상을 말씀도 않으시고 폐출하시니 신 등은 이 일로 성상께서 성덕을 잃으실까 두려워하나이다. 바라옵건대 오늘이라도 번의하시와 곧 국모께 복작 처분을 내리시옵소서. 듣건대 이번에 희빈 장씨는 왕자를 탄생한 것을 내세우며, 전날에 왕비의 대은을 입은 것을 잊어버리고 가지가지로 왕비를 참소하고 한편으로는 서인으로 지목 받는 재상들을 모함하여 드디어 차례로 조정과 궁중에서 내쫓으니, 자고로 후궁의 침석지간의 참소로서 임금이 나라를 그르치지 아니한 예가 없는 즉, 신들은 이 일을 너무도 통한이 여기어서 주상의 마음에 하루 바삐 깨달으심이 일어나기를 천만 바라옵니다.>


이 상소문이 임금에게 전해지 것은 그날 저녁의 일이다.

임금은 상소문 소두에 적힌 두 사람의 이름과 또 연명장에 적은 팔십 여명의 성명만 보고 상소 본문은 살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날 밤 임금은 장희빈 처소로 가서 저녁에 올라온 상소문 얘기를 했다.


그러자 장희빈은 이렇게 말했다.

“오두인은 해창위의 부친으로 나라의 사돈인데, 이런 일로 팔십 여명을 동원해서 상소한 터이니 그 일이 궁금하지 않아요? 그 글발이 어떤 것인지 살펴서 상당한 조처를 하셔야지 그렇게 내버려 두면 다음날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강화도 교동 밖에는 가실 곳이 없을 터이니 참 기막힌 처신이시오.”

한편으로는 그 글을 보게 하고 한편으로는 분기를 돋구어 주었다.


임금은 장희빈의 말을 듣고야 비로소 내시를 시켜서 상소문을 가져오라하여 장희빈과 같이 내용을 살피고는 그야말로 노기가 충천해졌다. 임금은 그길로 정원으로 나가

“그 상소한 놈들을 모조리 친국할 터이니 지체 말고 즉각 인정문에 형구를 차리고 오두인 이하 모두 잡아들이도록 하여라.”

이리하여 응교 박태보,판서 오두인,참판 이세화 등 팔십여명은 모두 죄를 입고 혹은 형살,혹은 귀양 혹은 파직이 되었다.

 

또한 전일 세자 책봉을 간하고 상소하다가 제주도에 정배 당한 송시열,이사명,김수흥 등에게도 사약을 내렸다. 그리고 민씨 일족 중의 유관자도 모두 파직을 시키고, 심지어 지방 관속까지도 민씨와 관계만 있으면

파직을 시켜버렸다.


이처럼 민씨 일족과 그 일파가 전멸되는 반면에 장희빈은 승차하여 왕비로 책립되고 그 부친 장현에게는 옥산부원군을 봉하고, 그 모친 윤씨에게는 파평부부인을 봉하고, 주색잡기와 시정 무뢰배의 출신인 그 오라비 장희재는 척신으로 되어 버젓이 어영대장의 인수를 찼다.


장비는 이제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고 거리낄 것이 없었다. 비록 상감이라 하나 그도 장비의 말이면 모두가 엿가래 휘어지듯 녹신녹신해졌다. 그리고 임금은 오직 헛 이름만 가지고 있는데 불과했다.

만조백관이 장비의 심복 아닌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이제 궁중에는 다른 후비 하나도 없이 오직 장비만이 독장을 부리는 판이다.

이 때 대궐을 무상출입하며 장비 처소에까지 드나드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는 종친으로 예전부터 장비와

친숙했던 동평군이었다.

동평군은 장비가 궁중에서 쫓겨나 있을 때 크게 보살펴 주었고, 또 장씨 궁인이 장비로 되기까지의 장비의 공신이기 때문에 특별히 궁중을 무상 출입시켜 궁중을 정찰하는 책임을 내맡겼던 것이다.

이리하여 동평군은 그전 낙척 당시와 마찬가지로 궁중의 기밀을 아뢴다고 임금이 있건 없건 장비의 침소에까지 출입을 했다.이렇게 궁중의 정찰을 동평군이 하는 대신에 대궐 밖 모든 위험인물들의 정찰은 장희재가 부랑배들을 부하고 삼아서 정찰을 했다.

어느 날 장희재가 큰 길을 지나며 듣자니까 아이들이 노래를 하는데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일세.” 하는 구절이 있었다.


장희재가 가만히 들으니까 다른 뜻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 그 아이를 불러가지고 그 소리를 누가 가르쳐 주더냐고 물으니 아버지가 가르쳐 준 것이라고 대답한다. 너희 집이 어디냐고 하니까 저기 저 집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장희재는 곧 돌아와서 사령들을 불러 그 아이의 잡을 일러주고 아이의 아버지를 잡아오라 했다.

사령들은 그 아이의 아버지를 잡아왔다. 장희재가 아이의 아버지를 보고

“네가 아이에게 이런 동요를 가르친 뜻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니 그 사람은

“아이들이 지껄이는 것을 가지고 무얼 그러십니까?” 라고 대답했다.

“이놈, 뭐라고? 너는 민씨편이 되는 서인인 까닭에 이런 동요를 만들어서 인심을 흔드는 것이 아니냐?”

