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7대 대통령 이명박           2020.02.11.화요일,맑음

대통령 이명박(생졸; 1941년12월19~)은

일본 오사카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채태원 사이 4남 3녀 중 3남으로 1941년 태어났다.

다른 형제들의 이름은 모두 상(相)자 돌림이지만 혼자만 ‘명박’인 이유는 어머니가 보름달이 치마폭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는 ‘밝을 명(明), 넓을 박(博)’자를 넣어 지었기 때문이다.

1935년,포항 흥해가 고향인 아버지는 일거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 갔다

해방이 되자 다시 귀국해 포항에 안착하였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로 이사하였다.

청계천 헌책방 주인에게 얻은 책으로 대입 준비를 하였고,

어머니가 좌판 일을 하던 이태원상인들 도움으로 등록금을 마련해 고려대 상대에 입학했다.

이태원 시장에서 환경 미화원으로 학업을 이어가던 중 생활고를 피해 군대에 입대했으나

기관지 확장증으로 훈련소에서 강제 퇴소당됐다.


상대 학생회장으로 한일 협정을 반대하는 6.3 시위를 주도했다가 체포돼 징역 3년,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고 6개월간 복역했다.

대학은 졸업하였으나 학생 운동 전력으로 인하여 취업이 되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어렵게 '현대 건설'에 입사해 5년 만에 이사가 됐다.

1970년12월19일,6살 연하인 김윤옥과 결혼하여 1남 3녀를 두었다.

1977년,

입사한지 12년 만인 37세 나이로 현대 건설 사장이 되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다.

1992년,현대 건설 회장직을 떠나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으며,

1992년3월24일,14대 전국구,1996년4월11일,15대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내던 중,

1997년9월,공직선거및 부정선거 방지법 위반 협의로 피소되어 1심에서 벌금형을 받았다.

1998년2월,항소를 진행하던 중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 출마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1998년4월,항소심서 벌금형이 선고되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후,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포기하고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으로부터 객원 연구원으로 초대를 받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9년4월,대법원이 벌금형을 확정지었으나 2000년8월에 광복절 특사로 사면 복권 된 후,

200년7월1일부터 2006년6월30일까지 임기인

민선 3기 32대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돼 뉴타운 사업 기반마련,청계천 복원사업,대중교통환승체계 구축,서울광장 설치,서울 숲 조성 등의 업적을 남겼다.

2007년12월19일,



제17대 대선에서 통합 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08년4월18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사태가 발생하자 사과하고 30개월

이상 소고기의 수입을 금지하는 재협상을 약속하면서 시위는 스그러들었다.

2008년9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4분기 들어 미국과 일본,유럽 등이 GDP 성장률이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2008년10월이 들어서자 한 달 만에 아이슬란드,파키스탄,우크라이나,헝가리,벨로루시 등

5개국이 외환 위기를 맞아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5개국의 뒤를 이어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제일먼저 국가부도를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부도 위험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미국,일본,중국 등과 통화 스와프 체결,매주 비상경제대책회의 주재,확장적 재정정책 등을

통한 위기 극복에 나섰고,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글로벌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공조를 이끌어 낸

결과,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성공적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하였다.

2010년4월,

유럽발 재정 위기가 발생하면서 또 한 번 세계 경제는 대침체에 빠졌다.

2011년8월에는,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세계 경제는 또 한 번의 충격에 빠졌다.

한국은 중국,일본과 맺은 통화 스와프를 확대하고 위기극복에 나섰다.

2012년 8월,

한국은 무디스,피치,S&P등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사상 최고의 국가 신용등급을 받았고,

피치로부터 받은 국가 신용등급은 사상 처음으로 중국과 일본을 앞섰다.

2015년에 가장 논란이 된 것은 4대강 살리기 사업과 병행하여

4대강 보의 물을 가뭄 지역에 공급하는 사업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대법원은 한강,낙동강,금강 영산강에서 진행된 4대강 사업 모두 적법 판결을 내렸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있어서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천안함,연평도 포격사건,북핵 문제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해  

금강산 관광 중단, 5.24조치 실시 등 강력한 대북경제제재를 취하며 대북압박에 나섰다.

이에 북한이 대북지원을 요구하며 수차례 집요하게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요구해 왔지만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위해 이를 거부했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은

2009년,UAE 원전을 수주하면서 세계 6번째로 원전 수출국의 반열에 섰으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한 아덴만의 여명작전 등 안보적 업적을 남겼다.

2010년의 서울 G20 정상회의, 2011년의 부산 원조개발총회,2012년엔 서울 핵안보정상

회의 등을 개최하면서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함양했다.

미국에 대한 외교정책으로

한미FTA 발효를 통해 60여 년간 이어진 한·미 군사동맹을 진일보 시켰다.

한·미 간 미사일지침 개정을 통해 미사일 사거리를 연장하고,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가입하는 등 한미관계는 강화됐다.

일본에 데한 외교 정책으로

일본 총리로부터 과거사 반성을 담은 나오토 총리 담화를 이끌어내고,

조선 왕실 의궤를 돌려받는 등 과거사 문제에도 큰 진전이 있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했으나 일본 총리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등 일본 정부가 점차 우경화 되면서 한일 관계는 악화됐고,

일본정부는 이병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발언 등으로 책임을 돌렸다.

퇴임 이후

2018년10월5일,다스를 비롯한 각종 비리에 관련해 뇌물수수,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 15년,벌금 130억 원을 선고받았다.

역대 대통령들 중 전두환,노태우,박근혜 이어 4번째로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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