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신      2018.12.19.수요일, 맑음 
정충신; 조선 선조 시대의 무신

생졸; 1576(선조)-1636년(인조)

시호; 충무(忠武).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 목사 권율 밑에서 종군 하였다.

이 때 권율이 장계를 행재소에 전달할 사람을 모집했으나 응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17세의 어린 그가 왜군으로 가득한 길을 단신으로 뚫고 행재소에 도착하였다.

권율의 장계를 가지고 의주 행재소에 갔다가

병조판서 이항복의 눈에 띄어 학문과 무예를 닦아 그 해 겨울 문과에 급제하였다.

머리가 총명하여 이항복은 아들같이 사랑하였다.

1621년 광해군의 명을 받들어 만포첨사로 국경을 수비하면서

후금(여진족;청)과 접촉한 후 장차 우환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623년 안주목사 겸 방어사를 겸임하였고 다음해 이괄의 난 때는 도원수 장만의전부대장으로서 반군을

황주,안현에서 물리쳐 난을 진압한 공으로 진무공신 1등에 책봉되었다.

이어 1627년 정묘호란 때는 부원수로 종군하여 가도의 유홍치를 의주에서 격퇴하였다.

1633년 조정에서 후금에 대한 세폐의 증가를 반대하여 단교를 결정하자

이에 극구 반대하다 당진으로 유배 당하였다.

이 후 다시 장연으로 이배 되었다가 곧 풀려 나와 이듬해 포도대장,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1636년 병이 심해져 인조는 의관에게 치료에 진력하게 했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어 인조는 내시로 하여금 호상하게 하고 어복을 주어 수의로 하게 했으며,

관청에서 의로써 장사를 치르게 하였다.

 

키가 작으면서도 씩씩했고 청렴하며 덕장이라는 칭송을 들어며 많은 전설을 남겼다.

천문,지리,복서,의술 등 다방면에 걸쳐서 정통했으며,

저서로는 '만운집''금남집''백사북천일록' 등이 있다.
광주 경렬사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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