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홍       2018.12.14.금요일, 맑음

정인홍; 선조,광해군 때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며 임진왜란때 의병장

출신; 합천

호; 래암

생졸; 1535년~1623.89세

 

 

선조,1589년 정여립 옥사를 계기로 동인이 남북으로 분리될때  

남명 조식의 제자로  대북파의 영수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57세의 나이에 의병을 모아 항전하여 영남 의병장의 호를 받았고,대사헌,동지중추부사,공조참판 등을 지내고,서인인 유성룡이 임란 왜란때 화의를 주장했다는 죄를 탄핵하여 사직케 한 다음 정권을 장악한 이후

좌의정,우의정을 역임하는 동안에 영창대군이 죽고,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서인들에 의해 89세의 나이에 이이첨과 함께 참형되었다.

악녀 김개시도 함께....

단대 신창호는 삼대 영웅으로 을지문덕,이순신,정인홍을 꼽을만큼 그를 칭송하였다. 

 

광해군에게 치도의 이론을 제공한 인물은 바로 대북파의 정인홍이었다.

정인홍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를 물러가게 하고, 우리의 군사로 우리의 강토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인홍은 몸소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면서 토호들의 노비를 거두어 가서 토호들에게 큰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산림장령(山林掌令)으로 부패한 관리들을 매섭게 매도했으며,

후금과의 관계에서도 중립적이고 실리적인 태도를 건의했다.

광해군은 정인홍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혁신 정치를 폈고,이런 과정에서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을 제거하는 데에 덕치를 벗어나는 조치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서인 주도의 모든 기록들은 온갖 잔일을 들추어 광해군을 헐뜯었고,

심지어 인목대비는 “선조를 독살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또 광해군을 받들던 대북파가 그 뒤 여지없이 몰락하여 그를 옹호할 세력이 없었다는 점도 간과할 일이 아니다.

반면에 광해군은 간신인 이이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 일을 그르친 경우도 있었다.

폭군 광해군이 벌인 어지러운 정치에 가담해 인조 반정 때 서인들에 의해

대북파인 이이첨과 함께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 인물이다.

 

남명 조식은 지리산 밑에 살며 많은 제자  중 그 중에 정인홍이 있었다.

조식은 당대의 이황과 쌍벽을 이룬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다.

정인홍은 조식을 스승으로 삼고 따랐는데,조식에게서 유품으로 칼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날 스승의 서실 벽장에서 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본 정인홍은 그 구렁이를 잡아다

패대기를 쳐 죽였다.조식이 이 사실을 알고 정인홍을 나무랐다.

그 구렁이는 조식을 보호하는 영물이었던 것이다.

뒷날 구렁이는 원귀가 되어 정인홍의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게 되었다.

    

인조반정이 일어난 뒤 쿠데타를 주도했던 서인들은 광해군과 그 밑에서 정권을 쥐고 있던 대북파에게

있는 죄 없는 죄를 씌워 피의 보복을 가했다.
그 가운데 저잣거리에서 시체를 사방에 돌려 가며 뭇사람들에게 경고의 뜻을 알리는 형벌인 정형을 받은

사람이 16명, 그냥 목만 베여 죽은 사람이 67명, 그 밖에 도망가서 살았거나 귀양을 갔거나 벼슬이 떨어진 사람이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 중에서 가장 무거운 형벌인 정형을 이이첨에 이어 두 번째로 받은 이가 바로 정인홍이었다.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가 모두 그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정인홍이 역적으로 몰려 죽은 뒤,

그의 학문과 처신을 본받으려고 했던 인사들과 그 자손들이 진주와 합천 일대에 많이 살았는데,

이들은 대구 감영이나 서울로 나들이를 갈 때 정인홍의 자손이 사는 마을을 지나지 않기 위해 십리 길을

돌아 다녔다고 한다.정인홍은 죽고 난 뒤에도 누명을 벗지 못하고,

정인홍은 역적의 대명사며,악인의 표본으로 남아있다.

 

정인홍과 부음정(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야천리 각사마을) 

내암 정인홍을 기념하는 부음정.의병을 일으킨것을 기념하는 합천군의 창의사(203년4월 남명 조식 선생선양회 요청으로 건립),

의병탑-6.000명의 의병을 상징 합천,초계,삼가현,연함군 17개  읍면을 상징하는 17m로 조성,

그를 기리는 청담사등이 있다.

묘소눈 경남 합천군 가야면 야천리 탑골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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