호령과 아울러서 어떻게나 지독한 형벌을 가했던지 그 사나이는 그만 형벌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이 소문이 세상에 퍼지자,장희재의 의세남권을 미워하고 민비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은 일부러 아이들에게 돈까지 주어가며 이 노래를 가르쳐서 온 장안에 이 동요가 퍼지게 되었다.

마침내 이 동요 소리는 장비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장비는 이 동요소리를 듣고 마음이 점점 불안해져서 민비를 영원히 치워버릴 생각까지 갖기에 이르렀다. 장비는 폐비 민씨를 또 온갖 소리로 모함하기 시작했다. 왕자가 혹 감기가 들고 머리가 더워도

“이건 필시 민녀(閔女)의 장난으로 이렇게 되는 일입니다.”

하고 민비를 씹고 욕하기를 되풀이하면서 민녀에게 사약을 내리라고 졸라대었다.

그러나 임금은 이 말을 듣지 않았다. 비록 일시의 분기로 중전을 내쫓긴 했으나 마음에는 종종 불안한 생각이 들고 또 장씨의 교만방자와 간특함을 차차 알게 된 까닭이었다. 임금이 차츰 자기의 말을 듣지 않게 되자 장비는 젖먹이던 왕자를 방바닥에 내던지며

“난 모르겠소. 이 자식이 민녀의 저주하는 방예에 걸려서 죽든 살든 알 게 뭐예요. 그리고 폐비 민녀가 그렇게도 소중하거든 오늘이라도 다시 불러들이시구려.”

이렇게 포달을 부리는 것이었다.이번에는 임금도 화가 터져 나왔다.

“너도 인간의 양심을 가졌으면 생각을 해보아라. 왕비를 내쫓고 너를 왕비 자리에 올려 앉힌 것은 오직 이 왕자 하나 때문에 그렇게 한 일인데 너는 무슨 그리 큰 원수가 된다고 폐출된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으려고 하느냐? 에잇, 천하에 악독한 것!”

이렇게 호령하자 그제야 장비도 좀 겁이 나는 듯 금방 간특한 말투로

“그러면 모든 것은 제가 잘못했으니 용서해 주시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하며 애교를 띤 웃음으로 임금의 노여움을 풀어놓는 것이었다.

 

최근에 와서 임금은 차츰 장비에게 홀렸던 정신이 다시 깨어나기 시작하는 듯했다.

이리하여 임금의 마음에는 새로운 우울이 깃들기 시작했다.

밤에 잠이 깨면 장차 궁중 일을 어떻게 조처할 것인가, 장비를 그대로 둘 것인가, 왕자는 어떻게 길러야 할 것인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번민을 하다가는 곧 일어나서 무감 두엇을 불러 뒤따르게 하고 민간 여염집들창 밑으로 또는 술파는 집으로 미행의 발길을 떼어놓는 것이 항례처럼 되어버렸다.


북촌 어느 여염집 들창 밑에서 새오나오는 이야기의 한 토막

“민중전은 보기 드문 어진 어른이신데 그 요악 간특한 이의 모함을 받아서 오늘날 저 지경이 되었으니 너무나 가엾고 불쌍하다. 어느 때나 상감께서 마음을 돌리시게 될지.”

 

어느 선술집에서 들려나오는 몇몇 늙은이의 대화

“암, 그렇고 말고 여부가 있나. 박응교는 참으로 충신일세. 그 분 같은 이가 몇 사람만 된다면 그래도 세상이 이 지경은 안 될 걸세. 장희재 그놈이 세도를 부리는 후부터 우리네들의 곤란이란 참으로 말할 수 없게 되었거든.” “그뿐인가? 장희재의 행악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천고에 듣지를 못한 일일세. 그 자는 재물과 예쁜 계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인간이란 말일세.”

“암, 그것도 세도를 하게 되니까 금관자 옥관자들이 쫓아다니면서도 아첨하는 꼴이란 참으로 구역이 나서 못 보겠데. 그런 작자들이 더 더럽지. 예전에 장희재가 시정으로 돌아다닐 때의 친구들이라면 몰라도 버젓한 양반놈들이 장희재의 밑을 씻기러 다니면서 행악을 같이하니 그 놈들이야말로 장희재 이상으로 아니꼽고 더러운 인간이란 말일세.”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들을 듣게 된 임금은 마침내

“백성들의 소리는 곧 하늘의 소리다.” 이렇게 깨달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임금은 다시 밤마다 궁중을 순회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한곳을 지나가노라니 밤이 매우 깊었는데 창에 등불이 비치고 사람의 말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왔다. 의심스러워서 가까이 가서 엿들으니 안으로부터는

“폐비 민씨는 이 화살 맞은 자리마다 악창이 나게 해 주십소서.”

이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도 괴이해서 창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벽에는 민중전의 화상을 그려 붙이고 무당들이 모여서 그 화상을 향해 활을 쏘고 있었으며 또 그 옆에서는 장님이 앉아서 경문을 외어가며 무슨 축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임금은 곧 뒤에 따르던 무감을 불러 즉시 그 무당들과 소경들을 모조리 묶게 하고 무슨 일들이냐고 엄하게 물었다. 그러자 그 무당과 소경들은

“그저 죽을죄를 저질렀습니다. 소인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오직 중전마마의 분부로 거행만 할 뿐입니다.

이렇게 대답했다.

