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대 국회위원 선거                    2019.12.27.금요일,맑음

1981년3월25일에 실시된 제11대 국회위원 선거다. 


1981년1월24일, 국가보위 입법회의에서 국회의원 선거구를 77개에서 92개로 증설하고

1구에서 2명씩의 지역구 의원을 선출하되 전국구 의원제도를 신설하여 국회의원 총수를

276명으로 하며, 선거 공영제의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회의원 선거법이 제정된 이후 3월로 예상되는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하여 각 당은 총선 체제를 수립하였다.


민주 정의당은

1981년2월17일, 중앙집행 위원회를 열어 92개 지구당 위원장 전원을 지역구 후보로 공천

   할 것을 결정하고

1981년2월18일, 지구당 위원장 회의를 소집,총선 전략을 시달하였고, 5개의 정책 지표와

   이의 실천을 위한 자주,다변 외교 전개,국토의 균형개발,교육기회 확대 등 61개 세부 실천

   사항으로 된 선거 공약을 확정.발표했다.

민주 한국당은

1981년2월21일, 공천심사 위원회를 구성하고

1981년2월28일, 정책 지구(민주사회당 고정훈 당수 입후보)인 서울 강남 지역을 제외한

   91개 지역구의 후보자 공천을 완료하였으며

1981년3월5일, 공천자 대회를 열어 45명의 전국구 후보자도 확정하였다.

   4개 분야에서 지방 자치제의 조속 실현,서민생활 보호를 위한 국민생활 보호위원회 설치

   등 51개 실천 정책을 선거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한국국민당은

1981년2월27일, 국가보위 입법회의가 처리한 언론 기본법,국회의원 선거법,국회법,정당법

   등의 불합리한 부분 개정,정치 활동이 자유롭고 정치범이 없는 정치 풍토 조성,서민생활과

   근로자 권익보장,자원비축 교역기지의 서해안 건설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선거 공약을

   제시하고

1981년2월28일, 75명의 지역구 후보자 공천을 확정,공천자 대회를 열어 선거 전략 및 득표

   요령을 시달한 데 이어 29명의 전국구 후보자를 확정했다.


이 밖에 나머지 정당들도 선거 대책본부를 구성하고 후보자 공천을 하는 등 선거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1981년3월5일,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3월25일로 공고됨에 따라 ,

   전국 92개 지역 선거구에서 후보자 등록이 일제히 시작되었다.

1981년3월10일, 마감된 후보자 등록 결과는 

   184명의 지역구 의원정수에 전국 92개 선거구에서 정당추천 529명,무소속 106명 등

   총 635명이 등록하여 전국 평균 3.5: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선거에 참여한 12개 정당들 가운데는

민주정의당이 전체 92개 지역구에서 후보자를 공천하였고,

민주한국당은 91개 지역구에서 공천하였으며,

다음으로 민권당이 82개 지역구,

한국국민당이 75개 지역구,

신정당이 54개 지역구,

민주사회당이 50개 지역구에서 후보자를 공천하였다.

무소속 입후보자는 모두 106명으로 전체 지역구 입후보자들 중 16.7%에 달했다.

1981년3월25일,

전국 1만2천237개 투표소에서 총유권자 2천109만4천468명 중 1천639만7천845명이

투표에 참가하여 78.4%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투표율을 시도별로 보면

강원도가 88.0%의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였고,

그 다음이 충청북도로 86.7%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부산이 76.7%,

경기도가 76.1%,

서울이 71.1% 등 3개 시도만이 70%대의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정당별 득표율은 

민주정의당이 35.6%의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였고,

그 다음으로 민주한국당이 21.6%,

한국국민당이 13.3%로 나타났으나,

나머지 정당들은 10% 미만의 낮은 지지를 얻었다.

한편 무소속 입후보자들은 전체 10.7%의 득표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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