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이첨       2018.12.14.금요일, 맑음

이이첨(李爾瞻); 조선중기의 문신아지 외척,임진왜란의 의병장

생졸; 1560-1623.3.4

본관; 광주

 

1594년 문과에 급제하고, 전적에 올라 사가독서를 했다 임진왜란 중 광릉참봉에 미관말직에 있으면서 정인홍화 함께 피난가지 않고 의병을 모아 의병활동을 하였다
왜군의 점령 지역인 봉선사에 잠입하여 자칫 소실될 뻔한 세조의 영정을 가지고 하룻밤 사이에 90 여리를 걸어 세조의 영정을 지켜넀다
그 후 1599년 이조정랑이 되고 1608년 문과중시에 장원했다 이때 선조의 후사 문제로 대북, 소북이 대립하자 대북의 영수로서 광해군의 옹립을 주장하고 정인홍과 모의, 영창대군을 받드는 유영경 등 소북을 논박했다 이 해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예조판서에 올랐다
이어 대제학을 겸임, 광창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정인홍과 함께 자기 심복을 끌어들여 대북의 세력을 강화하는 한편 임해군 진과 류영경을 사사케 하는 등 조정에서 소북 일파를 숙청했다
1612년 김직재의 무옥을 일으키고 다음해 강도죄로 잡힌 박응서 등을 심문하여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다고 하여 영창대군을 강화에 안치케하고 김제남 등을 사사케 했다
1617년 정인홍과 함께 폐모론을 발의하여 다음해 인목대비를 유폐하였다
1623년 인조 반정으로 광해군이 물러나자 몰락하고 만다

 

이이첨은 연산군 시대의 문신 이극돈의 후손이다.

또한 강홍립과 남인 계열로 이덕형은 이이첨의 일족이며 10촌 동생이었다.

이이첨은 사상적으로 남명 조식의 영향을 받았으며 정인홍의 문하생이다.

북인인 이이첨은 북인이 대북,소북으로 붕당 할 때 대북에 가담하였으며 대북의 지도자였다.

이후 영창대군을 지지하든 유영경과 광해군의 형인 임해군,인목왕후의 아버지인 김제남,영창대군을 죽이는 동시에 인목왕후를 서궁에 유폐했고,소북파를 숙청하였으나

인조반정후 인조 즉위 후 정인홍과 함께 죽음을 당한 인물이다.  

 

1594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다시 1608년 중시(重試)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훗날 광창부원군에

봉해졌다. 북인이었다가 북인이 대북, 소북으로 나뉠 때는 대북에 가담했으며,대북의 지도자였다.

선조 말기에 영창대군을 세자로 세우려는 소북의 음모를 저지하였으며,

광해군 즉위 이후 유영경과 임해군,영창대군 등을 죽임과 동시에 소북파를 숙청하였고,

1617년 정인홍과 함께 인목왕후 폐모론을 주장하여 이듬해 폐비시켜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했다.

이후 선무원종공신, 정운공신, 익사공신, 형난공신 등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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