그 후에도 임금은 밤이 깊어서 궁중 순회를 계속하였다. 어느 날 역시 궁벽 한 곳에서 등불이 새어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그리고 가까이 가 보았다. 불은 켜져 있으나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궁금한 마음으로 그 창 앞으로 가까이 가서 엿보니 그 안에는 이상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벽에는 옷 한 벌을 걸어놓고 그 앞에는 여러 가지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놓은 상을 놓고 어떤 젊은 무수리 하나가 엎드려서 울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임금은 드디어 기침을 한번 크게 하고 방문을 두드렸다. 무수리는 곧 문을 열었다. 임금은 안으로 들어서서

“네 지금 야심한데 등불을 켜놓고 또 이 음식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차려놓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냐? 어서 대답해 보아라.” 하는 분부에 그 무수리는

“죽여 주십소서.” 하고 임금 앞에 엎드렸다.

“죽이라고 그저 그러면 알 수 없으니 바른 대로 아뢰어라.”

그제야 무수리는 울면서 벽에 걸린 화상을 가리키며

“그저 죽여주옵소서. 오늘이 폐출 된 중전마마의 탄신이옵니다. 마마를 잊지 못하여.”

하고는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싸고 흑흑 느껴 울었다.

임금은 아무 말 없이 그 화상을 바라보더니

“그렇구나. 내가 잊고 있었다. 오늘이 중궁의 탄신 날. 국모로 있을 때 같으면 온 장안이 즐겨할 날이거늘.”

임금의 가슴은 이상하게도 설렜다. 얼마 전만 해도 이런 계집은 당장에 중죄에 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를 책망은커녕 오히려 회안의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닌가.


임금은 얼마동안 그 방에 머물러서 무수리에게 술을 따르라 하고 울적한 마음을 풀려고 했다.

한잔, 두잔, 잔을 거듭함에 따라 임금은 어느덧 취해서 그대로 그 자리에 누워버렸다. 무수리는 임금이 몸을 가누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자 벌써 그 뜻을 알아차리고 자리를 펴놓고 조심스러이 물러나려 하는데

“그래 나더러 이곳에 혼자 있으란 말이냐?” 하고는 무수리의 손을 잡아끌었다.

무수리는 너무나 황송하고 무서웠다.

첫째로 지존의 몸으로서, 나인도 아니고 나인의 비복인 무수리의 신분을 가진 자기에게 이런 손길을 내주는 것이 황공했고

둘째로는 간악한 장비가 이 일을 알면 장차 자기에게 어떤 악형이 떨어질지 모르는 때문에 공포심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아니될 일이옵니다.” 하고 거절을 해도 듣지 않는 임금에게는 어쩔 수가 없었다.

무수리는 그날 밤을 임금과 같이 지냈다. 이 무수리의 성은 최씨로서 아직 출가하지도 않았으며 그 자색은 그래도 열에 뛰어나는 미모를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한번 인연이 맺어진 후에는 임금은 때때로 최씨를 찾았다. 세상에서 떠들어대는 장비와 장희재 일당들의 탐권 행악을 비난하는 소리는 임금의 귀를 아프게 할 지경이 되었다. 임금은 항상 근심으로 지내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이면 근심을 잊기 위해서 상궁 나인들을 시켜 고담책을 읽게 하여 들었다.

세상에 흩어져 있는 고대 소설이란 소설을 모조리 대궐에서 모아들이게 되자, 이 기회를 타서 임금의 마음을 한번 돌려보겠다는 결심으로써 김춘택이란 사람은 사씨남정기란 소설을 한역해서 마치 고대 소설인양 일부러 빛이 바랜 종이에 옮겨 써가지고 궁중으로 들여보냈다.

김춘택은 그전 왕비 인경왕후의 부친 김만기의 아들로서 별호가 북헌이란 문장가였는데, 임금의 마음을 감동시켜 보겠다고 이런 계획적인 일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러던 어느 날 밤의 일이다. 장비의 심복 조궁인이 장비 침방으로 들어오더니 장비에게 귓속말로 무엇이라 속삭였다. 궁인의 말을 듣고 있던 장비의 얼굴빛은 당장 변했다.

“그래 네가 그 일을 확실히 아느냐?”

“아, 알고 말고가 있습니까? 어느 앞이라 사실 없는 말을 아뢰겠습니까?”

“그래? 그러면 어서 자세히 말해 보아라.”

“그런데 그 계집은 나인도 아니요, 무수리라 하오니 너무도 해괴합니다.”

“뭐? 무수리?” “예, 예전에 폐비 민씨 처소에서 거행하던 무수리라 하옵니다.”

“참 기막힌 일이다. 그래 일국의 지존으로 하필 비자년 무수리를 가까이 해서 또 그중에도 아이를 뱄다니

이게 웬 말이냐? 내일 그년을 불러들여서 특별한 조처를 해야겠다.”

장비는 노기충천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날 밤 장비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러 번이나 이를 갈며 날을 밝혔다. 이년을 불러들이면 어떻게 해서 감쪽같이 죽여 없앨 것인가, 또 뱃속에는 임금의 씨가 벌써 들어 있다니 이것을 죽이고 보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까, 가지가지로 독살풀이를 해볼 계교를 생각하다가 밤을 밝혔다.

