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차 왕자의난      작성일자; 2007.07.19.목요일,맑음

 

조선은 개국한지 10년도 되지 않아 두차례의 왕자의 난을 겪게된다.

1398년의 제1차와 1400년의 제2차 왕자의 난이다.

개국 공신과 왕자들을 하루 아침에 적과 동지로 갈라 놓았고,

군권과 신권이 국정 주도권을 놓고 충돌하고,

왕자들의 왕위 계승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골육상쟁의 혈전을 벌였다.

 

 그 첫번째가 1398년8월25일에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이다.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인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이 사병을 동원하여    정도전,남은,심효생 등 반대파 세력을 불의에 습격하여 살해하고,   세자 방석과 방번(계비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두 아들)을 죽인 사건이다.    이 사건을 '제1차 왕자의 난' '방원의 난' 혹은 '무인정사' '정도전의 난'이라고도 한다.진법 훈련 강화를 내세우며 병권 집중 운동을 벌여오던 정도전은  왕족 들이 거느리고 있던 사병을 해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정도전,남은,심효생 등이 태조의 병세가 위독하다고 속이고 왕자들을 궁중으로 불러 들인    한씨 소생의 왕자들을 살육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밀모설이다.    방원은 방간(4째) 등 형제들과 함께 사병을 동원해 정도전 일파를 습격해 살해하고,    세자 방석은 폐위하여 귀양 보냈다가 방석의 방번과 함께 죽여버렸다.    이방원은 정도전에게 병권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제거했지만,   자신이 권력을 잡자 세력 강화를 위해서 왕족 들의 사병을 혁파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훗날 이것이 '제2차 왕자의 난'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 두번째가 1400년 정종 2년에 일어난 제2차 왕자의 난이다. 1398년에 일어난 1차 왕자의 난은 정도전 일파 타파와 왕자를 살해하는 왕권 다툼의 사건이라고 본다면, 2차 또한 왕권 다툼의 난이다.제2차 왕자의 난을 '방간의 난,'박포의 난'이라고도 한다. 제1차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실권을 잡은 이 방원은사병을 거느린 형제가 여럿 있고 그들의 세력 또한 적지 않았으므로 이방원으로서도 이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어 항상 그들을 견제하여왔다.자신이 권력을 잡자 세력 강화를 위해서 왕족 들의 사병을 없앨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1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운 형제인 이방간(이성계 4째) 역시 세력은 이방원에는 못미치지만 항상 왕위를 계승하려는 야심과 호기가 있었으므로 시기심과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때 마침 지중추부사인 박포의 밀고가 있었다.

박포는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 등이 이방원을 제거하려 한다고 밀고하는 등 난의 성공에 공이 많았다. 그러나 일등공신에 오르지 못해 불평하다가 죽주(지금의 영동)로 귀양갔다.

이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 이방간이 이방원에 대해 불평하자 박포는 이방원이 장차 이방간을 죽이려 한다고 거짓 밀고하여 이방간의 거병을 선동했다.

이방간의 사병과 이방원의 사병이 개성 시내에서 치열한 시가전을 벌였으나 두 사람은 체포되어,

이방간은 유배되고,박포는 사형당했다.

이로써 이방원을 반대하는 세력은 거의 소멸되었고 이방원의 왕세제 책립은 굳건하게되었다.

 

2차 왕자의 난이 평정된 후 이방원의 심복인 하륜의 주청으로 정종은 태조의 허락을 얻어

1400년2월 이방원을 왕세제로 책봉하였고,

이어 11월 왕위를 이방원에게 물려주니 그가 제3대 태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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