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와 위화도 회군        작성일자; 2007.07.20.금요일,맑음

 

 

고려 우왕대에 집권 했던 이인임의 보수 귀족 세력은

1388년에 관료들의 원성을 샀고 결국 최영·이성계 등의 무장세력에 의해 제거되었다.

이후 최영과 이성계는 각각 시중·수시중에 올라 정치를 주도했다.

그런데 중국을 통일한 명나라가 한때 철령 이북이 원나라의 영토였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반환을 요구하여 서로 대립했다.

이에 최영은 명과의 실력 대결을 주창하여 우선 전진 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요동을 점령함으로써 명의 압력을 배제하고자 했다.

 

1388년 최영·이성계 등의 무장 세력은 귀족 세력을 제거하고 정치를 주도했는데,

명나라의 철령 이북의 반환요구를 둘러싸고 반목하였다.

최영은 요동정벌로 명의 압력을 배제하고자 했고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워 이에 반대하였다.

4불가론은 군량미,군사 규모에서 명과 차이가 크다는 점,

농번기의 전쟁은 농민의 호응을 받기가 어렵다는 점,

왜구의 침입이 증대할 것이라는 점,

장마철은 시기상으로 전투에 불리하여 군사들이 희생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최영과 우왕은 요동 공격을 감행했고,

이성계는 1388년 5월 위화도에 이르렀을 때 회군을 단행하여

최영, 우왕을 몰아내고 창왕,공양왕을 추대하였다.

이 사건은 이성계 파가 권력을 장악하고 조선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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