아침 수라 절차가 지나고, 대강 다른 절차도 지난 뒤라 벌써 낮이 가까웠다. 장비는 드디어 측근자를 시켜서 조용히 그 무수리를 불러들여 뒤뜰에 세워놓았다. 무수리는 무슨 처분이 내릴지 몰라서 덜덜 떨고 서 있는데 장비의 무수리를 쏘아 보는 안광은 불이라도 일어날 듯이 날카로웠다.

“네가 예전 폐비 민씨 처소에서 거행하던 무수리라 하니 그러하냐?”

“예, 황공하옵니다.”

“무수리의 신분으로 상감마마를 뫼셨다 하니 그렇고도 아무런 일이 없을 줄 아는가?”

“......”

“어째 대답이 없느냐?”

장비의 독살스레 외치는 소리는 깁을 찢는 듯이 날카로웠다.

“황공하옵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런 일은 애매하다는 말이냐? 어디 네 배를 내어뵈어라. 억울하면 억울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게 해줄 게다. 저 계집을 잡아 옷을 풀어보아라. 벌써 만삭이 돼 있을 게다.”

장비의 호령 소리에 모시고 섰던 나인들은 당황하면서도 차마 손을 대지 못했다.

“너희들도 그러기냐? 냉큼 벗기지 못할까?”

그때야 여러 궁인들이 내려가서 최무수리의 웃옷을 벗기었다. 최씨는 속옷만을 입은 채 어찌할 바를 몰라

울고 있었다.

“저 계집의 속옷까지 벗기어라.”

호령이 다시 내렸으나 나인들은 차마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러나 장비의 표독스런 호령에 최무수리는 나체가

되어 앉지도 서지도 못해서 쩔쩔 매며 돌아서서 울고 있었다.

“너는 그래도 변명할 길이 있느냐? 대관절 너는 무슨 목숨을 가졌기에 천한 몸으로서 감히 상감을 가까이 모셔서 왕자까지 배고 살기를 바랐더냐?”

“황공하옵니다. 제가 그러했던 것이 아니오라 상감마마께서 저의 처소로 오신 것을 피하지 못한 죄가 있을 뿐이옵니다.”무수리는 울음 섞인 말로 이렇게 대답했다.

“이 천하에 앙큼한 년! 네가 가만히 있는 것을 상감께서 건드렸더냐? 무슨 뜻으로 궁중에서 요망스럽게 폐서인된 악독한 계집 민가의 생일을 지낸다고 음식을 차려놓고 했더란 말이냐? 네가 앙큼한 마음에 평소에 버정대던 무감놈을 꾀어 그 곳으로 상감의 미행길을 인도하게 했던 일이 아니냐? 그러고도 모든 일을 상감께만 밀어버릴 작정이냐?”

“그 말씀은 너무 애매하옵니다.”

“뭐 애매하다고? 네 저년을 기둥에 단단히 묶어 놓아라!”

장비가 발을 구르고 요망을 떠는 통에 화관(花冠)이 떨어지고 첩지가 삐뚤어졌다.

암상이 났던 판이라 장비는 그 화관을 떼어내서 방구석에 내동댕이치고 마루 아래로 뛰어 내려가서 준비해 놓았던 싸리비를 뽑아들고

“흥! 네가 요만치 안팎으로 절색이니 무수리 아니라 아무것이기로 상감의 마음을 끌지 않을 수가 있느냐?”

이런 소리를 하다가는 싸리채를 들어서 무수리의 하복부와 넓적다리를 훔쳐때리며 호통을 한다.

“네 이년, 바로 대지 못하겠느냐?

번연히 어느 무감놈과 정을 통해서 자식을 배고 못된 꾀로써 무감놈을 시켜 미행을 해오게 해서 상감을 농락한 다음에 왕자를 잉태했다고 하는 것이니, 이러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그러나 항복하면 아무 일이 없을 것이다. 어느 무감놈과 정을 통했는지 바로 일러라.”

너무도 억울한 호령이었다. 무수리는 별안간 하복부를 무수히 회초리에 얻어맞고 신음소리를 내며

“그 말씀은 너무나 억울합니다.”

“네 이년! 그래도 억울하다고 하느냐? 어서 바른대로 대어라. 그놈이 어느 놈이냐?”

장비는 또 새로 싸리비를 뽑아내서 두세 개를 합쳐가지고 있다가 말이 끝나자마자 무수히 전신을 휘갈기니 무수리의 몸에는 손가락 굵기 만한 기다란 선이 시뻘겋게 일어났다. 무수리가 악을 쓰자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무수리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너 그래 자백하지 못할까?”

장비는 또 다시 싸리채를 뽑아들고 전신에 잔채질을 했다. 아까 맞아서 부르텄던 자국이 터져서 피가 흘렀다. 무수리의 몸은 어느 한곳 성한 곳이 없게 되었다.

“참, 고년 독물 중에도 무서운 독물이다.

이제는 낙형을 할 수밖에 없다. 백탄을 피워놓은 화로와 인두를 어서 가져오너라.”

화로와 인두는 미리 준비했던 듯이 즉시 가져왔다.

“네 이년, 그래도 꿈쩍 않고 자백을 안할 모양이구나. 어디 불찜질 맛을 한번 보아라.”

장비는 새빨간 백탄 숯불 속에서 인두를 꺼내들더니 거침없이 무수리의 하체로 가져다가 지지는 것이다.

“이년 네가 상감을 모시던 때에도 이만치는 좋았으리라. 너 이 맛이 얼마나 좋은가 맛보아라.”

