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와 이방원에 얽힌 살곶이 다리        작성일자; 2007.09.01.토요일,맑음

 

 

서울의 한양 대학교 캠퍼스 바로 옆으로 청계천과 중랑천이 흐른다.

이 두 개의 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한강 쪽으로 200여 미터 더 내려오는 지점에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돌다리인

살곶이 다리(전곶교)가 있다.

 

화살이 꽂힌다는 뜻인 살곶이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태조 이성계는 태종 이방원이 이복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자 이성계가 이방원을 굉장히 미워했다.

이방원이가 보기 싫어서 고향인 함흥으로 가버렸다.사신을 여러 번 보내어 한양으로 돌아오시라고 하자 명궁인 이성계는

사신이 오는 대로 다 활을 쏘아서 죽이고 말았다.

자식이 계속 조르니 어쩔 수 없이 이성계는 한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날 이방원이 경복궁에서 아버지 마중을 나온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이성계가 아들이 기다리는 것을 멀리서 보고 아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날아오자 기둥 뒤에 숨어서 살았다.

이성계는허허 어쩔 수 없다.

이게 하늘의 뜻이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게 바로 살곶이의 유래다.

 

 

세종대왕의 분부로 이 다리가 만들어진 것.

당시 이곳에 물난리가 많이 있어 물난리가 나면 이곳에 있던 다리가 싹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큰 맘 먹고 폭우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놓기로 했다.

단단한 화강석을 박고 그 위에 편편한 돌을 깔았다.

살곶이 다리는 조선시대 만든 다리 중 제일 유명한 다리다.

보물 1738호인 살곶이 다리는  조선 세종 때 공사 착공해 성종 때 완공(1483) 되었다.

다리 규모는 76미터,폭 6미터.

다리는 교각석주(1열에 기둥 네 개)를 세우고 그 위에 받침돌을 올린 다음 하천 방향으로 멍에돌을 3개 연이어 걸치는

방식이다.

 

 

 

 

 

 

 

 


 

',·´″″°³ 역사.인물.사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성계와 함흥차사 석성린  (0) 2007.10.27
이성계와 사진참사검  (0) 2007.10.25
남 은  (0) 2007.08.29
최영 장군과 이성계  (0) 2007.08.08
조준  (0) 2007.08.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