장비는 오히려 미소까지 지어가며 이 짓을 하는데 무수리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얼굴을 찡그리며 이를 바드득 갈았다. 누린내가 끼쳐 장비의 코로 들어가고 살이 타는 연기가 인두 밑에서 보얗게 일어났다. 모시고 있던 나인들도 모두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고는 코를 막았다.

“너, 그래도 뱃속의 아이가 왕자라고 엉뚱한 말을 할까? 어서 그 아이의 아비놈을 자백하여라.”

장비는 또 얼러대면서 다른 인두를 다시 빼어드는 것이었다. 이번 인두는 아주 빨갛게 달구어져서 나무라도 당장 탈 지경이었다. 이 인두를 들고 악착스럽게 아귀같이 무수리를 바라보는데 돌연 내전 저편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정비는 이 소리에 귀가 쫑긋해서 새빨갛게 달구어진 인두를 도로 화로에 꽂고 나인을 돌아보며 조용히 일렀다.

“너 급히 나가 동정을 살펴보아라.” 나인이 재빨리 뛰어나가더니 곧 되돌아 와서 황황히 아뢴다.

“이를 어쩝니까. 상감마마께서 듭신답니다.”

이 말을 듣던 장비는 금방 눈이 휘둥그레지며 두 눈을 갈팡질팡 사면으로 돌리다가 저편 추녀 끝에 낙숫물 받느라고 세워놓은 큰 독을 보았다.

“얘, 이 계집을 번쩍 들어다가 저 담 밑에 앉혀놓고 이 독을 들씌워 놓아라.”

나인들은 황황히 묶은 것을 끄르며 입을 틀어막은 것을 꺼내며 해서 옷에 피를 묻힐세라 조심조심 사지를 드는데 잘 들지를 못하니까 장비가 겁과 암상이 일시에 일어나서 곧 달려들어 계집을 잡아끌다가 잘못하여 옷에 피를 묻혔다. 그러나 장비는 당황 중에 그것을 알지 못했다.

이때 조궁인이 옆에서

“중전마마께옵서는 화관을 쓰소서.”

말하니까 그제야 화관을 벗어 동댕이친 생각이 나서 얼른 방으로 들어가 화관을 들쓰며 앞에 흐트러진 것을 치우라 하고 편전으로 나가려 하는데, 벌써 임금은 내전 툇마루까지 나와 서서 눈을 좌우로 돌리며 무엇을 살피는 기색이었다.장비는 너무나 황황망조 어쩔 줄을 모르면서 그래도 가능한 한 꾀을 내어서 간특한 애교의 웃음으로 임금을 맞았다.

“에그, 오늘은 별일이십니다그려. 웬일이십니까?”

그러나 임금은 그 말에는 대답도 않고 여전히 담밑이며 뜰이며 살펴보는 것이었다.

장비는 간이 콩알만 해졌다. 필시 어떤 년이 임금에게 고급(告急)을 해서 들어온 모양인데 이 일이 탄로 나면 이 노릇을 어쩌는가 애가 바작바작 탔다. 이러면서 언뜻 보니 퇴 앞을 치웠다는 꼴이 핏방울이 두어 곳 떨어진 채 있으므로 이것이 임금의 눈에 띌까봐 임금 앞을 가려서서 무엇이라 말을 붙이려 했다.

이 때 임금의 눈에는 장비의 옷고름에 붉은 피가 밤톨만치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장비가 뭐라고 입을 열려고 할 때 임금은 옆에 있는 무관을 돌아보고

“네 지금 내려가서 저 담 밑에 놓인 저 독을 치워보아라.” 이런 말을 하며 장비의 낯빛을 살폈다.

아니나 다르랴, 이 말이 떨어지자 장비의 얼굴은 순간 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장비는 곧 태연한 태도로 돌아가며 차디 찬 웃음을 입가에 지으면서

“원, 상감께서는 별 것을 다 시키십니다. 그 독은 왜 별안간 치우라 하십니까?”

그러나 임금은 이 말은 들은 척도 아니하고 또 한번 재촉을 하였다.

“네 머뭇거리지 말고 곧 거행하지 못할까?”

분부가 다시 떨어지자 머뭇거리던 무감이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할 때다.

“글쎄, 무엇 때문에 독을 옮기시려 하십니까. 제발 그대로 두십시오.”

장비의 태도는 극도로 당황해 하는 눈치가 보였다.

“글쎄 무엇 때문에 그 독은 기어이 옮겨놓지 못하게 하오. 알 수 없는 일이구려.제발 그런 참견은 말아 주오.” 이렇게 대답하며 무감을 재촉해서

“그, 머뭇거릴 게 무어냐. 냉큼 가서 치워라.” 무감은 드디어 그 담 밑으로 가서 독을 치웠다.

“앗! 이게 웬일이냐?”

독을 누이자 그 밑에는 한 젊은 계집이 몸에 실오리 하나 감지 아니한 채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져 있지 아니한가. 그 계집은 정신을 잃고 죽은 듯이 보였다.

“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셈이냐?”

임금은 나인을 돌아보고 물었으나 모두 얼굴빛이 빨개져서 대답을 못하고 있다.

무감은 나체가 된 시체가 나오자 놀라우면서도 역시 남자라 미안쩍어서 그대로 외면하며 서있는데 임금은 무감을 보고

“너는 그만 나가거라. 나가다가 대조전에 지밀상궁이 있을 터이니 곧 들어오라 해라.”

무감은 말없이 국궁하고 물러갔다.

이때 임금이 그 시체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의심 없는 최무수리가 분명했다.

임금은 더욱 놀라왔다. 장비를 돌아보고 지극히 조용한 말씨로 물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요?”

장비는 오히려 웃는 낯으로

“저 계집이 무수리온데 어느 무감과 간통해서 자식을 배고 앙큼스럽게 상감을 모셔서 왕자를 잉태했다 하며 상감마마를 욕되게 하였기에 그 죄를 다스렸던 것입니다.”

 “......”

임금은 대답 없이 한동안 의아와 분노의 눈초리로 장비를 쏘아보았다.

“왜 이리 쏘아 보셔요? 이는 도리어 상감 위신이 손상되십니다. 그대로 나가주십시오.”

분명히 궁중 비자를 가까이 했다는 것을 조소하는 뜻으로 경멸의 눈초리를 던지는 것에 틀림없었다.

너무나 방자한 행동이었다.

“그런 죄에는 저런 형벌을 해야 하는 법이요?”

“왜 잘못된 일이 있습니까?” 여전히 비웃는 말소리였다. 임금은 그만 격분했다.

“에잇! 악독한 계집, 썩 물러가지 못할까!” 임금은 드디어 두 눈을 부릅뜨고 발을 굴렸다.

이때에야 장비는 주춤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했다.

“아니 왜 이러세요? 저 계집이 무감과 간통했던 사실이 있고 증거가 있어도 그렇게 싸고도시겠어요?

“뭐라고?

“참 딱한 노릇입니다. 저 계집을 가까이 하셨다고 이다지도 저 계집을 옹하시지마는 너무나 딱합니다.

체면을 생각하십시오. 상감의 몸으로서 그래 겨우 궁 비자 저 계집을.”

“무슨 딴 말인가? 냉큼 물러나지 못할까?” 임금은 또 발을 굴러 호령했다.

그러나 장비는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그대로 서서 임금을 쏘아보고 있다. 이때 지밀상궁이 들어왔다.

“무슨 분부이십니까?”

“저 담 밑을 보오.”

“앗! 저게 웬일이옵니까? 누구이옵니까?”

늙은 상궁은 임금을 바라보고 또 장비를 바라보고 눈치를 살핀다.

“그 말은 나중에 하고 급히 나아가 옷 한 벌을 들여다 입히고 누구에게 일러서 저 계집을 급히 구하도록

하오. 우선 상궁의 처소로 데려다가 조섭을 시키게 해야겠소.”

늙은 상궁은 맨발로 뛰어 내려가서 자기가 입고 있던 치마를 벗어 그 알몸을 덮어 주고 곧 황황히 나가서

나인 몇 사람을 불러가지고 들어왔다.

임금은 상궁을 보고

“아직 숨기가 붙었나 만져보오.”

상궁은 자세히 맥과 가슴을 짚어보고는

“아직 따뜻한 기운이 있으니 소생할 가망이 있을 것 같습니다.” 대답하고 나인에게 업혀 가지고 자기 처소로 돌아가자 임금은 격노한 빛으로 한번 훑어보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다행히 최씨는 그 후 구호를 받아서 소생이 되었다.

임금은 최씨에게 소원이라는 직첩을 내리고 그 다음에는 금위와 여관을 수십 명씩 교대해 가면서 최소원을 극진히 보호케 하였다.


이런 지 한달이 지난 숙종 이십년 구월 십삼일 새벽에 최소원은 드디어 옥동자를 낳으니 이때 임금의 나이는 삼십사 세였다.

임금은 새로 태어난 왕자를 보고 전날 제일 왕자 탄생 때보다 한층 더 기뻐하였다.

이 때 최소원은 조용히 일어나서 임금에게 절하며

“이 왕자는 전날 마마께서 탄신망례를 드렸던 까닭에 탄생된 바이온즉 그 일을 생각하시더라도 하루 바삐 전 중전마마를 복위시켜 주옵소서.” 이런 말을 아뢰었다.

“오냐, 낸들 생각이 없겠느냐마는 아직 무슨 일을 생각하는 중이다.

네 정성이 그러하니 곧 복위를 시키겠다.” 임금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럴 즈음 장비는 임금에게 그런 지경을 당하고도 오히려 최소원을 살해하려고 최소원의 처소에 장희재를 시켜서 독약을 들여가려다 탄로되었다. 임금은 극도로 진노하고 그날로 왕비의 직첩을 거두고 장씨를 궐 밖으로 내쫓았다. 그와 동시에 장희재도 즉각 의금부에 잡어가두고 그의 재산을 몰수했다.


한때 자기의 은인인 민중전의 지위를 찬탈해서 스스로 왕비의 자리에 나아간 지 무릇 육년이오,

민비의 은혜를 입어서 재입궐한지 무릇 구년 만에 장씨는 재추방을 당하게 된 것이다.

장씨가 이렇게 되고 민비의 복위전지가 내리게 되자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러면 그렇지. 우리 상감께서 착한 민비를 그대로 둘 리가 있나. 이제야 나라가 바로 잡히게 될 것이다.”

이런 말들을 하였다.

 

민비(인형왕후)가 복위해서 환궁하니 이때 민비의 나이는 이십팔 세였고 임금은 삼십사 세였다.


이때부터 양전의 부부애는 재출발이 된 듯 다정스러웠고 최숙빈도 이십여 세의 나이로 양전의 사랑을 받으면서 화합한 날을 보내게 되니 궁중은 안정되었다.


이런 반면에 장비는 장희빈이란 예전 작호 그대로 초전골에 있는 조그마한 초가집에서 처량한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장희빈은 오늘날 이 지경이 되었어도 오히려 민비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자기 죄과에 대한 부끄러움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또 민중전과 최숙빈을 욕하고 저주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들의 원수를 갚아 볼까 악착스럽게 벼르고 있었다.


민비가 환궁한 지 어느덧 팔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민비는 무엇 때문인지 항상 신체에 잔병이 생겨서 자리에 눕는 날이 많았다.

한번은 병세가 좀 회복되어서 기동을 하자 구미를 돋구어 드린다고 최숙빈이 게젓을 갖다가 바친 일이 있었다. 아직 첫가을이라 마침 쓸 만한 것이 없어서 궁중에 있던 것을 몇 개쯤 미음 반찬으로 올렸더니 민비는 여기에 구미를 붙이고

“여보게, 이 게장이 유난히 다니 웬일인가? 이렇게 맛좋은 게장은 처음 먹어보네.” 이런 말을 하였다.

“아무 것이라도 잡수시고 구미를 얻으셔야 하지요.” 최숙빈은 너무나 다행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러는 한편 사람을 또 보내서 햇 게젓이 결이 삭는 대로 들여오라 일렀다.

그런데 왕비는 이 게젓을 먹고 별안간 정신을 잃는 듯 누워버렸다.알 수 없는 일이었다.

최숙빈은 그 증세가 심상치 않은 것을 깨달았다.

두어 시간 후 왕비는 서둘 새 없이 임종을 맞이했다.


왕비는 마지막 시간까지 임금을 보고

“세자를 생각하시더라도 아무쪼록 그 친생모를 너무 슬프게 대접치 말아 주옵소서.”

이런 말을 하고 열네 살 된 세자를 앞에 불러 어루만지며

“네 어미가 덕이 박해서 네 친생모에게 미안한 일이 많았다.훗일에 친생모를 보거든 부디 내 말을 전해

다오.”

이렇게 말을 한 후에 즉시 숨이 가빠지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왕비가 이렇게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승하하자 임금을 비롯하여 모든 측근들은 의심을 일으키게 되어서 드디어 식사 진공했던 일을 살피게 되었다.

숙빈은 언뜻 게장밖에 의심나는 게 없어서 그 게장을 조금 맛을 보니 과연 게장의 단맛이 좀 이상스러웠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게장 속에 꿀을 넣었던 것이다. 숙빈은 곧 게장이 궁중에까지 들어오게 된 그 경로를 살펴보았다. 이 게장을 수랏간에서 편전까지 올리기는 김나인이다. 편전에서 최숙빈이 몸소 미음상을 드려서 올렸던 터이다.

최숙빈은 곧 김나인을 은밀한 곳에 가두어 놓고 임금에게 아뢰었다.임금은 즉시 친국을 시작했다.

금부나장이 몇 번 때리지도 아니해서 자백은 순순히 나왔다. 김나인은 장희빈의 밀계를 그대로 받아서 이번에 그런 금기 음식을 이용해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임금은 더 물을 필요도 없다는듯 김나인을 금부로 내보내고 그 즉석에서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리었다.

 

이 전교가 내리자 열네 살 된 세자는 가뜩이나 모비상을 당해서 망극한 중에 이중으로 친생모의 극형 처분을 듣게 되니 그 애통해하는 정경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후까지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구해보리라 결심한 어린 세자는 부왕의 처소 앞뜰에 거적을 펴고 석고대죄하며 아뢰었다.

“소자를 어미와 함께 죽여주소서.” 이렇게 아뢰면서 통곡하고, 한편으로는 입직 대신들을 보는 대로

“우리 어머니를 구해 주시오.” 하고 애원했다.

그러나 임금은 처음부터 결심한 바가 있는 듯 조금도 세자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한편 장희빈은 최후의 민비 치독사건이 탄로되어 사약까지 받게 되자 갑자기 마음이 이상하게 변하며 사약을 받아놓고 나인을 궐내로 보내어

“사약을 내리시니 먹기는 하겠사오나 생전에 모자가 마지막 영결이라도 하고자 하오니, 세자를 잠간만 만나게 해주시면 유한이 없이 죽겠나이다.” 이런 말을 전하게 했다.

임금은 이 말을 듣고 무엇보다도 애걸 통곡하는 세자가 측은해서 우선 세자를 위로해 줄 양으로

“네가 가서 마지막 네 어미를 대면하고 오너라.” 이런 말로 이르고 늙은 내시를 따르게 하여 내어보냈다.

세자는 그 친생모를 대하자 눈물을 좌르르 흘리면서

“어머님 이 노릇을 어떻게 한단 말씀입니까?” 하면서 어머니의 앞으로 달려들어 통곡을 했다.

그러나 장희빈은 세자를 대하자, 갑자기 정신에 이상이 생기고 마음은 아주 악독하고도 광란적으로 변했다. 으레 눈물로 세자를 맞이하련마는 돌연 눈빛이 싸늘해지고 얼굴에 독기가 서리었다.

그러다가 세자가 자기를 향해서 어머님! 하고 울며 달려들 때에 장희빈은 번개같이 세자의 하체를 부여잡고 죽어라 하고 아래로 낚아챘다.

울고 있던 세자가 금시에 비명을 울리고 당장 까무러치는 바람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들어 장희빈을 떼어놓았다. 장희빈은 여전히 독기가 서린 말로

“내가 이지경이 되어 죽게 되는 처지에 너를 남겨 두어서 이가의 혈통을 잇게 하고 민가년의 제사를 지내게 할 내가 아니다. 너 죽이고 나 죽으면 그만이다.”

이런 소리를 하며 놓쳐버린 세자의 하초를 다시 잡으려고 세자에게 달려드는 것을 사람들이 억지로 떼어 내어 밀쳐놓고 그대로 세자를 안아서 밖으로 내갔다.

세자의 일행이 그렇게 돌아가자 장희빈은 약사발을 들어서 동댕이치고 대청마루 보꾹에 줄을 매어 목을 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희빈은 이와 같이 악독한 최후를 마쳤으나 궁중에서는 갑자기 시체로 변한 세자가 들어오게 되자 소동을 일으키고 급히 응급치료를 가하는 한편 어의들이 있는 대로 모여들어서 구호를 하게 되었다.

임금은 이 광경을 보고

“오, 이게 무슨 실수란 말이냐? 이제 나이 사십에 이다지도 파란이 많다는 말이냐.

이럴 바에는 차라리 천인의 집에라도 태어나서 일생을 마음 편히 살다가 죽느니만 못하다.”

이런 말을 하며 한숨만 쉬었다.

세자는 얼마 후에 명의와 약의 효과로 소생되고 차차 기운을 차려서 기동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원체 급소를 다친 상처라 끝끝내 그 결과가 좋지 못해서 세자의 정신은 희미해지고 양쪽 어깨가 으쓱 올라가며 걸음걸이가 내시처럼 되고 말았다. 이런데다가 한달이면 두세 차례씩 누워 있게 되니 이럴 때마다 부왕의 초조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이듬해 구월 삼십일 인현 민비의 복제가 끝나자 대신들 중에서는 임금에게 다시 왕비 간택을 고하는 자가 있게 되었다. 임금은 신하들의 권고로 재삼 왕비 간택의 영을 내리고 왕비를 물색하게 하였다. 이때는 조정의 재상들이 대게 서인들이었는데 서인의 집정한지 여러 해가 되자 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노론과 소론의 두 파로 갈려서 서로 세력 다툼을 하고 있었다.

임금은 이러한 당파싸움하는 집안에서는 아무리 좋은 왕비 재목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간택하지 않을 결심을 했다. 임금은 외척과 당파싸움의 폐해를 뼈저리게 느껴왔던 것이다.

여러 방면으로 살펴본 결과 경주 김씨인 김주신의 집에 십육세 된 규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상궁을 보내서 간선한 결과 마음에 들게 되어 즉시 김주신의 딸로 왕비를 삼으니 이가 인원 김씨인 것이다. 김주신은 그 친척들이 소론이므로 대개 소론으로 지목을 받기는 하나, 그 자신은 어떠한 당색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집을 택했던 것이다.

세자는 십육 세 때에 병중인데 불구하고 청송부원군 심호의 따님으로 세자빈을 맞이하니 세자빈의 나이는 두해 위가 되는 십팔 세요, 모비 인원왕후보다 한 살 위가 되었다.

이와 같은 나이로 입궐한 세자빈 심씨는 현숙한 여성이긴 하지만 남편이 병신의 몸인 까닭에 늘 우울한 세월을 보내고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러다가 숙종 삼십일 년 가을부터 동궁의 병이 평복되는 듯하므로 임금은 동궁에게 국정을 대리시키겠다는 분부를 내리고 스스로 물러나 앉았다.

 

동궁의 존재는 뚜렷해졌다. 동궁을 싸고돌던 일당, 즉 남인 일당들은 다시 준동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동궁의 마음을 사서 저 서인들을 있는 대로 전멸시켜 볼까.”

이런 생각을 하기에 여가가 없었다. 이 눈치를 알아차린 서인들도 남인을 어떻게 하면 억누를까 해서 여기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에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동궁 제이왕자 연잉군 형제 사이는 그 우애가 지극하였다. 동궁은 여섯 해 아래 되는 아우를 극진히 사랑하고 아우 연잉군은 그 형을 극진히 공경하고 따랐다. 그런 처지였지마는 동궁을 옹호하는 당파(남인)들은 연잉군을 해하려고 겨루어서 드디어 이 형당과 제당끼리 왕위를 다투는 큰 싸움을 또 한 번 일으키고야 말았다.

 

동궁이 대리청정의 어명을 받은 후에도 종종 자리에 눕게 되자 제당들은 동궁의 건강이 좋지 못하니 아우로 자리를 바꾸자고 여러 차례 여론을 일으켰던 것이다.

동궁이 국정을 대리하게 되어 사년이 지나간 경자년, 숙종은 환후가 침중해지기 시작하더니 그해 유월 팔일 드디어 육십 세의 나이로 빈천의 길을 떠나고 말았다.

숙종이 재위 사십육 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그 뒤를 이어서 동궁이 즉위하니 이가 곧 경종(景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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